▲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나는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는 사린가스 테러 사건 자체와 책 '언더그라운드'만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에 대해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평소 소극적인 태도로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공식적인 인터뷰마저 거절하던 그가 어떤 이유로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고, 이를 작업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다. 실제로 그는 당시, 몇 편의 소설 작업을 끝낸 뒤에 정서적 망명으로 일본을 떠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도 미국에서였다.
그는 피해자 대부분이 체제에 순응하고 과로하는 일반인이었기에 사건 자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둔 생활을 이어오던 작가에게는 처음으로 사회와 마주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사건 발생 2개월 전, 고향인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연이은 피해로 일본 사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하루키는 어떤 의무감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오고자 했던 단결과 동질성이라는 가치관을 무너뜨린 범죄였으니 말이다.
언론이 사건을 다루던 방식에 존재했던 문제들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정작 언론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의 선정적인 내용만을 연일 보도하기 바빴다. 몇 달이 지나도록 사건에 대한 통찰이나 분석 없이 범죄자들의 삶을 소비하는 행태도 보였다. 하루키가 바라보고자 했던 지점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04.
책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가 직접 피해자, 가족, 그리고 옴 진리교 신도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여러 증언을 담아내면서도 그 배경을 사회 구조와 사상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일본 사회가 가진 지도자에 대한 갈망, 집단 소속에 대한 욕망, 그리고 1980년대 버블 시대의 일본 경제 성장 속에서 일어난 뉴에이지 사상과 같은 것들이 옴진리교 사건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천황의 자리가 사라지면서 일본 사회는 항상 지도자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 자리를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파고들며 생겨났고, 옴진리교 역시 그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말 잘 듣는 강아지, 더 나아가 양이 되길 강요하는 교육과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 역시 함께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옴진리교는 세를 확장하고 교인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1995년의 비극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에서 교단 내부의 장면을 직접 재현하지는 않지만, 그 잔혹한 행위가 남긴 흔적을 통해 종교가 사회적 폭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도중에 모리 다쓰야 감독이 연출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A 시리즈를 통해 일면이 드러나긴 한다.)
05.
"그들은 우리의 거울상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 부분. 그게 언더그라운드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의 두 번째 책에서 (그의 저서 '언더그라운드'는 총 두 권으로 저술되었다.) 가해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옴진리교 신도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의 입장이 모두 서술되고, 심지어는 사이비 신도들의 슬픔마저 그려진 것이다. 마치 두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서로 마주 보는 거울처럼 말이다. 그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 역시 '왜'라는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목소리와 가해자의 망상이 교차할 때, 일본 사회가 직면한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균열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광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종교적 망상은 고립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증폭된 산물이었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일본 사회를 성찰하는 일과 직결된다. 피해자들의 얼굴은 단순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외면한 틈새의 표식과도 같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6.
국내에 소개되며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라고 명명되었지만, 이 작품의 원제는 < Haruki Murakami: FromUnderground à 1Q84 >로, 그의 소설인 '1Q84'에까지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소설 속 종교 집단인 '리틀 피플'은 옴진리교의 그림자를 투영한 듯한 설정으로 자주 해석되어 온 바 있다. 다큐멘터리는 이를 단순한 참고 자료로 제시하지 않고, 문학과 현실이 서로 마주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소설이 현실을 은유하고, 현실이 소설 안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다. 이 연결은 작중 이중 세계에 대한 설정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르포르타주적 저서 '언더그라운드'가 현실의 어두운 면을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이었다면, '1Q84'는 그 어둠에 서사를 입혀 환상 속에서 다시 꺼내는 일이 된다.
다큐멘터리는 이 두 가지 궤적을 병치하며,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단순히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과 긴밀히 맞닿은 작업으로 재조명한다. 이는 하루키가 종종 비현실적이라고 평가받아 온 작가라는 통념을 흔든다. 오히려 그는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응시하며, 폭력과 망상, 그리고 그사이의 인간적 연약함을 끊임없이 탐문해 온 작가라고 말이다. 어쩌면, 1995년의 사건으로 인해 그가 일본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세상으로 향할 수 있게 된 것은 작가 본인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07.
문학과 다큐멘터리는 서로 다른 매체지만, 저서 <언더그라운드>와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는 같은 윤리를 공유한다. 그것은 곧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잊히지 않게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키는 글을 통해 사회의 틈새에서 소리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서사를 드러냈고,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과 의미를 다시 해석하며 그 생생한 진실을 불러낸다. 이 두 층위는 서로를 대체하지 않고 보완하며, 사건을 단일한 내러티브로 환원하지 않는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여백을 남겨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그 여백을 이미지로 채우며 또 다른 진실을 구축한다. 결국 관객과 독자는 두 매체를 통해 사건을 다각도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록은 과거를 애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질문은 곧 오늘을 향한다. 집단과 지도자를 향한 갈망, 버블기의 뉴에이지적 공허, 그리고 개인을 삼켜버린 사회적 불안정은 여전히 현재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가 서로 공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특정 시대의 비극을 붙드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균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한 사회적 윤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과거를 말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을지 모르는 균열과 틈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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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