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무대에 선 박찬욱 감독... 그가 강조한 '유머'의 정체는 이랬다

[여기는 베니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공식 인터뷰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CJ ENM

"평소에 알게 모르게 자주 쓰는 말이지 않나. 이 영화를 본 뒤 관객분들도 얼마나 일상에서 이 말을 자주 쓰는지 깨닫게 되면 좋겠다. 저도 일단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말이더라. 현대인의 복잡한 삶에서 당연한 경향인데, 따지고 보면 남 탓하거나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지." (박찬욱 감독)

아마 이 영화를 보고나면 박찬욱 감독의 이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어쩔수가없다>의 공식 프리미어 상영이 있었던 29일,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과 여러 외신들의 호평이 이어지던 차 30일 오전 베니스 리도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박찬욱 감독 이하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0년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고심

25년간 제지 회사에 몸담은 베테랑 유만수(이병헌)가 해고 후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재취업 계획을 세우고 경쟁자들을 하나둘 찾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감독에게도 배우들에게도 간절한 결과물이었다. 20년 전 추리 소설 대가인 웨스트레이크(Donald E. Westlake)의 원작 소설 <액스(The Ax)>를 접한 후 영화화를 준비해오던 박찬욱 감독은 지지부진했던 투자 과정을 겪다가 지금에야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 자유주의가 더 고도화된 탓일까. 만수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려는 박 감독이 오랜 기간 영화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하다. 2005년 그리스 거장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가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발표한 이후 작가 돈 맥켈러, 그리고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내인 미셸 가브라스와 함께 미국 시장을 노리고 영화를 기획했던 시간이 있었다. 한국영화 버전으로 준비하면서 다른 제목(<모가지>)를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한 직후 나왔던 지금의 제목을 유지하게 됐다고 한다.

"초고에서 어떤 인물이 했던 대사였다. 그 대사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려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에게 그 말을 하도록 했지. 각본을 보면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좀 튀어 보일 수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부지불식간에 그 말을 많이 쓰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을 배경으로 영화를 준비하던 게 틀어진 이후 잘 진행이 안 됐다. 한국영화로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을 때 시큰둥하긴 했다. 일찌감치 김우영 촬영감독, 돈 맥켈러 작가도 고용해서 작업 중이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서 거절했지. 그러다 <헤어질 결심>을 마친 이후 한국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작 소설의 판권을 미셸 가브라스가 영구 소유하고 있기에 그의 절대적 지지가 박찬욱 감독에게 큰 힘이 됐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당시 박찬욱 감독은 소설 <액스>의 영화화가 숙원이라며 일부 진행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가브라스 부인이 대단하신 게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을 프랑스로 망명시킨 주역이기도 하고, 모델 활동을 하며 <보그>지 등에 나오기도 하다가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 기자가 된 분"이라며 "(독재자) 야세르 아라파트를 최초로 인터뷰한 사람이기도 하다"며 관련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화 버전도 미셸 가브리스의 제안이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다만 미국이 배경인 원작 소설을 한국화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흔하디 흔한 한국의 아파트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며 "본래 영화에 나오는 세 명의 경쟁자 외에 아파트에 거주하는 또다른 인물이 있었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빼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유머, 그리고 음악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CJ ENM

무엇보다 한국에서 진행된 제작발표회 등에서 강조한 유머의 정체는 예상보다 강력했다. 원작과 차별되는 설정도 꽤 있었다. 베니스 현지에서 진행된 세 번의 상영에서 외국 관객 및 언론사 관계자들이 박찬욱 감독이 의도한 대목에서 여러 차례 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기 버전보다 각색하며 더 웃겨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자동화된 공장 풍경 등이 들어가면서 SF 장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물이 됐다. 아무래도 원작보단 유머를 더 강하게 만들려고 한 게 있지. 그리고 만수와 경쟁자들의 공통점을 원작보다 더 강조하려 했다. 마치 만수를 비추는 거울 같은 느낌이 들게 말이다.

소설 속 결말은 해피엔딩이면서 다소 냉소적인데, 조금은 다르게 가보고 싶었다. 모든 게 다 끝났지만 만수와 미리(손예진)의 아들 입장에선 뭔가 이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듯 경기를 일으킨다. 영화의 첫 장면과 비슷하게 이들은 서로 다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이미 분열되고 붕괴됐음을 보이는 셈이다. 과연 만수는 무엇을 위해 그 노력을 했던 것인가. 혹시나 목표가 텅 비어버린 상태가 된 건 아닌가. 미리와 만수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관객분들에 따라 제 각기 해석하시더라."

또하나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게 음악의 쓰임이다. 이미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 원곡 '안개'를 송창식과 듀엣으로 부르게 해 삽입할 정도로 공을 들여왔던 박찬욱 감독이다. 이번 영화에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김창완의 '그래 걷자', 배따라기 '불 좀 켜주세요' 같은 가요를 비롯, 트로트 가수 조승구의 '구멍난 가슴' 등이 주요하게 쓰였다. 박찬욱 감독은 "정훈희, 송창식 같은 분들이 제 어릴 적 우상이라면 조용필, 김창완은 대학 시절 숭배하며 지금까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며 말을 이었다.

"조용필씨의 '고추잠자리'는 제가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뭔가 상업적으로 출발한 사람이 예술가로 거듭난 순간을 지켜본 느낌이랄까. '돌아와요 부산항에' 때도 좋았지만 '고추잠자리'를 발표했을 땐 다른 차원으로 간 것 같더라. 김창완은 등장 때부터 충격이었고. 이분들에 대한 존경을 영화에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영화에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여러 장르의 노래를 담았다. 그만큼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

박찬욱 감독이 말한 그 풍요로운 세계를 오는 9월 24일 한국 관객들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은 베니스영화제 폐막 때까지 머물며 수상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친다. 낭보 또한 조심스럽게 기대해볼 수 있겠다.
박찬욱 어쩔수가없다 베니스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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