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관련 이미지.
CJ ENM
영화는 원작 소설의 배경과 다른 한국 사회라는 점을 철저히 감안, 보다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였다. 19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선 주인공 데보레가 재취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6명의 경쟁자를 살인해야만 하는 설정이다.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이를 대거 추려 만수로 하여금 세 명의 경쟁자를 제거하게끔 한다.
박찬욱 감독이 원작에 매료된 이유가 사건의 해결,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집중하는 여타 미스터리 소설과 달리 평범한 사람이 극한에 내몰리면서 점차 겉과 속이 변모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극중 만수는 원작 소설 주인공처럼 제지 회사에서 25년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뒤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녀 시원(김우승), 리원(최소율)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며 모종의 계획을 세우는데 원작에선 아내가 주인공의 선택을 독려하는 게 아닌, 오히려 주인공을 자극하는 방향의 캐릭터라면 영화에선 적당한 긴장감을 주며 결국 공조하는 식으로 역할한다. 또한 원작에서 살인도구가 된 권총 링거가 세계대전에 파병된 부친의 것인 것처럼, 만수의 총 또한 베트남전에 파병된 부친이 남긴 총이란 설정이다.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 등이 강조한 유머는 박찬욱 감독 전작에 비할 때 매우 도드라진 편이다. 이를 테면, 존재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 만수의 행동에서 일종의 슬랩스틱 개그의 면모도 엿볼 수 있는 식이다. 유독 긴장하는 성격 탓에 할 말을 손바닥에 적는 버릇이 있는 만수는 어설픈 살인 계획을 하나둘 실행하면서 심리적으로 변모해간다. 첫 번째 제거 대상 구범모(이성민)를 대할 때나 두 번째 대상인 고시조(차승원), 그리고 최선출(박희순)에 이를 때의 만수는 심리적으로나 태도면으로나 큰 차이를 보인다.
원작에선 주인공의 자전적 고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독자입장에선 보다 가까이 주인공의 심리를 쫓아볼 수 있었다. <어쩔수가없다>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결코 배척할 수 만은 없는 만수의 여러 인간적 면모를 전시하며 설득력을 담보해낸다.
박찬욱 감독의 특장점인 화면 구성과 음악, 그리고 인물의 배치 같은 미장센 만큼은 관객을 현혹하기 충분하다. 조용필 '고추잠자리', 김창완 '그래 걷자', 배따라기 '불 좀 켜주세요' 같은 한국 가요를 비롯, Ike Quebec 'Loie' 같은 재즈곡, 그 외 들으면 알만한 트로트 곡들이 이어지며 묘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테면 해당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과 대비되거나 투영되는 가사들이 눈에 띄는 식이다.
다소 느리게 전개되는 초중반부를 지나면 후반부부터 박찬욱 감독 특유의 앵글과 편집, 컷 구성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음악 사용 면에서 구범모가 아날로그 취향에 LP 수집가라는 설정에 맞게 조용필과 산울림의 노래 등 시대를 넘나들며 호응을 받을 만한 멜로디를 배치했다. 가사 또한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노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사 직후 박수 세례, 관객들 폭소도
▲영화 <어쩔수가없다> 관련 이미지.CJ ENM
상영 중 관객들의 호응도 상당했다. 영화 초반 장어를 구워 먹는 만수와 미리의 대화에서 정력을 언급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 구범모와 아내 아라(염혜란) 간 다툼의 원인을 묘사하는 과정 등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크게 폭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프리미어 상영 직후 9분간 박수세례가 나왔으며, 오전 프레스 시사에서도 영화가 끝난 직후 수십초 간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상영관이었던 살라 그란데(sala grande) 극장 외부에서 삼삼오오 모여 영화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는 풍경이 있었다. 일부 관객의 반응을 살폈다. 이탈리아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관객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선사하는 고전적이면서 영화적 요소들을 즐겼다"며 "자본주의 폐해는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인 만큼 주제 의식도 공감이 갔다"는 소감을 전했다. 또다른 외신 기자는 "초반부가 다소 길어서 좀 더 편집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솔직한 반응과 함께 "음악이나 미장센이 감탄스러웠다"고 평했다.
흥미로운 건 원작과 달리 자녀에게 부여된 캐릭터성이다. 첼로 연주를 좋아하고 탁월한 재능이 있는 리원은 자폐 기미가 있는 어린 소녀인데 타인의 말, 특히 엄마의 말을 반복해서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무한 복제되는 존재들, 즉 오리지널리티를 상실한 현대사회의 풍자로 읽히기도 한다.
아마도 관객들은 유만수를 쫓아가며 여러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들, 핑계와 당위성 사이에서 헤매거나 헤매는 척하는 이들이 <어쩔수가없다>에 녹아 있다. 일단, 베니스영화제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외신 반응을 종합하면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올해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만큼 영화 거장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을 누려보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