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도쿄의 마지막 슬럼가>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이분들과 거리를 치우면 어떨까요? 특히나 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노숙자들과 함께요."
한편, 다큐멘터리에는 이시바시 부부와 함께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국밥 가게의 손님이었던 요시히라 마고코로, 노숙자와 복지 수혜자들을 위한 지원 단체를 운영하는 지역 후원자다. 그는 재개발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를 최대한 늦추고, 산야 지역의 슬럼화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노숙자들과 함께 거리 청소를 시작한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는 환경 미화의 목적과 함께 관계 회복에 대한 의지가 함께 놓인다. 실제로 지역 사람들은 처음 이들의 활동에 반감을 보이다가도 목적과 취지를 듣고 고마움을 전하기까지 한다.
이 작품에는 이렇게 음식을 만들고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 커다란 두 맥락으로 자리한다. 두 행위가 제시되는 것은 모두가 일상적 행동에 불과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의 윤리를 실천하는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지지하고 공동체의 시간을 이어가는 방법에 투쟁과 같은 역동적인 방식 외에 생활 속의 일상적인 동작도 유효하다는 것을 이 점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감독은 이 장면을 길게, 또 반복적으로 붙들며 작은 행위 속에서 발견되는 연대의 가능성을 포착해 보여준다.
04.
다큐멘터리 <도쿄의 마지막 슬럼가>에서 특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연출은 카메라가 인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나 지역을 들여다보는 보통의 작품들이 부감 숏과 같은 방식을 통해 전체적인 모습을 담고자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대신 카메라는 인물 곁에서, 그들과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며 표정과 행동을 기록한다. 가장 큰 목적은 역시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작품이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고려하면, 이는 타인을 기록하기 위한 적절한 방식으로 생각된다.
인물과 눈높이를 맞추는 카메라의 시선은 호흡 또한 상대에게 맞춰 따르게 된다. 의도적으로 흐름을 만들어내거나 속도감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한 그릇의 국밥이 도시 개발의 속도와 대비되는 '느린 지속'의 힘을 갖는 것과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느린 호흡의 카메라는 빠르게 허물고 세워지는 도시의 기계적 시간이 아니라, 느리고 반복적인 행위로 채워지는 사람의 시간에 더 가깝다. 바로 그 차이를 영화가 부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의 언어로 치환하자면, 낙후와 지체된 성장이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지나온 시간을 간직하는 순간이 된다. 이는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 도시의 소외된 사람을 배척하거나 전시하지 않고 존엄의 대상으로 여기고자 하는 것과도 그 결을 함께한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도쿄의 마지막 슬럼가>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5.
"꼭 산야를 잊으라고 하는 것 같죠."
사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Disappearing Taste of My Second Home'이다. 맛이 단순한 혀의 감각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 방식이며 공동체의 언어라고 이해한다면, 작품의 주제를 함축한 타이틀이 된다. 배고플 때 찾아갈 수 있고, 함께 온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바로 '두 번째 고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영화는 이 맛을 붙들려는 시도를 통해, 재개발이 단순히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임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 <도쿄의 마지막 슬럼가>는 그런 방식으로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공간을 붙들며, 기억의 층위를 세심하게 기록한다. 국밥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공동체의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이고, 거리를 치우거나 장국을 끓이는 반복적 행위는 무너져 가는 일상을 다시 세우려는 몸짓으로 읽힌다. 영화가 보여주는 기억은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실천으로 작동한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사라짐에 맞서 존엄을 이어가려는 힘을 담아낸다.
구와하라 유타카 감독은 거대한 정치적 언어 대신, 작은 국밥집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해당 담론을 제시하고 도시의 미세한 변화를 꺼내 비춘다. 국밥의 온기와 공동체의 시간이 지닌 무게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으며, 기록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실천이 된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여전히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장르임을 보여주며, 사라져가는 풍경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가치를 확인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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