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돼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토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어느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발간에 부친 편집위원들의 글이다. 아쉽게도 전집은 그 포부만큼 번역의 수준이 미치지는 못하여 자주 논란이 따르지만, 이 글만큼은 너무나도 명문이라 새겨 놓고 이따금씩 다시 돌아보고는 한다.
그렇다. 문학의 고전은 세대마다 새로이 번역돼야 한다. 오늘의 감수성을 가진 오늘의 독자에게 호소하기 위하여선 아무리 고전적 작품의 번역일지라도 나태하게 나자빠져 있어선 아니 되는 것이다. 어디 번역만일까.
고전 또한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상식 가까이 여기는 세계 명작선집들조차 그러하다. 때로 어느 작품은 생명력을 소진하고 더는 고전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반면 어떤 작품은 수십, 수백 년을 건너 제가 가진 유효함을 선명히 발하기도 한다. 고전은 그저 유명해서 얻어지는 지위가 아니다. 동시대성을 초월하여 시간을 건너 살아남은 소수의 작품만이 예로부터 오늘에 전해질 가치가 있는 고전이라 불리는 것이다.
▲어글리 시스터스틸컷
해피송
'신데렐라'의 현대적 변주, 그런데?
<어글리 시스터>는 어느 모로 보나 <신데렐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노르웨이 출신 감독 에밀리 블리치펠트의 영화로, 계모 밑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는 여자와 그 자매들의 이야기란 점이 그러하다. 한 가지 차이라면,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의 역경과 극복, 행복한 귀결에 중심을 두는 반면, <어글리 시스터>는 누가 뭐래도 계모의 친딸이 주인공이란 것이다. 제목인 '어글리 시스터', 또 원제인 'The Ugly Stepsister'는 명확하게 주인공이 신데렐라의 못난 배다른 자매란 점을 분명히 한다.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구전 동화였다. 감독은 이 가운데 선의 흥함보다는 악이 당하는 징벌에 보다 관심을 갖는다. 그저 질투심도 소유욕도 강한 여자였던 동화 속 자매에게 그 연유를 설정함으로써 보다 깊은 이야기를 빚고자 한다.
<신데렐라>는 지난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알만한 고전이다. 줄거리는 간명하다. 어린 소녀 신데렐라는 계모 아래에서 온갖 구박과 냉대를 받으며 자란다. 하녀처럼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그녀의 신세가 처량할 법도 하지만, 아버지는 도통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데렐라의 타고난 미모가 피어날수록 계모와 그녀의 딸들의 구박도 심해져 나이에 맞는 차림이며 꾸밈을 감히 꿈꾸지도 못한다.
▲어글리 시스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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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없는 변주지만 주인공은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국에 파티가 열린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왕자가 배필을 찾기 위해 왕국 내 젊은 여성들을 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에 이르는 모든 매력적인 여성들이 왕궁으로 불려가 사흘간의 파티에 참여한다니, 신데렐라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행색이며 처지가 어찌됐든 그녀가 양가집 규수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모는 신데렐라가 주어진 일거리만 대 해내면 파티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뭐 그 일이 도저히 하룻밤엔 해낼 수 없는 것이긴 해도 말이다.
신데렐라는 놀랍게도 신비적 힘의 도움을 받아 그 모든 과제를 다 해낸다. 한국형 신데렐라인 콩쥐가 두꺼비의 도움을 받아 깨진 독에 물을 채워 넣었듯, 신데렐라에게도 그녀를 돕는 동물들이 있는 것이다.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드레스도, 구두도, 마차도 모두 그를 통해 얻는다. 마법은 자정이 도과하면 풀리는 탓으로, 신데렐라는 왕자를 설레게 하였을 뿐 미래를 약조하는 데엔 이르지 못했으나, 도리어 그것이 그녀가 잃어버린 구두를 통하여 신데렐라는 찾는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는 이 유명한 이야기를 그대로 뒤따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데렐라>의 원전엔 어떤 왜곡도 가하지 않겠다고 분명한 노선을 정한 듯 보인다. 다만 신데렐라 격인 아그네스(테아 소피아 로흐 내스 분)는 한 쪽으로 밀어두고 그녀의 자매인 주인공 엘비라(레아 미렌 분)를 부각할 뿐이다. 그녀는 어째서 제 발을 구두 크기에 맞게 잘랐는가. 동화 속 쉬이 풀이되지 않는 그 기행에 적절한 답을 주려고 한다.
엘비라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여자다. 누구나 제가 동화 속 미녀였으면 하고 꿈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같지 않아서 미녀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그렇고 그런 생김, 심지어는 어느 모로 보나 못생긴 경우도 부지기수다. 생김이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니 제 외양을 인정하고 다른 곳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편이 좋겠다. 그러나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엘비라가 꼭 그와 같다.
▲어글리 시스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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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을 멈추지 못하는 신데렐라의 언니
엘비라는 제 외모에 집착한다. 못생긴 축에 속하는 외모 탓으로 주변의 조롱을 받은 게 상처가 되었을까. 치아교정 처치를 통해 조금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치아가 보기 좋게 되었으니 이번엔 코를, 다음엔 눈을, 또 그 다음엔 살을 날씬하게 빼기를 꿈꾼다. 마치 오늘날 한국의 적지 않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성형수술이 흔하게 이뤄지는 이 시대 한국에도 수많은 의료사고, 나아가 의료범죄가 잇따른다. 하물며 성형의료란 것이 시술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던 수백 년 전엔 오죽했을까. 영화는 엘비라에게 각종 수술이며 시술을 하는 의사의 모습을 몹시 독특하게 연출한다. <서브스턴스>의 국제적 흥행 이후 더욱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바디호러 장르답게 감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상을 마주하기 버거울 만큼 불편함을 일깨우는 연출을 거듭한다. 바늘로 눈 밑 살을 꿰맨다거나 기생충 알을 삼킨 뒤 벌어지는 일은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보는 불쾌감과 그 불쾌함을 감내하는 쾌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한다.
엘비라는 치아를 교정하고, 코를 세우고, 눈을 더 매력적으로 가다듬고, 살을 빼는 등의 작업을 통해 꽤 인상적인 외모로 탈바꿈한다. 들인 공이 헛되지 않아서 왕궁에까지 들어가 주목을 받을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 미모 뒤에 가려진 진실을 가감 없이, 아니 더 극단적으로 부각한다. 수많은 처치를 감당하며 생긴 부작용, 허기와 영양부족, 모든 것이 거짓된 방법으로 얻은 것이란 자괴감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외모에 대한 강박은 그 자체로 엘비라의 삶을 갉아먹는다. 바디호러의 장르성에 충실한 <어글리 시스터>는 마침내 그녀가 스스로 제 발을 잘라 구두에 발을 맞추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왕자를 가질 수 없다. 신비스런 마법의 힘으로 신데렐라가 왕자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어글리 시스터포스터해피송
성형 1위 한국을 돌아보게 이끄는
기실 성형중독과 외모에 대한 강박은 이 시대에 더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성형과 미용시술 목적의 관광을 오는 나라, 한국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한국은 자타공인 성형수술에 가장 친숙한 나라다. 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ISAPS)는 인구 1000명 당 한국인이 세계에서 성형수술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뿐인가. 각 도시 도심에선 성형수술을 홍보하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눈과 코를 성형하는 일은 기본이라는 이야기가 방송에서도 쉽게 들려온다.
한국은 성형과 미용을 돈벌이로만 생각한 나머지, 무분별한 수술과 그 부작용, 또 이러한 문화가 커져가는 상황이 가져올 파급효과 등에 대해선 적극적 대처를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의료인 미용성형수술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수년 째 팽개쳐 두고 있고, 부작용에 신음하는 피해자들도 의료소송이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의료계는 성형산업이 얼마나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홍보하는 데만 여념 없다.
<어글리 시스터>의 문제의식이 오늘의 한국 상황에 비추어 새롭다고 하긴 어렵겠다. 더 나은 외모를 꿈꾸다 점차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드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도 흔하고, 영화며 소설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때문이다. <신데렐라>의 조연을 외모강박과 성형중독에 주목해 부각한 선택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 문제의식이 원전보다 월등히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어글리 시스터>를 비롯, <해시태그 시그네> <오늘부터 댄싱퀸> 등 일군의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작품들이 성형 중독, SNS 중독 등 한국에선 이미 현실화된 문제에 주목하고 있단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들에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고 현실을 저당 잡혀 외양을 꾸미는 데 골몰하는 일의 문제점을 날 선 시선으로 부각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외양에 집착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한국의 오늘이 과연 그만큼 진지한 비판과 맞닥뜨린 적 있느냐를 돌아보게 되는 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대하는 저들의 자세가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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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