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애마부인>이 2025년 <애마>로 진화했다. 1980년대 심야영화의 포문을 열었던 '영화'가 글로벌 OTT '시리즈'로 승화됐다. 현재 50대 이상 시청자들에게 음이든 양이든 영향을 끼친 바로 그 전설적인 성인영화 <애마부인>을 두고 현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이런 글을 헌사했다.
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시나리오 작가 심산씨는 <애마부인>의 시나리오 작가 이문웅씨에 관한 글에서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라고 썼다. 당시의 그로테스크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무기력한 시대에 여체의 매혹을 피할 수 없었던 젊은 세대들에게 <애마부인>은 어떤 죄의식의 징표 같은 것이기도 했다. - <씨네21> 2002년 2월 '불능의 시대 밤의 여왕 <애마부인> 20년, 그 환각과 도피의 초상' 중에서
그로테스크한 시대상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성애영화이자 1980년대 속편의 속편까지 이어졌던 밤의 대중문화 아이콘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로 데뷔한 직후 영화화를 염두에 뒀다는 이해영 감독. 충무로 중견 감독인 그는 이 문제적 아이콘을 6부작이란 넉넉한 분량을 통해 성애영화 만들기라는 형식 속 불온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묘파해낸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오리지널의 한계를 여성들의 연대와 시대에 대한 균열이란 주제로 승화해내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그 불온에 대한 도전은 감각적이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고 형식적으로 빼어나지만 분열적이다. 이제는 양지에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시대지만 그 끝이 찬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형성과 신선함 사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에서 스타 배우 정희란을 연기한 배우 이하늬.
냇플릭스
원체 영화에 대한 영화, 메타 영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에 대중은 흥미를 잘 못 느낀다. 그만큼 영화적으로 풀기 어려운 장르다. 컷과 컷을 나눠 찍는 촬영 과정은 지루하다.
<스파이더맨>으로 친숙한 제임스 프랑코가 출연한 HBO <듀스>가 배경이나 주제면에서 비등하게 겹친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시즌이 방영된 <듀스>는 1970~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포르노 산업의 발전상과 이면을 그리는 풍속사인 동시에 이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주제로 내세운다.
가깝게는 넷플릭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가 존재한다. 1980년대 일본 AV사에 있어 유일무이한 족적을 남겼다 평가 받는 무라니시 감독의 흥망성쇠를 통해 버블 시기 일본과 AV 산업을 조망하는 2시즌 짜리 시대물이다.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노출과 선정성이 단골 소재지만 별 볼 일 없던 일본 오리지널 넷플릭스가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내놓게 되는 촉매제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애마>는 닮은 듯 다르다. 여성 배우의 노출을 전면에 내세울 시대도 아니다. 1980년대 <애마부인> 시리즈도 검열에 시달렸다. 충무로에서 노출이 실질적으로 가능했던 건 VHS 비디오가 보급된 1990년대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애마>도 그 길을 간다.
전체 톤은 '무라니시'를 닮았으나 지향과 야심은 <듀스>에 꽂혀있다. 영화에 대한 영화나 여성 서사, 야만의 시대라는 세 가지 축을 견지하려는 뚝심도 생생히 살아 숨 쉰다.
그 완성도와 뚝심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로서 대중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글로벌 OTT 차트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 기준, <애마>는 지난 22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왜 남다른 완성도를 자랑하는 <애마>는 화제성에 반비례하는 로컬 콘텐츠에 머무를 곤경에 처했나.
흔치 않은 '썅년 서사'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에서 스타 배우 정희란을 연기한 배우 이하늬.냇플릭스
시작부터 영화에 대한 영화다. 귀국 비행기에서 10년 넘게 스타로 군림한 정희란(이하나)은 <애마부인> 시나리오를 집어 던진다. 그녀도 이제 지겹다. '그만 좀 벗겨라'는 심정이 극에 달했다. 스타 이면에 '썅년'을 자처하는 정희란은 전속 영화사 사장 구중호(진선규)의 뺨을 날려 버린다.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파티 장에서.
그 정희란은 <애마부인>이 싫다. 이제 제대로된 작품을 하고 싶다. 구중호는 마지막 한 번이란 유혹으로 정희란과 함께 하고 싶다. 정희란을 무매력으로 그려도 좋다. 돈만 벌면 그만이다. 그 사이에 낀 신인 감독 곽인우(조현철)은 난감하다. '에로, 그로(테스크), 논센스'와 ' 3S 정책(스포츠, 스크린, 섹스)라는 세시대가 왔다'는 구호, 그리고 당국의 검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그러는 사이, 나이트클럽 탭댄서 신주애(방효린)이 오디션 장에 당도한다. 신주애로 말할 것 같으면, 풍만한 몸매와 출중한 탭댄스 실력 사이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야심가다. 탭댄스를 끼얹은 매력과 자신감으로 곽인우를 사로 잡은 후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정희란에게 "제작님이랑 감독님이랑 둘 중 X은 누가 더 커요?"라며 둘 중 누구와 자야 하고 선배는 누구와 잤는지 대놓고 묻는 당돌함의 소유자가 바로 미래의 '애마'다.
이후 우리가 예상할 수 있고 예상 가능한 모든 것이 펼쳐진다. 영화에 대한 영화, '쌍년 연대'로 상징되는 여성 서사, 그리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의 풍속화 말이다. 선배 정희란과 후배 신주애는 촬영 전까지 끝없이 대립한다. 정희란은 엽총을 쏘아댈 정도로 구중호에서 벗어나고 싶다. 대찬 배우와 끝끝내 여배우를 벗기길 종용하는 제작자 사이에서 곽인우도 폭발한다.
3S 정책과 새시대는 개뿔, 당국의 검열도, 황색 언론의 기승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신인 배우는 몰랐던 최고 권력에 바치는 성 상납도 여전했다. 그 과정에서 여공들과 친구였던 신주애는 현실을 체감하지만 배우였던 구중호의 애인이 비극을 맞는다. 이 야만의 시대를 뚫고 드라마 속 <애마부인>은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배우' 정희란과 신주애는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전형적이지만 신선하고 재기발랄하다. 개별 소재를 다루는 형식과 감정의 온도는 뜨거울 때 뜨겁고 때때로 관조적이며 시종일관 웃음기를 잃고 싶지 않아 한다. 영화와 영화인, 시대의 아이콘인 여성 배우들에 대한 애정어린 묘사와 진심어린 헌사도 충만하다. 1982년 <애마부인>의 그 안소영이 직접 출연하는 후반부 시상식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야만의 시대를 지목하고 조망하는 건 맞다. '썅년 연대'라는 서사적 결말이 주는 일말의 쾌감과 모종의 저항이 주제에 헌신하는 것도 예상을 뛰어 넘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 시대와 영화를 관통하는 <애마>의 잘 다듬어진 영화적인 제스처들이 정서적인 환기 속에 어떤 대상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시대를 대하는 엄숙함 따위는 중요치 않다. <애마> 스스로 새 시대 새 욕망이 들끓었다고 말한다. 그 불온한 1980년대 속 여성 배우들과 제작자와 감독의 욕망이 흥하고 쇠하며 '무브 온'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울지언정 안온해서 공허하다.
흔치 않은 '쌍년 연대'의 여성 서사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이 시대적 조망은 충만하나 통찰 자체의 전형성 때문인지 주제 천착의 깊이 문제인지 개별 취향 때문인지에 대한 판단도 엇갈릴 듯 싶다. 그래서 계속 곱씹게 된다. 확실한 사실은 <애마>가 올해 나온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이런 고민을 던져준 몇 안 되는 '작품'이라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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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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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완성도에도... 넷플릭스 '애마'는 왜 이지경이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