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슬럼로드 밀리어네어>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영화가 말하는 슬럼로드(Slumlord)는 한두 명의 악덕 임대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작게는 한 건물의 임대인부터 크게는 부동산 개발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 모두는 오래된 건물의 악의적인 방치, 임대료 인상을 위한 압박, 정당한 신고 회피, 책임 떠넘기기와 같은 행동을 통해 모두 서로 얽힌 하나의 체계로 존재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이 체계가 어떻게 평범한 하루의 호흡을 비틀어 놓는지 보여준다. 세입자는 고장을 입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사진을 입증하려 서류를 모으고, 서류를 들고 법정을 오간다. 그 과정에서 집은 쉼터가 아니라 업무가 된다. 증거의 축적이 곧 피로의 축적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도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가난한 노동을 이어가야만 한다.
뉴욕의 주거 문제에는 법과 정책의 구멍 또한 함께 얽혀 있다. 개발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은 투자의 속도를 높였지만, 동시에 거주권의 안전망을 벗겨냈다. 앞서도 이야기했던 임대 규제의 틈새를 이용한 압박, 노후화를 방치해 세입자를 스스로 떠나게 만드는 관행은 이제 흔한 수법이다. 과부화된 주택 법원은 느리게 움직이고, 그 느림은 권력자에게 유리한 시간표가 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자 한다. 세입자들이 겪는 괴롭힘은 결국 평균 임대료 상승과 맞물려 일상을 잠식한다. 영화는 이런 구조를 단일한 대상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대신 제도와 자본이 어떻게 선량한 일상인의 어깨를 밀어내는지 끝까지 추적하고자 한다.
04.
"억만장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우리 동네를 바꾸고,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게 옳을까요?"
이 작품은 몇몇 인물과 지역을 통해 뉴욕 부동산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퀸스 자메이카의 사회운동가 무미타 아흐메드, 브루클린 클린턴힐의 재니나 데이비스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브루클린 선셋파크의 브라보 가족은 영화의 본질적인 감정을 이끌어 간다. 곰팡이와 습기로 오염된 집에서 오래 살아야 했던 이들은 아이들의 천식과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가족은 고통을 숨기지 않고 기록하기로 한다. 사진과 진단서, 민원과 탄원서가 곧 그들의 무기였다. 이 과정은 증거의 축적이자 공동체의 재발견이었다. 영화는 그 긴 싸움과 작은 성취를 같은 무게로 다룬다.
브라보 가족의 기록은 결국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질병의 원인이 개인의 체질에서 주거 환경의 책임으로 이동하게 되는 공식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건물주의 책임에 대한 인권위원회와의 합의도 이끌어낸다. 이 지점에서 다큐멘터리는 피해의 소비를 거부하고, 변화의 언어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활동가와 지역 정치, 법률가들의 연대가 한 점에 모여 정책의 문장을 바꿔낸다. 이런 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고통이 사회적 계약을 새로 쓰는 언어로 바뀌는 순간을 집요하게 뒤따른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슬럼로드 밀리어네어>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5.
영화 속 세입자들은 단순한 '경제적 약자'라는 범주로 묘사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이들은 이민자이거나 유색인종이며, 동시에 여성이고 부모이기도 하다. 집을 둘러싼 불평등은 이런 교차 지점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동산 등기권리증 위조 사기로 집을 빼앗긴 재니나 데이비스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특히 흑인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인종차별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어 장벽과 제도적 취약성이 이민자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영화는 교차적 시선을 통해 주거권 박탈이 인종차별, 젠더 불평등, 그리고 계급적 압박과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교차성은 영화를 단순한 피해 기록이 아니라 정치적 비평으로 확장시킨다. 언어 장벽이 법적 대응을 가로막는 이유와 아이들이 천식과 같은 건강 문제를 먼저 경험하게 되는지, 또한 유사 사건이 하나의 동일한 집단 내에서만 발생하는 까닭을 차례로 제시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불평등은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가 짜 놓은 설계라는 점이 드러난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이 복합성을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어쩌면 주거권의 박탈이 의미하는 것은 정체성의 박탈일지도 모른다.
06.
"뉴욕시는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그중 69%가 세입자이고, 시민의 3분의 1은 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쓴다."
다큐멘터리 <슬럼로드 밀리어네어>가 남기는 것은 화려한 전복이 아니다. 오래된 건물 안에서 곰팡이는 여전히 자라나고, 세입자들은 지금도 법정 복도를 오가며 싸움을 이어간다. 절망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작은 승리, 시위 현장의 구호, 아이의 웃음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 작은 희망이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연대의 뿌리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화가 끝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며, 공동체를 묶는 가장 작은 단위다. 집이라는 공간이 위태로워지면 인간은 병들고, 공동체는 분열하고, 도시는 갈라진다. <슬럼로드 밀리어네어>는 이 단순한 진실을 가장 힘 있게 증언한다. 그리고 그 증언은 국경을 넘어 지금 이곳에도 도달한다. 집이 권리라면, 우리는 그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영화는 답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틈새를 비추며, 각자의 응답을 요구한다. 바로 그 자리에 이 작품의 정치성과 예술성이 함께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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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