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개최 기자회견부산국제영화제 김영덕 마켓위원장, 박광수 이사장, 정한석 집행위원장, 박가언 수석프로그래머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개최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이정민
경쟁영화제로 전환되면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개막작 프리미어 조건도 사라졌다. 이번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27일 개막하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후 9월 4일 개막하는 북미 최대 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를 거쳐 부산영화제에서는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부산영화제 측은 "개막작이 월드 프리미어가 아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영화제 초기부터 10회까지에 해당할 뿐, 2006년 11회 이후 개막작은 월드 프리미어나 인터내셔날 프리미어(자국 상영 후 해외 첫상영)가 기본이었다.
경쟁 부문이 있기 전 심혈을 기울였던, 주로 주목받는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해 온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는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자연스럽게 올해 아시아 최고영화가 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상일 감독의 <국보>, 기예르모 델 트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뉴스> 등 4편이 상영된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상영작들은 경쟁작과 함께 별도의 기자회견이 마련된다.
다만 변성현 감독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 등 다수의 화제작을 연출하며 좋은 평을 받고 있으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오른 감독들의 무게감과 비교할 때 다소 약해 보이는 면도 있다. <굿뉴스>는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영화로, 토론토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다. 부산영화제 측은 '작가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차세대 감독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허브를 자임하고 있으나 아시아영화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모습이다.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을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은 33편인데, 아시아영화를 소개하는 '아시아영화인 창'은 25편으로 예전 기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국독립영화를 소개하는 비전을 아시아로 넓혀 11편을 별도로 선정했다고는 해도, 선정작품 중 유럽영화의 강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아이콘'은 전체 90% 정도가 유럽영화로 구성됐다.
30회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여러 분야에서 심혈을 기울인 점이 엿보인다. 지아장커, 두기봉, 차이밍량, 마르코 벨로키오, 션 베이커 감독 등이 부산을 찾는다. 가족 관객을 위해 부모가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3세~8세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남포동에서만 이뤄지던 커뮤니티비프 관객 대상 행사를 해운대에서 시도하는 것도 특색이다. 부산 전역에서 펼쳐지는 동네방네비프는 해군작전사령부로도 확대했다. 김동호 전 이사장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가 특별상영 형태로 공개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부산영화제 정신 담은 지석상 사라져
▲지난 2017년 부산영화제 개막식 당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추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영화제는 지석상을 제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기로 했었다.부산영화제 제공
하지만 30회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석상 폐지는 논란의 여지가 엿보인다.
영화계가 서운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지난 4월 올해 기조를 공개하면서 상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수상 부문은 더 늘어난 모습이고, 지석상만 사라졌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경쟁작 14편 섹션에서) 뉴커런츠(신인감독 대상)와 지석상(세 편 이상 만든 감독 대상)을 합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뉴커런츠는 경쟁과 비전 섹션에 오른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예전처럼 수상한다.
지석상은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제정됐다. 그는 지난 2014년 보수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부산영화제가 탄압받는 과정에서 2017년 칸영화제 출장 중 급서해 부산영화제와 한국 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한국영화가 표현과 상영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보수세력과 전면전을 벌인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치른 가슴 아픈 희생이었다.
김지석은 부산영화의 적통으로도 평가됐는데, 1980년대 부산대 영화동아리와 부산 프랑스문화원 씨네클럽에서 활동하면서 부산에서의 영화제를 꿈꿨다. 부산영화제가 시작된 이후 각종 프로그램 이름이 김지석의 아이디어일 정도로 부산영화제가 삶의 전부였다.
지석상은 단순히 어떤 개인을 기리는 의미를 넘어 블랙리스트를 통해 표현과 상영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시아 신인 감독을 키워내고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싸우기도 했던 김지석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취지도 있다.
이번에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는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이란 정부에 의해 연금돼 창작을 제한받았을 당시 김지석은 부산영화제 이름으로 규탄 성명을 발표하며, 아시아 영화인들과 공동대응에 나서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부산영화제가 경쟁 전환을 선언했을 때 지석상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30회를 맞으며 김지석을 지우는 셈이 됐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오랜 시간 역임한 이수원 엉화평론가는 "지석상을 없앤 것은 몹시 서운하고 속상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오랜 시간 부산영화제와 협력해 온 일부 영화인들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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