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재 감독의 영화, 거장은 이렇게 완성했다

[여기는 베니스]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부고니아>

23년 전 한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한국 영화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B급 정서가 가득한 블랙코미디 <지구를 지켜라!>다. 장준환 감독의 이 영화는 이전 한국 대중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문법과 주제의식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 영화의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미국에 있었다. 2020년경 CJ ENM 주도하에 할리우드 인디 영화로 준비하던 리메이크 프로젝트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합류하며 규모가 커지게 됐고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28일 저녁 7시(현지시각 기준) 전 세계 관객에 첫선을 보였다. 영화 <부고니아> 이야기다.

<지구를 지켜라!> 주요 요소 차용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부고니아>의 한 장면.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부고니아>의 한 장면.CJ ENM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 전반에 흐르는 주요 요소를 대부분 차용했다. 제목 <부고니아>는 고대 지중해 지역 의식을 뜻하는 단어다. 정육면체 공간 안에 소의 시체를 넣으면 벌이 자연 발생한다는 당시의 의식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같은 제목은 원작 영화 주인공 병구(신하균)가 양봉을 한다는 설정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강만구 사장(백윤식)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 믿는 병구는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넋이 나가 보이는 순이(황정민)라는 인물만이 사랑의 감정을 품고 병구의 수족처럼 강만수 사장 납치와 감금을 돕는다.

<부고니아>에선 주요 인물의 성별이 바뀌었다. 강만구 사장처럼 제약회사 대표인 미셸 풀러(엠마 스톤)가 여성으로, 그리고 그를 납치하려는 테디(제시 플레먼스)와 도니(애이든 델비스)가 사촌 관계로 등장한다. 이밖에도 원작에서 병구의 수상함을 눈치챈 추 형사(이재용)와 비슷한 존재로 경찰(스태브로스 할키어스)이 등장해 긴장감을 더한다.

특이점은 외계인이라 믿는 대상을 감금하고 괴롭히며 추궁하는 과정에서 각 문화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체 공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뼈를 부러뜨리거나 철저하게 배설과 음식 섭취를 제한하며 촉각적 공포를 자극하던 원작과 달리 <부고니아>는 주삿바늘, 장총 등 도구를 활용해 공포감을 준다.

테디와 병구의 신체 능력이나 정신력이 형편없기에 상대의 농간에 쉽게 당한다는 설정은 그대로다. 어찌해서 감금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설득당해 위기에 빠지게 되며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원작이 좀 더 한국정서에 맞는 B급 코미디성이 강했다면 <부고니아>는 보다 묵시론적 메시지와 고어 영화의 요소가 강조된 차이가 있다.

한국 천재 감독 영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한 거장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부고니아>의 한 장면.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부고니아>의 한 장면.CJ ENM

이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등으로 주목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개성이 반영된 결과다. 물리적 격투로 주인공이 수세에 몰리는 원작보다 <부고니아>는 미셸의 강력한 말과 카리스마로 주인공을 내모는 길을 택했다. 이 때문에 카메라 구도 또한 클로즈업과 광각의 활용이 대비되는데,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앰비언트 계열 사운드를 활용해 더욱 기이한 느낌을 준다.

엠마 스톤이나 제시 플레먼스 등 주요 출연진들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전작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에서도 호흡을 맞췄기에 보다 밀도 높은 합이 특징이다. 제시 플레먼스는 해당 작품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미드 소마> <유전> 등 심리 스릴러에 능숙한 아리 애스터 감독이 제작을 맡았고 미국드라마 <석세션> 시리즈 윌 트레이시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부고니아>의 미덕은 결말 부분에도 강력하게 드러난다. 원작 영화의 강 사장처럼 미셸 또한 같은 존재였던 것. 이는 불안한 광기가 지목한 진실이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힘 없고 덧 없는 것인지를 뼈아프게 드러낸다.

한국의 천재 감독 영화를 23년 만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한 거장의 영화는 오는 11월 중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베니스영화제 첫 공개를 시작으로 미국엔 9월 31일 개봉하며 순차적으로 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부고니아 베니스영화제 장준환 요르고스란티모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