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엉망이 흐른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너네 또... 같은 장애인끼리 좀 돕고 살지."
서사 속에서 주어지는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사회가 흔히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개별적 차이를 지우고 동일한 정체성의 집합으로 묶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지우와 함께 여정에 나선 아자가 작은 갈등으로 이탈한 자리에서 지인으로부터 '같은 장애인끼리 좀 돕고 살라'라는 말을 듣게 된 직후의 반응.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이 프레임을 거부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유사한 조건처럼 보이는 자리에 서 있게 되더라도, 각각의 인물이 가지게 되는 경험과 욕망, 상처와 분노는 서로 다른 모습일 것이다.
'같은'이라는 호칭은 연대를 맺기 위한 친절한 연결 고리처럼 보이지만, 이 고리는 종종 상대를 너무나도 쉽게 설명 가능한 단편적인 존재로 환원해 버리곤 한다. 그리고 이 환원의 지점에서 한 사람은 구체성을 잃고 정해진 범주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영화가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은 타자화가 외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진정한 연대는 동질성의 강요, 그룹화(Grouping)이 아니라, 차이의 인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영화가 강조하고 있다.
나와 너의 거리가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도리어 정확한 거리만이 더 나은 관계의 출발점임을 명시한다. 같은 처지라는 말이 주는 위안은 중요하지만, 그 위안이 차이의 침묵을 대가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라는 범주가 상냥한 태도로 동질성의 폭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말이다.
04.
한편, 하루가 망가지는 과정을 이 영화가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과정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감각의 축적으로 표현된다. 기다림은 대기열의 숫자나 경고음 같은 상황이 아닌, 계속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의 체감으로 다가온다. 이때 관객은 이야기의 외곽에서 관찰하는 위치가 아닌, 조금 뒤처진 보폭으로 동행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화면의 구성과 장면 간 연결이 지연과 방해, 우회의 리듬을 일관되게 유지할수록, 우리는 서사적 정보에 앞서 몸의 피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의 윤리가 드러난다. 타인의 불편을 서사적 볼거리로 소비하기보다, 관객이 느낌의 증인이 되도록 배치하는 태도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을 감동적 드라마로 포장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 활동 지원사의 부재,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지연, 사람들의 빠른 보폭 등의 현실을 영화는 사건이라기보다는 피곤하고 지루한 일상의 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관객은 끝내 카타르시스를 얻지 못한 채, 불편함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선택한 리얼리즘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감동 포르노'라 불리는 관습을 거부하고, 현실의 무게를 가감 없이 전시하는 방식. 상업영화의 리듬이 감정적 고양을 약속한다면, 이 영화는 끝까지 엉망인 상태를 그대로 견디게 한다. 그리고 불완전한 리듬 속에서 관객은 비로소 장애인의 하루가 지닌 고통의 밀도를 체감하게 된다.
▲영화 <엉망이 흐른다>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5.
마지막으로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극 중 인물의 용이하지 못한 이동을 인형 뽑기 기계의 크레인을 통해 비춰냈던 순간이다. 인형뽑기 기계의 크레인은 언제나 정해진 사각의 공간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 안에서 집게가 좌우로 흔들리고, 앞뒤로 미끄러지며, 결국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단순한 패턴을 반복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움직임이 스스로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고, 철저히 외부의 손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지우의 하루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가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은 늘 제도가 허락한 틀 속에서만 가능하며, 작은 변수 하나에도 멈춰 버린다. 스스로 원하는 길을 택하기보다, 제도의 통제에 따라 우회하거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인형 뽑기 크레인의 제한된 움직임은, 장애인의 이동이 얼마나 좁은 공간과 불완전한 제도에 묶여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야기의 끝에서 지우와 아자는 다시 만나, 마침내 약속된 장소에 닿는다. 수많은 지연과 갈등, 서로의 오해를 통과한 뒤에 도착한 자리라서, 그 장소는 단순한 도착지가 아니라 함께 도달한 증거가 된다. 영화는 이 장면을 거창하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게 이어지는 길 위에서, 두 사람의 도착은 잔잔한 호흡처럼 스며든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매번 무너질 듯 흔들리는 하루를 끝내 이어가게 하는 연대 가능성이자, 차이를 지운 동질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걸어가는 방식의 확인이다. 결국 이 영화가 붙잡아낸 것은,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 얼굴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크레딧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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