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 벌어지는 일... '왕좌의 게임'이 그린 충격적 순간

[김성호의 씨네만세 1152] HBO <왕좌의 게임> 시즌5

현생 인류의 역사는 4만 년 전 처음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남긴 최초의 기록이 이 시기부터 등장하는 때문이다. 그 시절 인간이란 고작 수십에서 많아야 수백 명이 무리지어 이동하며 생활하는 군집 공동체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삶을 영위했다. 인간이 정착해 농경사회를 이루기까진 3만 년이 더 들었고,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기원전 4000년 즈음에야 일어난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쯤 된 일이다.

인간이 정착해 삶을 꾸리기 위해선 무리의 규모를 키워야 했고, 세를 규합해 문명이라 할 만큼의 문화를 이룩하기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힘이 절실했다. 그는 눈앞에서 막대기를 들어 올리며 힘을 과시하는 옛 부족장의 기세 정도로는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현대 사학자들은 그를 가능케 한 힘을 종교로부터 찾는다.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이 하나의 사회질서에 편입되도록 하는 역할을 종교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대중서 가운데 이 대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들 수 있겠다. 책은 '종교의 법칙'이란 장을 따로 두어 종교가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하라리는 "종교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라며 인간이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기까진 동등한 존재였던 자연을 농경시대 이후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달리 의식하게 되었음을 전한다. 이 시기부터 하늘과 대지, 물과 풍요, 농경 등을 주재하는 신의 존재가 자리잡고 인간이 그를 숭배했단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왕좌의 게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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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가능성과 영향력, 그를 확인케 한다

신과 종교는 발전을 거듭했다. 인간에게 규범과 가치체계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종교는 다신교에서 이신교와 일신교로 경쟁하며 형태를 바꾸어갔다. <사피엔스>는 수백 명의 군집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던 인간이 문명을 이루기에 필요한 수 만 명 단위까지 하나의 사회로써 통합되는 데 종교가 필수적이었다고 설한다. 종교는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긴밀히 조응해온 것이다.

<왕좌의 게임> 시즌5의 주역은 단연 종교다. 일곱 개 영지의 느슨한 결합체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칠왕국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믿는 건 '일곱 신'이라 불리는 신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처녀와 노파, 전사와 대장장이, 이방인까지, 일곱 개의 존재에 각기 신을 두고 이들이 각자 맡은 영역에서 신성을 발휘하고 보살핀다는 게 이들의 세계관이다. 본래 바다 너머 세계의 종교였으나 6000년 전 안달인이 웨스테로스 대륙으로 건너오며 주요 종교로 자리 잡고 발전과 분화를 거듭해왔다.

세계관 아래 다른 종교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고대신이라 불리는 옛 신들이다. 웨스테로스 대륙에 안달인들이 들어와 살기 전에는 본래 '숲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다른 인종이 정착해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나무와 바위, 개울 등 자연적인 장소마다 성소를 만들어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작중 시점엔 주인공 격인 스타크 가문의 영지인 북방과 이들이 세계의 끝처럼 여기는 북부 장벽 너머의 세계에 이런 신앙이 널리 퍼져 있다.

쉬이 예상할 수 있듯 두 종교는 인류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신앙을 바탕으로 창조된 흔적이 역력하다. 일곱 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에 더하여, 이들과 결합해 발전한 가톨릭적 특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시즌5는 가톨릭이 득세했던 중세 유럽을 떠올리게 할 만한 줄거리를 가졌는데, 종교과 재판을 관장하고 자경단 격인 독자적인 단체를 운용하는 등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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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세속적 힘을 가질 때

시즌5의 중심된 이야기는 칠왕국 수도인 킹스랜딩에서 벌어진다. 남편과 아버지, 맏아들까지 연달아 잃고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대비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 분)가 왕인 제 둘째 아들과 결혼해 새로 왕비가 된 마저리(나탈리 도머 분)와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선 타이렐 가문을 견제하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지난 수십 년 일곱 영지를 책임지는 대 영주의 가문 중 가장 강성했던 라니스터 가문이 저물고 두 번째로 부유했던 타이렐 가문이 떠오르는 과정처럼 보이는데, 세르세이는 결코 이를 묵과할 수 없다.

세르세이의 선택은 수도에서 저를 도와줄 강력한 힘을 구하는 것이다. 총리 격인 수관으로 막강한 힘을 가졌던 아버지는 죽었고, 대비 신분으로는 수도경비대 등 공권력을 움직일 수 없어 한계가 명확한 때문이다. 이때 그녀의 선택을 받는 것이 바로 참새단이라 불리는 킹스랜딩 저잣거리의 종교단체다. 앞선 세 시즌에서 다룬 전쟁, 즉 다섯 왕의 전쟁으로부터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게 이 단체가 힘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일곱 신의 신앙이 힘을 잃고 세속적 가치에 빠진 게 오늘의 혼탁한 세상의 이유라 믿는 이들은 더욱 엄격한 신앙체계에 사로잡힌다. 일곱 신의 신앙을 근간으로 하되,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참새라 부르며 한데 모여든다. 그 중심에 대장 참새라 불리는 이(조나단 프라이스 분)가 있다.

드라마는 대장 참새가 이끄는 세력이 기존 칠 왕국 대사제의 성매매 행위를 적발해 그에게 모욕을 주는 등의 장면을 꽤나 인상적으로 연출한다. 성기까지 노출한 채 비난하는 군중 사이를 걷는 대사제의 모습은 그 자체로 더없이 충격적이다.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세르세이는 참새단이 가진 힘에 눈을 뜨고 그를 활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다. 대장 참새에게 접근해 마치 자경단처럼 구는 그의 세력에게 한때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종교경찰의 지위를 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왕좌의 게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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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

<왕좌의 게임> 시리즈 가운데서도 흥행과 평가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시즌5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대장 참새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그는 거침없는 행보로 세속적 종교를 혁파하고 아예 주류 종교의 장이 되더니, 왕비인 마저리를 포함해 왕국에서 손꼽는 가문의 남매를 붙잡아 감금하고 심문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저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앞잡이일 테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무장한 신도들을 합법적 경찰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 그는 저를 키워준 세르세이 라니스터까지 그 행실을 문제 삼아 가두고 죄를 실토하라 강요하는 것이다. 요컨대 시즌5는 종교가 국가권력에 개입하는 걸 넘어 그와 겨루고 아예 승리하여 정치를 장악한 중세 유럽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시즌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은 세르세이가 마치 앞전의 대사제와 마찬가지로 알몸이 되어 분노한 군중 앞에서 속죄의 길을 걷는 순간이겠다. 시리즈 내내 위기를 겪기는 하였으되 어디까지나 넘보기 힘든 귀족이자 권력자였던 그녀가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대굴욕의 순간을 맛보는 장면은 시청자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안긴다. 이를 빚어낸 대장 참새를 연기한 조나단 프라이스가 이후 명작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역으로 기용된 건 이 시즌에서의 압도적 연기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는 정치, 또 세속의 영역에서 종교가 힘을 지닐 때의 상황을 알도록 한다. 인간이 얼마나 광신에 취약한지를 일깨우고, 현실적 불안과 불만, 증오를 먹이로써 종교가 힘을 키우는 과정 또한 설득력 있게 연출한다. 그 결과로 자경단을 넘어 종교경찰의 권한까지 얻은 참새단의 모습은 굳이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오늘날 이란 등지에서 실제로 합법화 되어 있는 종교경찰을 떠올리게 한다. 세속적 힘을 얻기 위해 종교집단은 더더욱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사회는 경직돼 간다. 이란 뿐 아니라 터키 또한 원리원칙적 이슬람주의 종교집단이 통치체제를 이루며 사회통합과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종교가 현실 가운데 득세한 역사적 시기가 대체로 그러했단 건 따로 기록할 만하다.

왕좌의 게임 포스터
왕좌의 게임포스터HBO

종교와 정치의 거리, 현실서도 중요해

<왕좌의 게임> 시즌5는 이처럼 종교가 현실 정치에 개입할 때의 문제, 나아가 그를 가능케 하는 시대상을 생각하도록 한다. 정교가 분리된 세상일지라도 종교는 얼마든지 정치에 개입하려는 욕구를 드러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주요 종교는 모두 정치적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원불교 등의 종교가 정치와 접점을 갖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로 여겨진다. 차별금지법이나 낙태죄 폐지 등 현실 법안에 있어서도 종교단체가 입장을 내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왔단 점은 특기할 정도다. 전광훈과 손현보 등 개신교 목사들이 정치판에서 선명한 극우적 입장을 발표하는 것부터, 요 며칠 김건희 특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통일교의 정당정치 개입 논란, 마찬가지로 지난 수년간 정치세력과 석연찮은 연결성이 지적돼 온 신천지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인구소멸이며 청년소멸 등과 관련하여 지역에서 사이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숱하게 들려온다.

문명 발달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해온 종교가 중세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엔 어떻게 인간을 폭압하고 사회발전을 제약했는지 생각해보는 작업은 이 같은 상황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시리즈 가운데 가장 강렬했던 순간으로 기록될 시즌5가 종교를 핵심적 장치로 활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은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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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