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저는 행복한데요?>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3.
"우리 집에 다른 문제는 없었어?"
햇님이 자신의 우울증 진단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자신이 지나온 근원을 되짚어보는 일이다. 자신이 졸업한 모교를 찾고, 오래된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담긴 기록물을 탐색한다. 신승은 감독이 이처럼 다양한 지점을 제시하면서까지 한 사람이 가진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존재 자체가 개별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햇님이 겪게 되는 또 하나의 갈등은 우울 자체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스튜디오에서의 권력적 구조와 배제 과정은 일부에 불과하다.
햇님의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이미 이에 대한 단서는 몇 번 등장했다. 그의 곁에서 우울증을 먼저 앓고 있던 영희의 서사를 통해서다. 주요 맥락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그의 우울이 사회적 관계와 불합리한 긴장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시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다. 여기에 오랜 친구들조차 영희의 감정을 단순화하고 단편화하여 쉽고 가볍게 다룬다. 그의 곁에서 그런 상황들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가깝게 경험해 왔을 햇님에게 우울은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부정하고자 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자기방어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러 부조리한 상황들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자면, 영화는 표면적으로 개인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한 겹의 레이어 아래에서는 우울증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지 않는 모습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조건과 권력 구조가 우울증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며, 또 낙인하는지에 대해서다.
04.
홈비디오와 일기장이 나오는 일련의 시퀀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장치 가운데 하나로 다시 불러올 가치가 있다. 앞서 이야기 한 지점이 직업적 설정의 은유적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는 기억과 서사가 일치하지 않는 자리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의 햇님은 분명 카메라 앞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에서 설명되지만, 이 부분은 화목하지만은 않았을 가정 환경이 이유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의 일기장에는 언제나 행복과 아름다움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이 간극은 한 사람의 자기 서사가 얼마나 쉽게 연출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말과 기록은 언제나 선택적일 수 있으며, 실제 감정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장면은 매체 자체의 질문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영화 역시 기록과 편집의 예술이며, 언제나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에 따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따라서 이 시퀀스가 함의한 내용은 단순히 햇님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극 중 햇님이 그런 것처럼 우리 또한 스스로의 표면에 놓인 감정과 표정, 행동의 진짜 의미를 확인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고 있는 행복의 서사는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지, 또 우리가 반복해 온 기록에는 얼마나 많은 거짓이 덮여 있는지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다. 이 물음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삶이 어느 것 하나만을 선택한 채로 나아가지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행복하기만 한 삶, 우울하기만 한 삶. 어쩌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05.
지금까지 펼쳐 놓은 이야기들만 놓고 보면 영화 <저는 행복한데요?>는 무겁고 어둡기만 한 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야기 곳곳에는 실소를 터뜨릴만한 장면과 장치가 배치되어 있다. 이는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관객에게 어떻게 건넬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윤리적 고민의 결과와도 같다. 무겁고 진지한 재현은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관객을 위축시키고 거리를 두게 할 위험이 있다. 코미디 장치는 이 지점에서 효과적이다. 웃음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관객이 문제에 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신승은 감독이 이 작품을 '우울증 코미디'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장르적 실험이 아니다.
핵심은 이 웃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유머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는 순간 곧바로 멈칫하게 만든다.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웃음과 동시에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우울증을 희화화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문제를 사유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웃음을 통한 거리 좁히기의 윤리다. 한국 독립영화가 흔히 택해온 리얼리즘적 고통 재현과 비교해 보면, 이 영화의 방식은 분명 차별화된다. <저는 행복한데요?>는 관객을 짓누르지 않으면서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웃음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감독이 말하는 '우울증 코미디'의 힘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동시대 독립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저는 행복한데요?> 스틸컷서울국제여성영화제
06.
잊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영화의 뼈대와도 같은, 햇님을 연기한 손예원이라는 배우다.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차근차근 자신만의 연기 결을 다져온 이 배우는 영화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이후에도 작품의 스케일이나 장르와 상관없이 언제나 캐릭터 내부의 현실성을 찾아내 극대화하는 연기를 이어왔다. 최소한의 몸짓과 시선만으로도 감정을 밀도 있게 전달할 줄 아는 태도는 화려한 기교보다 진실성에 기대어,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조용히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다.
이번 영화 <저는 행복한데요?>에서 그가 맡은 햇님 역은 그동안 그가 쌓아온 연기의 정수가 집약된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연기하며 살아왔지만 내면 깊숙이 억눌린 우울을 마주해야 하는 인물은, 목소리와 몸 사이의 불일치,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과 실제 감정의 차이를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다. 그는 성우라는 직업의 상징성을 활용해, 밝은 연기를 해왔던 배우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현실적 무게를 그대로 캐릭터에 옮겨낸다. 어쩌면, 한 인물 안에 내재된 행복함과 우울함 사이의 거리는, 손예원이라는 배우가 그동안 관객 앞에서 구축해 온 연기 경력의 궤적과 겹치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웃음과 눈물, 연기와 현실, 행복과 우울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함께 연기해야 하는 영화의 요구를 동시에 체현해 내며, 배우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회적 감정을 매개하는가를 보여주는 과정. 그런 그의 연기는 인물의 서사 안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들이 스스로의 삶을 비춰볼 수 있게 하는 매개가 된다.
07.
"우울증은 사건이 아니야. 그동안 수고했어."
<저는 행복한데요?>는 우울을 특별한 병으로 고립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행복과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이며, 때로는 우리가 가장 오래 연기해 온 역할일 수 있다. 영화는 성우라는 직업적 은유, 사회적 낙인, 기억의 불일치, 코미디 형식의 윤리를 통해 우울과 행복의 공존 가능성을 다층적으로 제시한다. 행복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실, 그 연기의 끝에서 관객은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정말로 행복한 걸까?'
이 질문은 단순히 개인의 상태를 묻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해 온 행복의 얼굴을 벗겨내고, 그 뒤에 숨은 고통과 회피,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감정의 결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영화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가 자기 삶에서 연기해 온 웃음과 잠재된 우울을 겹쳐 보도록 만든다. 그렇게 영화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공유하는 불완전한 행복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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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