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보는 영화, 여기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149]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안보영 프로젝트>

안보영 프로젝트 스틸컷
안보영 프로젝트스틸컷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역지사지를 이끄는 영화적 시도

역지사지의 사례가 있다.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이가 느끼고 감각하는 세계를 얼마쯤 체험해보라는 제안이다. 그저 체험 프로그램이라도 흥미로운 작업일 텐데, 그 방식이 또한 새롭다. 영화 <안보영 프로젝트> 이야기다.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본 작품이다. 노영빈 감독의 15분짜리 영화로, 영화제는 이를 다큐멘터리라 분류했다. 제목을 통해 짐작한 이도 있겠으나, 영화는 시각장애를 주요한 소재로 다룬다.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펼쳐내는 이야기를 앞서 연출한 적 있다는 감독이다. 그는 제 지난 작품을 정작 시각장애인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는 시각장애를 가진 안나와 함께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실험한다.

그동안 '씨네만세'는 주로 서사에 집중해 작품을 소개해왔다. 정보의 나열이나 기존 평론적 독법에 집중하기보다 서사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부각하고 평가하는 편이 매체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이라 여겨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소개하기 쉽지 않다. <안보영 프로젝트>의 줄거리, 또 그 형식을 대체 무어라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이건 영화를 만들고 난 뒤 감독이 문제의식을 갖고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일종의 메이킹필름적 다큐멘터리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실험적인 다큐와 극영화, 또 실험영화 간의 결합적 시도인가. 어쩌면 둘 다일 수 있겠다.

영화 속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시각장애인이 영화 한 편을 보기까지의 이야기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본다는 이야기부터가 낯설다. 종합예술인 영화라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시각이 가장 주요한 장르라 여겨온 때문이다. 시각을 배제한 영화가 영화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영화가 아니라고 나는 언제부터 확신해왔다는 말인가. 대체 무엇을 근거로?

안보영 프로젝트 스틸컷
안보영 프로젝트스틸컷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가 있다. 내가 처음 그를 실감한 건 2년 전 문을 연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글과 모더레이터 작업을 청탁받은 뒤였다. 이 영화제는 상영작과 부대행사 전체에서 수어통역과 배리어프리 자막(대사와 소리를 자막으로 표현한 형태)을 제공해 청각장애인의 접근성을 한국 영화제 가운데선 처음으로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있었다. 상당한 수고가 따르는 작업을 이 작은 영화제가 감당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를 나는 의심하였던 터다. 현장에서 감동했다는 청각장애인의 발언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그 생각이 든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영화를 볼 수 없다고 내가 고민 없이 단정지었던 청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시각장애인도 가능한 게 아닐까. 확인해보니 시각장애인은 화면해설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비장애인이 라디오를 듣듯, 소리로써 영화의 시각적 요소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영화관이 한 달에 한 편 가량,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시간대에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고 있단 점은 기록할 만하다. 이십 년 가까이나 영화평론을 해온 내가 이러한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안보영 프로젝트> 속 영화에서 시각장애인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데 성공한다. 그는 그 자체로 만만한 일이 아니기에 위기와 극복이 있는 나름의 서사로써 영화로 완성됐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이자 주요한 소재인 시각장애인이 정작 제가 나온 영화를 볼 수 없다면? 어쩌면 비장애인의 무관심이 장애인을 위한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기 어려운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안보영 프로젝트>가 맞서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일 테다.

영화는 시각장애인의 상황을 알도록 하기 위한 역지사지의 시도다. 실제 시각장애를 가진 배우 박안나를 주인공이자 내레이터로 활용해 장애인이 영화를 보는 일의 버거움을 알도록 한다. 이들이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낯설게 다가올수록, 그에 대해 무지했던 비장애인으로의 삶을 실감하게 된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포스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포스터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눈을 감고 영화를 보는 경험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건 영화의 후반부다. 뒤죽박죽의 제작일기처럼 보이던 작품은 어느 순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를 체험하길 권한다. 영화 가운데 '지금부터는 눈을 감고 보는 것도 괜찮다'는 제안이 이뤄진 뒤 누군가는, 어쩌면 꽤 많은 관객들이 눈을 감고 영화를 '보았'을 테다. 나 또한 그랬다. 눈을 감고서 이 영화를 감상한 것이다.

<안보영 프로젝트>는 눈 감고 보는, 내가 아는 한 유일한 작품이다. 눈을 감고서 소리에만 집중해가며 이야기를 더듬는 작업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어쩌면 누군가에겐 유일하며 가장 보통의 방식일 수 있으리란 걸 깨닫게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일생동안 봐 온 영화라는 매체가 비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음도 실감하게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어떤 형태일지를 고민하는 건 자연스런 귀결일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만든 노영빈 감독이 먼저 걸어간 길이다.

나는 <안보영 프로젝트>가 올해 본 가장 창의적인 영화라고 말할 밖에 없다. 그건 이 영화가 영화라는 매체가 그간 배제해 왔던 이들을 영화 안으로 포용하려는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때문이고, 형식적으로도 비장애인들에게 역지사지의 체험을 통한 이해를 준비한 독창적 시도를 감행하는 까닭이다.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졌느냐와 별개로, 그 체험 자체로써 관객은 적어도 시각장애인과 영화의 관계맺음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다. 나아가 그 이상으로까지 확장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영화는 장애인으로 겪는 현실적 어려움 또한 섬세한 표현으로 부각한다. 짤막한 단편이지만 담긴 고심도 그 영향도 결코 가볍지는 않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적어도 장애 문제에 있어 역지사지의 사고를 하도록 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 영화가 해낸 것이 딱 그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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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