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 활이나 총을 쏠 때 목표가 되는 표적이다. 관중, 즉 중앙을 꿰뚫는 만점자리 사격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다. 과녁 정중앙을 맞히는 것이 최고의 사격이 되는 게 보통이다.
사격도 과녁도 흔히 세상사며 인생사에 빗대어지고는 한다. 그건 무엇을 노리고, 또 맞히거나 못 맞히는 일이 세상과 인생에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겠다. 양궁을 주요한 소재로 쓴 영화 <과녁은 어디에>가 꼭 그러해서, 양궁장 과녁이야 너른 들판 한가운데 잘 보이게 둔 것이 보통이지만 제목은 그를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과녁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때에야 우리는 과녁을 충실히 보지 못하고 산단 걸 깨달을 밖에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비슷한 이야기 하나 꺼내어 보련다. 나는 항해사로 대륙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아프리카를 돌고 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며 몇 차례 항차를 다녀온 일이 있다. 거대한 빌딩을 가로로 눕혀놓은 듯한 자동차운반선을 몰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일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인데, 그를 위한 면허를 취득하는 건 정말이지 만만치는 않은 일이었다. 1년을 꼬박 들여서야 항해사 3급 면장을 취득했던 시절, 시험에 필요한 수십 개 과목 가운데서도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항해학이었다.
너른 바다를 오가는 항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내 위치를 아는 일이다. 2차원 수면 위에 자리 잡고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좌표를 옮기는 작업이다. 육지라면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왼편에 마트가 있고 오른편엔 도로가 있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고 나아갈 방향은 또 어디인지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망망대해 위라면? 어느 곳이 앞이고 어느 쪽은 뒤인지를,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영 알 수가 없다. 그때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 해와 달, 별자리와 각종 물표, 또 시간과 해도를 통하여 내가 있는 곳과 나아갈 곳을 따지는 것이 항해의 본질이 된다.
▲과녁은 어디에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물어야 하지만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육지에 사는 사람은 해와 달, 별자리와 시간을 통하여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구태여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삶 가운데 한 차례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나머지 아예 내가 있는 곳과 목적지를 따지는 방법조차 잊어버리는 건 마땅하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내가 선 곳이며 목적지를 아는 듯 행세하지만, 참말로 그러한가. 우리의 생은 정말이지 우리가 정한 나아갈 목적지로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현재도, 나아가는 방향도 점검하지 않고서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물표에 현혹돼 살아내기 급급한 삶이 세상엔 얼마나 흔하고 많은가.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멀리뛰기 섹션에서 상영된 <과녁은 어디에>는 위와 같이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그리 흔치만은 않은 작품이다. 김동은 감독의 25분짜리 극영화로, 전국구 양궁 대회 4강전을 배경으로, 승부조작에 개입된 선수의 사정을 가까이서 비춘다.
주인공은 민재다. 한때 전국구 대회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전직 국가대표지만, 그 이후로는 성적이 영 좋지 못하였다. 쟁쟁한 선수가 워낙 많은 한국 양궁계에서 한때 조금 잘 쏘았다고 선수경력이 쭉 잘 풀리길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부담감 때문일까. 분명한 재능이 있음에도, 이후 출전한 대회마다 입상에 실패하고 국가대표와도 멀어진 그녀가 이제는 사람들의 기대조차 받고 있지 못함은 물론이다.
이번 대회 4강은 그래서 절실한 기회다. 우승한다면 다시 국가대표로 발돋움하고 선수경력의 정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퇴물이 되었단 비아냥거림도 물리칠 수 있는 역전의 활약을 민재가 누구보다 해내고 싶을 터다.
▲과녁은 어디에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허공을 향해 시위를 당긴 양궁선수
그러나 민재는 그 모두를 포기한 듯 보인다. 4강까지 진출하는 활약에도 경기를 앞두고 대회를 마치면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번 대회가 선수인생 황혼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라는데, 내실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과녁은 어디에>는 4강전을 앞두고 양궁장에 들어선 민재의 하루를 살피는 한편으로, 이 경기 뒤에 자리한 어두운 내막을 내보인다. 말하자면 민재는 형편이 어려운 선수였고, 아버지라고 하나 있는 이는 허구한 날 경마로 돈을 벌겠다고 노동으로 번 수입을 죄다 탕진하여 집에 빚더미만 무겁게 만들어놓은 사람이다. 민재는 빚을 갚아야 할 현실적 이유가 있었으나 그저 그런 성적만 되풀이하는 그녀의 연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에게 뻗쳐온 검은 손은 협회 관계자를 통하여 승부조작을 제안한다. 4강전에서 알아서 져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의 현찰이 든 음료수 상자를 건넨 것이다. 그 돈을 받는 순간, 민재는 이미 스포츠 선수가 아니다. 민재가 그 돈을 전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들어가 제가 지는 데 배팅했다는 건 비밀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일이다.
<과녁은 어디에>는 그토록 꿈꾸던 전국구 대회 준결승장 무대에 선 민재가 겨누고 있는 목표를 보도록 한다. 상대는 여물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풋내기로 쏘는 족족 화살이 어중간한 곳에 꽂히는데,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하여 민재가 쏘아야 할 곳은 언제나 그보다 못한 지점이다. 말하자면 과녁은 과녁이되 민재의 과녁이 되는 건 통상 관중, 즉 텐이라 불리는 정중앙이 아니라 상대보다 못한 외곽 테두리가 된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포스터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당신의 과녁은 어디에 있습니까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건 이 지점부터다. 활쏘기란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가. 그날의 온도와 습도, 바람과 분위기에 하나하나 영향을 받아 약간의 움직임이 큰 차이를 빚어낸다. 영화는 민재가 경기의 흐름과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몰입하고 환희를 느끼는 순간을 흥미롭게 포착한다. 배우 금해나는 빨리 경기를 마치고 목돈을 손에 쥐어야 하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경기 그 자체를 즐기는, 또 제 양궁인생의 절정을 그 비극적인 무대에서 맞이하는 이의 심리를 탁월하게 연기해낸다.
텐, 텐, 텐이다. 어느 순간 민재가 쏜 화살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 표적에 명확하게 박힌다. 거듭 그저 그런 곳을 쏴서 안정적으로 패할 수 있던 경기가 일순 급변하는 순간이다. 이기고 싶다, 잘 쏘고 싶다는 선명한 목표가 오랜만에, 어쩌면 수년 만에 그녀 앞에 드러난다. 신들린 듯 활을 쏘는 민재의 활약에 잦아들었던 긴장이 경기장을 휘감는다. 그녀에게 돈을 건넨 협회 관계자가 전전긍긍하는 상황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다.
<과녁은 어디에>는 양궁장에 가만히 선 과녁을 넘어, 선수인생, 나아가 자연인으로서의 일생의 과녁을 생각하도록 한다. 승부조작을 하기로 한 시점부터가 그녀의 과녁은 패하는 곳에 있었다는 것을, 제 인생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케 한다. 누구보다 하고 싶었으나 해내지 못하여 괴로워했을 때는 그래도 과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는 걸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쏘아 맞춰야 할 과녁이 있어선 안 될 자리에 누운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 꼭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삶을 알고 사는 듯이, 어디에 과녁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단 듯이 살지만, 현실은 그와는 영 다른 모습이지는 않는가. 마치 망망대해 위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전력으로 가고 있으니, 또 어찌됐든 움직이고 있으니 괜찮다는 듯 삶을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녁은 어디에>의 결말은 꽤나 인상적이다. 승부조작과 이후 이어진 불법도박의 여파로써 민재가 맞이한 현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다. 그런 순간에 날아든 빛나는 살 하나, 그걸 이 영화가 연출해낸다. 말하자면 어느 화살은 살아있음을 향해 쏘아지고, 또 어느 화살은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이따금은 민재가 그러했듯 죽음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쏘아야 할, 겨눠야 할 과녁은 어디인가. 마땅한 과녁은 언제고 '삶을 향하여' 놓여 있어야 한단 것, 그것이 이 매력적인 영화 <과녁은 어디에>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은퇴 전 마지막 경기, 수천만원 '승부조작' 제안받은 선수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