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믹스라고들 한다.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같은 콘텐츠를 형식을 바꾸어 새로 빚어내는 일을 말한다. 웹소설을 웹툰으로, 다시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애니로, 나아가 실사영화로까지 제작하면 이 시대 성공적인 미디어믹스 일순환이 된다.
비록 참담한 완성도로 인하여 흥행에 참패하긴 했으나 근래 개봉한 <전지적 독자 시점>이 미디어믹스의 좋은 사례가 되겠다. 작품은 웹소설에서 출발해 웹툰을 거쳐 실사영화가 제작됐고, 일본과 협력해 TV 애니메이션 또한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과 일본이 각기 잘 하는 부문에서 협력한 미디어믹스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이 대표적으로,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한국 웹툰, 또 일본 TV 애니메이션이 2기까지 제작돼 흥행했다.
손익분기점엔 미달했으나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 가운데선 드물게 관객수 50만 명에 달한 <퇴마록> 또한 미디어믹스의 대표사례라 할 만하다. 1000만 부 판매고를 올린 이우혁의 명작 소설 <퇴마록>을 한국 기술로 애니로 제작해 기대를 모았다. 작품성이 심각한 수준이던 1998년 작 실사영화에 비하여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스톱모션 애니로 태어난 명작 동화 '짱뚱이'
▲짱뚱이네 똥황토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이처럼 미디어믹스는 같은 이야기를 형식을 바꾸어 제작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던 과거의 관행을 넘어서 웹툰과 TV 애니, 극장판 애니, 게임과 드라마, 실사영화에 이르는 한 바퀴 순환을 선택적으로 해냄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다. 매체에 따라 선호하는 팬층이 다를뿐더러, 매체를 넘어 고정 팬층이 기본적인 흥행의 지지대가 된다는 점에서 산업적으로는 긍정적 지점이 많다.
그러나 미디어믹스의 근간은 산업 이전에 예술적 선택에 있단 걸 잊어선 안 된다. 어느 작품을 매체를 바꾸어 새로 만들기로 결정하는 데는 그 작품의 소구력이 이 시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확신이 자리한다. 이를테면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은 뒤 이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있었기에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베니오프가 HBO에서 미국 드라마 사상 역대급 성공작이라 불린 <왕좌의 게임>을 제작한 것도 조지 R. 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가 영상물로서 충만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좋은 작품을 영상화하겠다는 열망, 그것이 미디어믹스의 근간인 것이다.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선 실사영화 외에도 몇 편의 애니가 상영돼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짱뚱이네 똥황토>가 그중 하나로, 각별히 공이 들어간 흔적이 역력한 작품으로부터 적잖은 관객이 격렬한 호응을 보냈던 것이다. 26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부부 영화인인 박재범과 이윤지가 연출과 애니를 각각 맡아 제작한 작품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 <짱뚱이> 시리즈다. 오진희 작가의 동화로, 1970년대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짱뚱이란 별명을 가진 선머슴 여자아이의 정감 가는 이야기를 그림 위에 얹어내 펴낸 유명한 연작이다. <짱뚱이네 똥황토>는 이 시리즈를 스톱모션 애니로 새로이 제작한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원작자에게 연락해 '원하는 대로 만들라'는 전권을 얻어 만들었다 전한다.
50년을 건너 이 시대와 통하려 드는
▲짱뚱이네 똥황토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1970년대, 그러니까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의 이야기다. 말하자면 <짱뚱이네 똥황토>는 반 세기가 넘게 지난 옛 이야기란 뜻인데, 10살 쯤 먹은 짱뚱이는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고 남았을 테다. 그렇다면 단물도 진즉에 빠졌을 이 이야기를 어찌하여 새로이 단장해 제작하고 이를 영화제에까지 내걸게 되었을까. 이 영화가 반세기를 건너 오늘의 한국사회에 어떤 소구력을 발하기에.
영화제는 이 작품을 '멀리뛰기' 섹션에 들여 관객 앞에 내보였다. 멀리뛰기는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추려 소개하는 섹션이란 설명이 붙었는데, 50년 전 시골마을에서 어린아이 짱뚱이가 겪는 좌충우돌의 일상이 어찌하여 평화와 통일과 닿는다는 건지 얼핏 감이 안 올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짱뚱이가 똥황토와 만나고 이별하며 재회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여기서 똥황토란 키우는 개 이름이다. 앞에 붙은 '똥'에서 짐작할 수 있듯, 품종은 자랑스러운 한국형 시고르 자브종, 그냥 똥개다. 족보라곤 없는 똥개는 본래 키우던 어미개가 낳은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시절 많은 집이 그러했듯 생활이 팍팍했던 짱뚱이네 부모가 여기저기 새끼를 내다팔고 남은 한 마리를 그대로 키우게 되었다는 얘기다.
영화는 여러 마리 새끼들 중에서 짱뚱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똥황토를 하필 맡아 키우게 되기까지의 과정, 기껏 정이 들었으나 이마저 잃게 되는 이야기를 정감가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선머슴 소녀의 시골생활에 평화도 통일도 있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포스터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짱뚱이네 집은 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늘 여유롭지가 못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집의 가장 큰 관심은 언제나 짱뚱이의 동생에게 향한다. 동생이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인 관계로, 집안의 아픈 손가락인 까닭이다. 건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기가 뻗쳐서 늘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 짱뚱이에겐 별 관심이 닿지 않는다. 짱뚱이는 내심 부모의 애정이 고프지만 걷지 못하는 동생을 보자면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형편임을 스스로 잘 안다. 게다가 바깥에서 뛰노는 것으로 하루가 금방 지나가지 않는가.
<짱뚱이네 똥황토>는 마치 황토방처럼 무해하고 몸에 좋은 기운을 한껏 내뿜는 작품이다. 이제는 동화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시골에서의 삶, 우리네 어른들이 겪어냈을 그 시절의 인생을 도심 시멘트와 우레탄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책임을 다하려 애쓰는 부모와, 그 노력 속에서도 생겨나는 애정과 돌봄의 공백, 어른의 시선으로는 쉬이 닿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동심 가득한 이야기가 정감 가득한 스톱모션 애니를 통해 태어나는 과정 또한 매력적이다. 애니 중에서도 시간과 정성이 드는 스톱모션 애니가 지난 시대 시골의 정서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매체를 옮겨 다시 빚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맺음, 애정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방식, 장애를 대하고 조명하는 태도, 무엇보다 인간이 살아가는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제가 이 작품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가 있는 애니로 가려뽑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평화도, 통일도, 결국은 인간의 삶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쟁과 다툼은 짱뚱이며 똥황토의 삶 가운데는 발붙일 수 없는 일이니.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인간에게 짱뚱이와 똥황토의 천진한 시절이 있었으리란 믿음은 인간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되어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평화를 좋아하는 마음쯤은 있으리란 기대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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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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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시골 소녀의 이야기, 통일과 무슨 관련 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