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피플는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존중은 보장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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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피플은 공만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선수의 수건을 전달하고, 우산을 들고, 햇빛을 가리며, 때로는 음료까지 건넨다. 선수와 카메라, 규정 사이에서 경기의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까지 이들이 맡아야 할까? ATP 관계자가 2024년 7월 <로이터> 기사에서 "볼피플이 수건을 전달해 주면 이동 시간을 줄여 경기 템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찬성 측은 이를 경기 운영의 필수 노동으로 보는 듯하다. 선수들이 불필요하게 코트 곳곳을 오가지 않아도 되니 리듬이 유지되고, 관객 입장에서도 템포가 끊기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언제나 모순적이다. 일부 대회는 "눈을 맞추지 말 것,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말 것, 화면에 보이지 말 것" 같은 규율을 만들어, 카메라 속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그랜드슬램 경기는 볼키즈에게 랄프 로렌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혀,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활용한다. 복장 규정이 간단한 것도 아니다. 모자 각도, 양말 길이, 로고 노출 위치까지 규정돼 있다.'보이지 않지만, 잘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존중과 무시 사이
이처럼 볼피플는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존중은 보장되지 않는다.
2018년, 스페인 선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는 수건을 늦게 가져온 볼보이를 향해 공개적으로 고성을 질렀다. 단순한 불만 표출이었을지라도,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향한 고압적 태도는 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동료 선수 로저 페더러가 직접 나서 "볼키즈를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2024년 인디언웰스에서는 다른 양상이 연출됐다. 야닉 시너가 알카라스와 맞붙던 경기에서, 볼걸이 무거운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너가 직접 우산을 들어주었다. 관중과 언론은 이를 두고 "매너 있는 선수"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선수가 자기 우산을 직접 드는 행위가 미담으로 소비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그만큼 볼피플의 '노동'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은폐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가장 최근인 2025년까지도 이러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인디언웰스 대회에서는 세계 1위 이가 시비옹테크의 라켓에서 날아간 분노 섞인 타구가 볼보이 근처로 향해 논란이 됐다.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다"며 사과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공이 맞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선수의 감정적 행위가 볼보이에게 물리적 위협으로 다가가는 순간, 경기장 안의 권력 불균형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문제는 개별 선수의 태도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볼피플을 '존중받으면 특별한 일'로 위치 짓는 문화가 더 큰 문제다. 존중은 선택적 미담이 아니라, 제도적 보장이어야 한다.
최소한의 상상력
볼피플 처우 문제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수천억 원대의 티켓, 중계, 스폰서 수익이 오가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몫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은 구조적으로 불균형하다.
대회 수익의 일정 비율을 '볼키즈 기금'으로 적립해 장학금이나 해외 연수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물론 기존 선수 상금 분배나 대회 운영비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즉각 실현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볼키즈도 투어 운영의 필수 인력"이라는 인식 전환은 시작되어야 한다.
볼피플의 또 다른 문제는 안전이다. 시속 200km의 타구, 미끄러운 코트, 반복되는 고강도 업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테니스 공을 자동으로 수거하는 로봇 기술이 개발·소개되고 있지만 아직은 비용과 전통적 운영 방식 등의 장벽으로 공식 대회에선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전면적 대체가 아니라, 인간-기계 병행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로봇이 담당하고, 볼키즈는 센터코트 운영이나 선수·관객과의 소통 같은 인간적인 역할에 집중하는 식이다. 비록 실현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스포츠가 기술 혁신을 끌어안는 미래적 장면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논의다.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다른 스포츠에도 볼보이·배트보이 같은 보조 인력이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적이거나 체험 성격에 머문다. 반면 테니스에서 볼피플은 경기의 속도와 리듬을 유지하는 필수 노동으로 자리 잡았고, 수천 명 단위의 조직적 선발과 훈련, 브랜드·전통과 결합된 상징적 존재로 발전했다. 이 지점에서 테니스만의 독특한 문화와 그에 따른 책임이 생겨난다.
경기를 매끄럽게 유지하는 순간의 노동이 당연시될 때, 존중은 가장 먼저 사라진다. 테니스가 진정한 권위를 유지하려면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지탱하는 이들에 대한 대우에부터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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