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계절이다. 길을 걷자면 매미들이 우는 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어찌하여 매미란 녀석은 종일 울기만 하는 건지, 가끔은 이 녀석들이 미워질 정도다. 매미가 많이 출몰하는 지역에선 어렵지 않게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도 발견할 수 있다. 매미와 꼭 같은 형태의 갈색 껍데기가 잎사귀 위에 매달려 있는 형태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와 물기를 말린 뒤 날아가고 남긴 것으로, 변태의 흔적이다.
매미는 불완전변태하는 곤충의 대표격이다. 고치에 들어가 애벌레에서 나비로 탈바꿈하는 완전변태와 달리, 불완전변태하는 곤충들은 허물을 벗으며 조금씩 그 몸집을 키워간다. 번데기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금씩 성충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완전변태하는 류에 비하여 극적 변화는 없어 보이지만 느려도 분명한 성장이 오늘의 매미를 만든다.
말하자면 완전변태하는 곤충만이 성장하지 않는다. 불완전변태하는 곤충 또한 성장을 한다. 극적이지 않아도, 느리게만 보여도, 매미는 목청껏 울 수 있는 시절을 맞이한다.
▲봄매미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지루한 수학여행, 친구와 몰래 빠져나갔다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작 가운데 <봄매미>란 작품이 있다. 강민아 감독의 28분짜리 신작 극영화로,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여고생들의 한철을 다루었다. 단짝 친구인 재영과 윤지가 주인공으로, 이들이 수학여행 대열에서 이탈해 낯선 또래 친구를 만나며 생기는 일을 다루었다.
한국 학생들에게 여행은 낯선 경험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또 남는 시간을 학원이며 학업에 들여야 하는 것이 보통의 한국 학생이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쉼을 갖는 여행은 부모와 함께가 아니라면 따로 갖기 어려운 경험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경우 수학여행은 친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으로 기록되기 십상이다.
다만 아쉬운 건 수학여행이 말이 여행이지 실제는 참관이며 관람의 성격을 갖는단 점일 테다. 여행이라 하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경험이지만, 수학여행에선 도통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교사의 인솔 아래서 학생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고 학교가 일방적으로 정한 일정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통제는 자연히 반발을 부르게 마련이다. 수학여행 때마다 술을 숨겨 반입한다거나 무리로부터 이탈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다.
<봄매미>의 주인공들도 그런 이들이다. 화장실도 같이 다닐 것만 같은 단짝친구 두 명이 무리를 벗어나 어느 계곡으로 숨어든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적극적이고 새로운 시도에 거리낌이 없는 재영(김진영 분)과 요조숙녀처럼 섬세하고 조금은 까탈스런 윤지(강민주 분)가 바로 그들이다. 계곡 인근에 유명한 디저트 가게가 있다며 윤지를 꼬드긴 재영이다. 언제나처럼 못이기는 척 따라온 윤지는 가게가 아니라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자는 재영의 모습이 조금은 못마땅한 듯도 보인다. 그렇지만 무리에서 몰래 이탈해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나름대로 짜릿하고 즐겁기도 해서, 어찌됐든 둘은 계곡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봄매미스틸컷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섬세하고 미묘하게 일어나는 마음들
영화는 재영과 윤지 앞에 또래 여자아이 희수(엄서윤 분)가 나타나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학교를 그만뒀다는 희수는 이따금씩 수학여행을 오는 아이들을 구경하러 일대를 찾는다고. 언제나처럼 새로운 것에 거리낌 없이 다가서는 재영이 희수에게 호기심을 드러내고, 이들은 희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하기로 한다. 윤지의 교복을 희수에게 입혀 수학여행 중인 무리 가운데 섞이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는 수학여행 기간 동안 재영과 윤지, 그리고 희수가 겪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같은 방을 쓰는 아이들과 베개싸움을 하고, 몰래 술을 들여와 마셔보기도 하는 등 또래 아이들이 흔히 흥미를 가질 법한 일탈적 놀이를 이어간다. 흥미로운 건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희수가 재영과 윤지 사이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적극적인 재영이 잠깐의 만남으로부터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예 밤중에 숙소를 빠져나가 윤지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둔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과 희수가 재회하고, 셋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마주한다.
<봄매미>는 그저 어느 수학여행에서 벌어진 일탈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그저 배경일 뿐, 본질적으로 미묘한 관계의 진동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데 그 관심을 두고 있다. 요컨대 재영과 윤지의 관계가 그것으로, 안정적인 쌍방의 친구관계처럼 보였던 둘 사이가 희수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으로 진면목을 드러내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재영을 바라보는 윤지의 시선은 각별히 주의할 만하다. 둘이 서로를 좋아하는 방식은 이들의 성격만큼이나 전혀 다른데, 재영의 관심은 언제나 바깥을 향하는 반면, 윤지는 늘 재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재영을 향한 은근하지만 분명한 호감은, 오로지 둘만 있을 적엔 그저 강한 우정처럼 보이지만 희수가 등장하면서부터 질투와 애정의 색채를 발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개념어로 명확히 구분해 포착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관심과 애정, 소유욕과 불안, 열정과 욕망이 뒤섞인 감정이 때로는 우정이란 이름으로, 또 때로는 사랑이란 표현으로 불릴 뿐이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포스터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게다가 윤지는 이제 겨우 십대 후반의 소녀로, 제게 일어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다스리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아이다. 심지어 동성 친구를 향해 일어나는 욕구와 불안은 어딘지 그 마음을 감추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으로까지 작용한다. 희수가 둘 사이에 나타나고, 재영이 제가 아닌 희수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한 상황은 윤지에게 다분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는 희수에게 방어적이며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싶은 충동을 경험하는 것이다.
정도는 다르겠으나 비슷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친구에게 이성인 애인이 생겼을 때 친구가 아닌 친구의 애인에게 질투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듯한 불안,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공포, 그러면서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혼란까지를 우리는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봄매미>는 희수를 향하는 재영, 재영을 바라보는 윤지, 다시 윤지를 관찰하는 희수의 시선을 의미심장하게 포착한다. 이들이 다른 이는 보지 못하는 것을 남다른 관심으로 찾아내는 순간이 적잖이 인상적이다. 오가는 시선, 애써 붙들어 매는 마음, 스스로도 무언지 모르는 감정의 폭발까지가 인생 어느 시점에 충분히 있을 법한 드라마로 빚어졌다.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한 이 아이들에게 수학여행 마지막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가를 영화를 보는 이는 모두 느낄 수가 있을 테다.
<봄매미>는 대단히 극적이진 않아도 자연스런 성장기를 그린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어가며 불완전변태하는 모습처럼, 조금씩 더 어른스러워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인 '봄매미'는 성장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내보인다. 마침내 여름이 되면 쨍한 목소리를 가질 아이들의 봄철이, 아직은 미숙하지만 허물을 벗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성장기가 이 영화 안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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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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