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6대 대통령 선거와 제2 연평해전, 삼성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1985년은 통합우승) 같은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2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2002년의 대형 사건은 역시 한·일월드컵이다.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첫 승과 함께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축구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4강신화'를 달성했다.
그리고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단숨에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2001년까지 연이은 대패로 '오대영'으로 불리며 많은 비판과 함께 경질 요구에 시달리던 히딩크 감독은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한국 축구 역사상 최강의 팀을 만들어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로 돌아가 한국 대표팀 시절 제자였던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해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돕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팬들로부터 '히동구'라는 한국 이름과 함께 명예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2002년 천하의 히딩크 감독에게 견줄 만한 인기를 누렸던 또 한 명의 '대세스타'가 있었다. 2001년 데뷔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2년 초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하반기 앨범을 발표해 MBC와 KBS 가요대상을 독식했던 장나라가 그 주인공이다.
▲<미스터Q>와 <토마토>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명랑소녀 성공기>는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명랑소녀 성공기> 홈페이지
2002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장나라 신드롬'
고교 시절이던 1998년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에 출연했던 장나라는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슬픈 가사와 멜로디의 데뷔곡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는 장나라에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곧바로 시트콤 <뉴논스톱>에 캐스팅 되면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 시작했다. 장나라는 <뉴논스톱>의 성공 이후 후속곡 '고백'과 삼속곡(?) '4월 이야기'를 연속으로 히트 시켰다.
<뉴논스톱>을 통해 주목 받는 신예 스타로 떠오른 장나라는 2002년 초 SBS 미니시리즈 <명랑소녀 성공기>에 출연했고 <명랑소녀 성공기>는 장나라의 원맨쇼에 힘입어 42.6%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장나라는 그해 여름에 출연한 <내 사랑 팔쥐>가 <야인시대>를 만나 고전했지만 10월에 발표한 2집 < Sweet Dream >이 크게 히트하면서 MBC와 KBS 가요대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데뷔 1년 반 만에 최고의 대세스타에 등극한 장나라는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오! 해피데이>가 아쉬운 완성도 속에 혹평을 받으면서 주춤했다. 장나라는 2003년 연말에 발표한 3집에서 '그게 정말이니'와 '나도 여자랍니다'로 사랑 받았지만 아쉽게도 3집은 장나라의 실질적인 마지막 가수 활동이 됐다. 장나라는 2004년 드라마 <사랑을 할거야>를 끝으로 중국에 진출하면서 국내 활동이 뜸해졌다.
2004년 연말 4집을 발표했을 때도 제대로 된 국내 활동을 하지 못한 장나라는 2005년 드라마 <웨딩> 출연 후 다시 중국 활동에 매진하다가 2011년 <동안미녀>를 통해 6년 만에 복귀했다. <학교2013>에서 기간제 교사 역을 맡은 장나라는 2014년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과 12년 만에 재회했고 <미스터백> <고백부부> <한번 더 해피엔딩> 등에 출연하며 다시 활발한 국내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 <황후의 품격>으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 2019년 < VIP >를 통해 SBS 연기대상 프로듀서상을 수상한 장나라는 2022년 < VIP >의 카메라 감독과 결혼했다. 결혼 후 <패밀리>와 <나의 해피엔드>에 출연한 장나라는 2024년 <굿파트너>를 통해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장나라는 22년의 시간 차를 두고 가요대상과 연기대상을 모두 수상한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연예인이 됐다.
시골소녀가 추락한 왕자를 구하는 이야기
▲<명랑소녀 성공기>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설정을 새롭게 비틀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SBS 화면캡처
<명랑소녀 성공기>는 1990년대 후반 < 미스터Q >와 <토마토>를 크게 히트 시켰던 SBS가 자랑하는 '흥행보증수표' 장기홍 PD와 이희명 작가가 4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다. 2002년의 시작을 알렸던 채림, 소지섭, 권상우 주연의 <지금은 연애중>이 실망스런 성적을 올렸기에 두 콤비의 신작에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이 쏠렸고 주인공 차양순 역에 < 미스터Q >와 <토마토>의 히로인 김희선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김희선은 1999년 <안녕 내사랑>을 끝으로 <비천무> <와니와 준하>에 출연하며 영화 활동에 집중했고 <명랑소녀 성공기> 역시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출연을 이유로 고사했다. 두 번째 후보였던 손예진 역시 영화 <연애소설> 촬영 시기와 겹치면서 <명랑소녀 성공기> 출연이 불발됐다. 결국 차양순 역할은 한창 떠오르는 신예였지만 정극 드라마 경력이 거의 없었던 장나라에게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장나라 캐스팅은 대성공이었다. 장나라는 첫 정극 드라마 주연임에도 능청스런 연기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소 과장된 차양순의 충청도 사투리 역시 장나라가 했기에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장나라는 <명랑소녀 성공기>를 대성공으로 이끌고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이 아닌 10대 스타상을 수상했고 공교롭게도 이후 15년간 SBS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명랑소녀 성공기>는 가난하지만 명랑한 여자 주인공이 잘생긴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설정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명랑소녀 성공기>는 여자 주인공이 잘난 애인을 만나 팔자 고치는 이야기가 아닌 후배의 배신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왕자님을 다시 성공시키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명랑소녀 성공기>가 뻔하면서도 신선한 매력으로 사랑 받은 이유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현재는 장나라의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지만 <명랑소녀 성공기>는 장혁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드라마 <학교>와 <햇빛 속으로>에 출연하며 주목 받던 장혁은 2001년에 출연했던 학원무림액션 영화 <화산고>가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안하무인 재벌 2세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는 한기태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열었다.
한때 '국민 나쁜 놈'이었던 어남선생
▲지금은 '자상한 남편의 대명사'가 된 류수영은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악역 오준태를 연기했다.SBS 화면 캡처
한은정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개명한 한다감은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 사장의 외동딸 윤나희 역을 맡았다.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양순을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양순의 할머니(김영옥 분)를 차로 치고 도망가는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 시절 여러 드라마의 악녀들처럼 나희 역시 마지막회에 경찰에 자수하면서 양순에게 눈물로 용서를 빈다.
지금은 박하선의 남편이자 요리연구가 '어남선생'으로 유명한 류수영은 데뷔 초였던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악역 오준태를 연기했다. 윤나희가 선과 악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캐릭터라면 오준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기태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기태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간다. 하지만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오준태의 마지막은 경찰에게 체포되는 장면이었다.
2003년 중국으로 진출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써내려 간 추자현은 신예 시절이던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학교 일진에서 양순의 절친이 되는 송보배 역을 맡았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교한 양순을 부자로 오해했지만 양순이 그 집의 가정부임을 알게 됐고 졸업 후에도 붙어 다닐 정도로 양순과 가까워진다. 스노이 화장품의 홍보팀장 조영찬(정민 분)과는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다가 연인 사이가 된다.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맨발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윤태영은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송보배의 듬직한 오빠 송석구를 연기했다. 뒷골목 깡패 출신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스노이 화장품 사장의 운전기사로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으로 양순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끝내 양순에게 제대로 고백도 해보지 못하고 양순과 기태를 연결해주는 큐피트 역할만 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히딩크와 장나라가 '지배'했던 2002년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