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운더리>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영화의 진정한 무대는 회사가 아니라, 증언이 담긴 서류를 제출할 것인지 망설이는 내면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건의 이유이자 배경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영화가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피해자/가해자의 서술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수사 절차나 추리가 아니라, 그 절차가 개인의 생존 전략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가 하는 윤리적 동요다. 가해의 사실관계가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누가 어떤 종류의 폭력을 휘둘렀는지와 같은 자극적인 디테일을 전사하고 이야기했다면 극은 지금보다 더 쉽고 빠르게 완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선택한 축은 다른 지점이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걸고, 타인의 어제와 오늘을 지지할 수 있는가 하는 곤혹스러우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과 그것이 무너뜨리게 될 심리적 평형, 그리고 그 흔들림의 미세한 파장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쪽 말이다.
감독은 '경계'를 단선적인 선 긋기가 아니라, 서로가 스며들 수 있는 접촉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단순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계는 지켜내고, 어떤 경계는 넘어서며, 또 어떤 경계는 서로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단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선에게 주어진 영주의 요청, 곧 타인을 위한 말하기(행동)은 사실상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말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고, 책임은 자기 동일성의 새 경계를 그리는 행위에 해당해서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태권도장에서의 수련 장면에 주어지는 물음 또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다만 신체적, 정신적 정립에만 기능하지 않고, 관계적 정립에서도 중요하게 정의된다는 것이다.
03.
"매니저님, 제가 찾아봤는데 신고 과정이 간단하지가 않더라고요. 그리고 막상 결과도 깔끔하지 않은 것 같고…"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3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가진 단편 극영화에 속한다. 짧은 시간은 서사를 압축하는 대신, 감정 그 자체를 시축(時軸)으로 삼고 시각화하는 데 유리하다. 사건의 외피를 벗기고 나면 남게 되는 것은 보통 침묵과 정지, 감정을 맴도는 호흡과 같은 것들인데, 단편은 그 호흡을 과감히 전면에 내세우기 용이하다. 이 작품에서는 내적 갈등에 해당되는 지선의 행위들, 증언으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될 일들을 검색하거나 홀로 떠나는 영주의 뒷모습을 살피는 일, 이제 자신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일들로부터 과거 목격한 장면을 떠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리듬은 경계의 촉감이 된다.
작품이 환기하는 불편한 진실의 날카로움은 괴롭힘의 문제를 '한 사람의 악행'으로 축소하지 않는다는데서 비롯된다. 영화는 악인과 선인의 경계를 쉽게 가르는 대신, 경계의 당사자로서 우리 모두를 지목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존재할 법한 '침묵의 합의', 그러니까 피해자가 말문을 여는 순간 공기 중에 번지는 어색함, 누가 먼저 그 어색함을 깰 것인지 지켜만 보는 눈치의 경쟁, 이들 모두가 괴롭힘을 지속시키는 보이지 않는 위력이 된다는 것이다. 감독의 카메라가 지선의 망설임을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는 한, 관객 또한 더 이상 제삼자의 안락한 경계 너머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지선이 그 경계 앞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우리 역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경계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다.
▲영화 <바운더리>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4.
영화 〈바운더리〉가 자리 잡은 자리를 지역 독립영화의 생산 구조에서 읽는 것도 중요하다. 이 작품은 대구 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의 도움으로 완성되었고, (대구 영상 미디어 센터 제공) 오오극장과 같은 지역 독립영화 전용 극장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이는 중앙집중적 제작, 유통망의 바깥에서, 지역 스토리, 지역 제작 생태계, 신진 창작자 간 네트워크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핵심 주제가 경계의 윤리라면, 그 제작 배경 또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천의 인프라였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극 중 서사와 영화 바깥의 생산 구조 사이에서 관객의 자리는 어디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선의 고민은 특정 기업의 '나쁜 사건'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 각자의 일상으로 이식 가능한 딜레마로 존재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고통을 '다음'으로 미루고 있고, 또 얼마나 자주 '내가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라며 말하기를 철회하고 있나. 증언의 경계는 사건 자체가 아닌 태도의 문제로 남는다. 태도는 한 번의 용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반복, 실패와 후회의 되새김질 속에서 비로소 자기의 선을 얻는다. 〈바운더리〉는 이 반복의 시간, 곧 윤리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정수연 감독은 '피해자 – 가해자 - 증인'의 삼각 구도를 도덕 교과서의 도식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경계의 감각, 곧 선택의 전후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되는 숨소리, 상처와 책임이 측정하는 서로의 온도, 경계가 선이 아니라 면이라는 사실을 오래 만지게 한다. 우리는 그 면의 요철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자기 확실성의 모서리가 다소 무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무뎌짐 속에서 타자의 경계는 적이 아니라 이웃의 울타리가 되고, 나의 경계는 고립의 벽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약속으로 바뀐다. 증언의 경계는 그렇게 문이 된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자, 서로의 세계가 만나는 문. 〈바운더리〉는 그 문 앞에 오래 머무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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