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그들이 외롭지 않게 슬퍼할 기회를 뺏어갔어."
복수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1편의 존 윅은 기르던 반려견을 죽인 러시아 갱단 두목의 아들도 모자라 조직 전체를 박살 냈다. 그의 반려견은 떠나간 아내를 위해 슬퍼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존재였다. 이런 설정은 1편에 이어 2편까지 존 윅의 성격을 상징하는 설정이자 유머 소재로 두고두고 활용됐다.
이브도 복수에 나선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인 조직을 처단하기 위해 나서는 게 <발레리나>의 단순 명확한 주 서사다. 그 조직으로 인해 외톨이가 된 이브는 이언에 의해 존 윅과 관계 깊은 암살 집단 루스카 로마에서 길러진다. 킬러로 성장한 이브는 그 조직이 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복수의 여정에 나선다.
섬세하고 영리하게 고안된 액션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SF 영화와 함께 때때로 일반 관객들이 스크린을 찾게 되는 요인을 제공해 준다. <발레리나>가 딱 그런 경우다. 우선 군더더기 없는 서사가 관객들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무리 없이 형성하게 해준다. 시작부터 복수의 원인을 제시하고, 얼마간 훈련 장면으로 킬러로서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며, 이후 신입 킬러로서 첫 미션 상대(정두홍)을 간단히 제압하고 킬러 세계에 입문한다.
이 과정까지를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발레리나>는 이후 여성 액션의 한계치가 존재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둔중하면서 날렵하고 과격하면서 신선한 액션의 향연을 펼쳐낸다. 갖가지 총과 칼은 기본이요, 접시와 드라이버, 스케이트 신발, 얼음도끼, 화염방사기, 수류탄 등 어떻게든 <존 윅> 시리즈와 차별점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이 엿보이는 무기들이 액션신을 독창성 있게 만들어 준다. 특히 후반 화염방사기와 수류탄 액션은 가히 백미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
루스카 로마와 컨티넨탈을 중심으로 <존 윅> 시리즈와의 연관점도 곳곳을 지배하며 시리즈 팬을 만족시킨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킬러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죽여야 사는 남자' 존 윅과 어떻게든 킬러 생활을 이어가야 복수가 가능한 이브와의 대비야말로 <발레리나> 속 여성 액션의 극대화를 이루는 정서적 근간이라 할 만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으로 등장해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키아누 리브스의 분량도 더없이 적절하다. 그건 곳곳에 배치된 존 윅 유니버스 캐릭터들이나 디테일한 설정들도 마찬가지. 마블이나 DC를 제외하고, 할리우드 스핀오프 중 이만큼 독립된 서사와 유니버스를 유기적으로 조화시키는 작품이 얼마나 있을지 되돌아보게 될 정도다. 존 윅을 '부기맨'이라 부르는 일종의 유니버스 내 유머를 살리는 것에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후속편을 기대해도 좋을
▲<발레리나> 스틸.판씨네마(주)
의아한 것은 <발레리나>의 평점과 북미 흥행 성적이다. 북미에서 지난 6월 6일 개봉한 <발레리나>의 로튼 토마토 전문가 평점은 76%, 관객 지수는 92%를 기록 중이다. 갈수록 평가가 상승했던 <존 윅> 시리즈와 비교하면 아쉬운 수치라 할 수 있다. 흥행 역시 제작비 9천만 달러를 들여 북미에서만 5천8백만 달러, 전 세계 1억3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아쉽다면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 요인을 꼽자면, <존 윅>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나 여성 주인공을 향한 평가절하, 2시간 동안 킬러들을 죽이고 죽이며 '킬 포인트' 쌓는 해당 장르에 대한 불호 등이 반영된 평가라 할 수 있다. 어쩌겠는가. <존 윅> 시리즈 자체가 원체 확실하게 취향을 타고, 타킷 층도 명확한 장르인 것을.
그러한 선입견만 벗어던진다면 <발레리나>는 2시간 러닝 타임을 그야말로 화끈하게 순삭해 주는 오락영화다. 발길이 닫는 곳곳에 죽음을 드리우는 존 윅이라는 캐릭터와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실히 계승한다는 점에서 향후 견자단 단독 주연의 <케인>과 같은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발레리나>를 포함해 이미 컨티넨탈은 이탈리아와 도쿄 등등 해외 주요 도시를 등장시키지 않았나.
<발레리나>를 이야기하며 아나 데 아르마스의 매력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실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007 노 타임 투 다이> 본드걸을 넘어 <그레이 맨>, <고스팅> 등을 통해 출중한 액션 연기를 선보였던 아나 데 아르마스는 이브를 통해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한 여성 액션 스타 계보를 이을 걸로 보인다.
이미 적잖은 팬을 확보한 이 쿠바 출신 배우가 액션 연기에 머무를 것이라 예상하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발레리나>는 <블론드> 속 마릴린 몬로를 연기하며 남다른 연기력을 과시했던 이 1988년생 배우의 또 다른 <발레리나>를 기대하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것은 아나 데 아르마스 스스로가 증명해 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이브의 등에 새겨진 문신 'Lux e tenebris'는 라틴어로 '어두움으로부터의 빛'으로, <존 윅> 시리즈 속 존 윅의 문신인 'Fortis Fortuna Adiuvat'라는 라틴어 경구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존 윅의 문신 뜻은 바로 '운명은 용감한 자를 돕는다'였다. <존 윅> 시리즈와 <발레리나> 제작진의 존 윅 유니버스 세계관에 대한 진심이 요즘 말로 이렇게나 '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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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