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존재했던 부산 주례동의 형제복지원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인 부랑인 단속 정책에 발맞춰 부산의 강제 수용소 노릇을 했다. 부랑인을 수용하고 교화한다는 미명 아래 납치와 학대, 강제노동, 인신매매가 자행된 어두운 곳이었다. 사회복지시설의 폭력에 국가가 동조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여러 언론의 탐사보도가 이어지고, 피해자들의 꾸준했던 목소리가 조명받기 시작하며 형제복지원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 사건을 면밀히 추적했다. 그리고 최근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사건 관련 상소를 일괄 취하한다고 밝히면서다.
그동안 법원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왔지만, 이에 정부는 기계적으로 상소를 거듭해왔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피해자들을 앞에 두고 책임을 외면해온 정부의 행태에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리고 이번 8월, 긴 싸움이 끝을 보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박선희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플레이위드도 형제복지원을 다룬 연극을 선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제복지원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연극은 '다큐시어터'라는 형식을 시도했다. 언론인이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취재해 보도하는 형식을 사용한다면, 다큐시어터는 창작진과 배우들이 현장을 답사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눈 것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방식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연극의 극적 표현을 결합한 무대 형식이다.
형제복지원을 다루는 이 연극은 2021년 처음 구상되었고, 3년 동안 고민과 연구를 거듭하며 올해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7월 31일부터 8월 8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서울 종로구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강정묵·권윤영·김영욱·신윤재·임승범 등 5명의 배우가 무대에 섰다. 여기에 창작진 중 일부도 무대에서 직접 이야기를 전하며 진행을 돕는 등 독특한 방식을 선보였다.
▲연극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제복지원의 기억> 공연 사진
극단 플레이위드
배우들이 전하는 형제복지원의 기억
배우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배역이 아니라 배우 본인으로 무대에 서 관객과 직접 소통했다. 자신이 형제복지원에 대해 공부하고 느낀 것을 말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피해자 한종선씨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물론 치밀하게 짜인 대본이 있었고,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이 대본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빌려 함께 이야기하기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숲 속에 버려져야 했던 헨젤과 그레텔이 그랬듯이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로 이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부랑인을 단속한다는 내무부 훈령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강제 수용에 명분을 제공했고, 정부는 명목상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에 운영비를 지원했으며,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고도 묵인 및 동조했다. 그렇게 민간 사회복지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에서 각종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계모를 몰아내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사는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이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엔딩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있고, 장애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으며, 설령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후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구성원들이 만난 피해자 한종선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연극은 '기억'이라는 주제를 꺼내든다. 어떤 것은 기억되고 다른 어떤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사회가 이를 선별하고, 선별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을 연극은 강조한다. 기억은 작아지고 언젠가 소멸될 테지만, 이를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한종선씨는 광주의 작업실에서 형제복지원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미니어처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무대로 옮겨졌다. 마지막에 배우들은 작지만 커다란 수용 시설 미니어처를 무대 중앙으로 옮겨 놓는다. 형제복지원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무대 위에 존재했다. 기억은 배우들의 입으로도 이야기되었지만, 한종선씨의 육성 증언이 담긴 영상으로도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연극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제복지원의 기억> 공연 사진
극단 플레이위드
뿐만 아니라 연극의 구성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는 영상도 무대에서 재생되었고, 노래와 랩 등 다양한 방식이 형제복지원을 기억하는 데 사용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각종 시도들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 있어 연극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필자는 마지막 날 공연을 관람했다. 전날에는 여전히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피해자이자 극단 플레이위드에 자신의 기억을 상세히 증언해준 한종선씨가 관람했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기 직전 배우 임승범은 용기를 내 전날 한종선씨와 만난 일화를 추가로 전했다.
한종선씨는 연극의 구성원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선 "친구가 되어야지"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배우 임승범은 전했다. 그리고 전날 한종선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감히 친구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덕분에 작품과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배웠다고 말이다.
좋은 연극은 관객을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배우에게도 변화를 선물한다. 다큐시어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통해 진심이 담긴 연극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연극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제복지원의 기억> 공연 사진극단 플레이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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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전하는 형제복지원의 기억... 피해자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