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
이전의 지브리 영화들이 삶의 경이로움과 자연과의 조화를 그렸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오히려 세계의 붕괴와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소년이 진입한 세계는 과거 하야오가 구축한 환상 세계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점차 해체되고 붕괴된다. 이는 곧 지브리적 세계관의 종언이자, 환상의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한다.
마히토는 그곳에서 '창조자의 자리'를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이 선택은 영화가 결국 어떤 '이상 세계'가 아닌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진정한 용기로 제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환상은 잠시였고, 중요한 것은 다시 삶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다.
영화는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난다.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관객 각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이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단지 주인공 소년에게 향한 물음이 아니라, 지브리와 함께 자란 관객 즉, 어른이 된 우리에게 던지는 인생의 숙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가 남긴 유언이자 작별 인사다. 엄마를 잃은 소년의 모험과 성장은 곧 우리가 살아낸 시간의 비유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더는 지브리가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성장의 이면에 있는 '악의'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말한다. 마히토는 새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 익숙지 않은 환경에 대한 분노, 상실의 감정 속에서 결국 충동적인 악의를 품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따돌리는 친구를 모함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돌로 찍는 자해까지 감행한다.
이 장면은 '선한 아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며, 인간 누구에게나 악의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마히토를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그 악의를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해 가는 여정을 그린다. 마히토의 이러한 정신적 성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결국 악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넘어설 것인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묻는다.
"이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지막 질문이 스크린 밖으로 번져 나올 때, 관객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상실과 선택을 떠안은 주인공이 된다. 환상은 끝났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여전히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하야오의 영화가 남긴 것은 화려한 장면이나 완벽한 결말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비록 이번 작품이 그의 은퇴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가 이끌어온 한 세대의 상상과 서사에는 분명한 종언을 고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그 답을 쓰는 건 오직 우리 자신뿐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스튜디오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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