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상근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길구'를 연기한 배우 안보현과 7일 삼청동에서 만났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백수로 지내던 길구가 우연히 선지에게 첫눈에 반하며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 겪는 고군분투를 그린 이야기로 안보현의 이미지 변신과 임윤아의 능청스러운 코미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변화 속에 중심을 잡는 로맨스와 성장이 서사가 돋보인다.
"잘하는 것만 하는 건 성향에 맞지도 않아요. '길구'를 연기하면서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지만 꾸준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거부감 없이 도전해도 되겠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외강내유 길구, 큰 도전"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CJENM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고 하지 않나. 안보현은 큰 키와 다부진 체격 탓에 외적으로 매섭고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눈도장을 찍은 이후 <마이 네임>, <군검사 도베르만>, < 베테랑 2 > 등에서 액션이 동반된 눈빛 연기를 선보여 왔던 탓에 이미지를 깨기 위한 시도를 부단히 해왔던 걸로 보인다. 첫마디로 엉뚱하면서도 의기소침하지만 마음 열면 진심을 투명하게 내보이는 '길구'가 큰 도전이었음을 고백했다.
"첫인상이나 날카롭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제가 풍기는 인상을 잘 알고 있다. <이태원 클라쓰> 촬영 때 보조 출연자분이 제가 있는 줄 모르고 화장실에서 '정말 쓰레기 같다'라며 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막연히 들으면 기분 나빴을 텐데 그만큼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칭찬으로 들었다."
본인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시나리오를 선뜻 선택한 이유를 두고 그는 "어딘가에 길구 같은 사람도 있다고 느낄만한 무해한 시나리오였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혼자 이겨내려는 성향이 길구랑 비슷했다"라며 "선지를 만나면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길구의 마음에 공감했다"며 출연을 결심했다고 답했다.
그는 길구는 이상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를 읽고 준비해 간 저만의 해석과 콘티북에서 본 것에서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길 때면 감독님이 직접 안경까지 벗고 똑같이 묘사해 주셨다"라며 "서툰 표현법, 표정, 대사톤, 음역까지 디테일하게 잡아주어서 초반에 캐릭터를 잡아가는데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길구는 누구를 좋아한 걸까. 낮선지와 밤선지의 확연한 스타일링과 성격, 말투에 놀랄법하지만 끝까지 악마를 꺼내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길구가 첫눈에 반한 건 낮선지다. 극장 데이트 때도 손을 잡으면서 로맨스로 흐를 여지를 준다. 길구는 자기 밥그릇도 잘 챙기지 못하는 친구지만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밤선지로 인해 생겨버린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악마의 속마음과 과거를 듣고 연민이 생긴다. 이런 노력은 결국 악마를 빼내기 위함이었는데 이마저도 익숙해지면서 일상이 되어간다. 밤선지를 마냥 악마라고만 생각했다면 시간이나 단축하고 소멸시켜버리면 되겠지만 누군가의 빼앗긴 삶을 돌려주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마음이 점차 생겨 버리는 거다."
액션에 특화된 배우답게 <베테랑 2>에서 보여준 빗속 액션은 길구로서 보여준 맷집 액션과는 확연히 다름을 인정했다.
"합을 맞춘 약속된 동작이라도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상이 따른다. 다수의 경찰과 혼자 싸워야 했고 발목까지 물이 찬 열악한 상황이라 부상이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서 다쳤다. 쓰라리고 아팠지만 존경하는 류승완 감독님 영화에 특별출연으로 참여한다는 기쁨, 외유내강(제작사)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 더해졌다. 비록 그때 입은 부상이 상처로 남았지만 영광의 상처로 생각한다."
선수, 모델, 배우의 삶
▲안보현 배우CJENM
결국 데뷔 10년 만에 원하던 도전에 성공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구웅'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하기도 했지만 '길구'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각인될 것 같다. 운동만이 꿈이었던 삶에 이정표가 생겨 버린 거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를 상상하니, 영화 속 길구 같아 보였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직업 군인을 준비하다 입대 전 부모님과 지인 추천으로 모델로 시작했다며 배우의 길에 들어선 계기를 곱씹었다.
신인 안보현과 지금의 안보현은 어떻게 변했을까.
"<주먹이 운다>나 <챔피언>을 보면서 복싱 선수를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온갖 고민을 혼자 안고서 아무하고도 소통도 하지 않고 고군분투했었다.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협업과 시너지의 효과를 알게 됐다."
인터뷰 내내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운 또한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길인 셈이다. 길구의 이름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란 뜻인 것처럼, 스스로 개척한 길을 탄탄히 다진 노력형 천재임을 드러난다.
"새 출발을 결심하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갖은 알바를 병행하며 버티던 때는, 오히려 이 악물고 운동하던 때보다 편했다. 그래서 단역을 전전할 때도 운동하던 끈기가 자양분이 되어 동기부여가 되었다. 여전히 15년 지기 스타일리스트와 일하고 있고, 그때 아르바이트하며 알게 된 나이 지긋하신 분들과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인복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보답할 수 있어 기쁘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극장 시장 속에서도 성수가 블록버스터로 이름을 내건 <악마가 이사왔다>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보현은 "로맨스가 중심같이 보이면서도 극장 사운드에서 최적화된 스릴러 요소도 있다. 무엇보다 선지와 길구의 캐릭터적 매력과 서사도 재미있다.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게 포인트다"라며 대화를 맺었다.
한편,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오는 8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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