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장애 여성의 고민, 아이를 낳아도 될까?

[넘버링 무비 481] 영화 < 우리 둘 사이에 >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인디스토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에는 항상 행운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다른 계절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의 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겨울일 수 있고, 어떤 삶은 계절 하나의 시간조차 제대로 지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어느 쪽으로나 너무 다른 세계인 상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속에는 이처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신의 삶 속에 잊고 있던 조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마주 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온다.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두 세계가 어느새 '우리'가 되는, 마치 봄과 겨울이 겹친 어떤 날의 온도처럼 말이다.

성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우리 둘 사이에>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임신을 결정하며 겪는 감정의 굴곡과 사회적 현실을 조용히 비추는 작품이다. 척수장애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은진(김시은 분)은 남편 호선(설정환 분)과 함께 임신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 결정을 흔드는 것은 주변의 시선과 의료 시스템, 삶의 조건이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도 한 인물의 심리를 따르는 동안 여러 형태의 울림을 남기며, '아이를 낳는다는 것'과 '부모가 된다는 것' 사이에 놓인 질문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과잉되지 않은 시선과 절제된 정서로, 돌봄의 윤리와 존재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천천히 건넨다.

02.
은진은 척수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비장애인으로 18년을 살았고, 그 이후 17년을 휠체어에 앉아 살아왔다. 영화는 그의 장애를 특별하게 부각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출발점일 뿐, 중심 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은진은 남편 호선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물론 장애로 인해 삶은 때때로 어려워지고 두 사람 사이에도 언제나 작은 갈등은 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려 애쓰며 일상을 유지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드러난 두 줄이 그들의 삶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가 들어오게 된다.

임신이란 단어는 대개 기대와 희망을 수반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반대의 감정이 먼저 자라난다. 은진은 기뻐하면서도 불안해한다.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주변의 반응 또한 축하가 아닌 '정말 괜찮겠느냐'라는 질문에 가까운 태도가 되어 돌아온다. 이 출산이 가능한 문제인지, 누가 양육을 할 것인지, 산모의 생명에는 문제가 없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반복될수록, 이 영화가 닿고자 하는 진짜 물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군가의 삶과 선택에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사실 영화는 전반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휠체어에 앉은 은진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을 차례로 열거한다.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 건널 법한 건널목의 점멸 신호에 건널 수 없거나, 놀이동산의 여러 놀이기구를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은 피상적인 형태의 예시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제시되는 계단과 언덕의 장애물은 단지, 이야기의 중심에 은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특별히 또렷해진다. 한 인물의 시선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선명해지는 삶의 문제들이 그 자리에 실재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현실로 주어지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인디스토리

03.
"미안해 내 몫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 작품은 어떤 위대한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는다. 도리어 '평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밤이 넘어가는 시간을 견디고, 울컥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는 사람들의 삶 말이다. 은진 또한 특별히 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대단한 용기를 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감당해 보려 애쓸 뿐이다. 병원 진료를 받으며 눈치 보듯 입을 여는 모습, 지푸라기처럼 붙잡은 아이의 태명을 말할 때의 목소리, 그리고 종종 혼잣말처럼 뱉는 속내들. 그 모두가 그저 평범한 사람의 고군분투에 해당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남편 호선이다. 그는 진심 어린 사람이고, 무엇보다 은진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아이를 낳자는 아내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은진이 병원에 홀로 남겨졌을 때도 그곳에 함께하지 못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망설인다. 그 역시 두렵다. 그의 부족함은 능력이나 태도가 아닌, 감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이를 갖고 키우는 일, 장애를 지닌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일, 그 모든 현실 앞에서 그 역시 매번 벽에 부딪힌다. 그는 도망치는 대신, 천천히 뒤따르는 사람이다. 조금 늦더라도, 아내의 결정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그의 모습은 출렁이는 수면 위에서도 은진이라는 존재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무언의 지지가 된다.

조금 실망스러울 법하지만 그런 평범한 모습들이 영화에서는 깊이가 되어 돌아온다. 감독은 시선을 덜어낸 채, 존재를 비추는 방식으로 인물을 감싼다.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충분히 머물고,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리듬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관객은 인물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 함께 머물 수 있게 된다. 이 조용한 거리감은 영화 전체의 환기를 형성하고, 인물이 처한 상황을 과장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영화가 따뜻하게 여겨지면서도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04.
한편, 은진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임산부, 지후(오지후 분)는 같은 병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임신이라는 감각을 공유하며 유대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상태에 놓인 타인이라는 동질감 그 자체가 서로를 연결시킨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동질감. 은진에게 지후는, 낯설지만 유일한 유대가 된다. 잠시나마 기대고 싶은 존재이자, 위태로운 감정의 뿌리를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극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은진이 마치 그가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지후의 존재를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붙들어둔다. 그것은 동료 산모에 대한 연대감이라기보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맞서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의탁에 가깝다. 그가 해당 인물을 통해 자신 안의 두려움과 결핍을 직면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후는 물리적으로는 타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은진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돌봄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갈망, 혹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 지후는 은진이 끝내 지워야 할 내면의 불안을 형상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 감정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지후가 자신도 모르는 장소(현실)에서 이미 출산을 마치고 일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불현듯 뒤틀리고 만다. 은진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지후가 계속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의지했던 존재를 잃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되찾는 기로에 서게 되는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지지를 실제로 기댈 수 있는 현실 속의 대상으로 옮겨옴과 동시에 하나의 결심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인디스토리

05.
은진의 내면에서 가장 깊은 층위에 자리한 두려움은 단순히 출산의 물리적 위험만은 아니다. 그것은 임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미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자책에 가깝다. 은진에게, 병원에서 마주한 수많은 의학적 문제, 신체적인 문제와 약물에 대한 걱정, 출산 시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너는 출산하면 안 된다'라는 끊임없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자신이 아이를 끝까지 품어내지 못하게 될까 봐, 그렇게 되었을 때 그것이 자신의 장애 때문이 될까 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생물학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한 존재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감정의 골짜기에서 비롯된다.

더 나아가 그녀는 혹시 자신이 가진 불완전함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될까 봐, 아이 역시 세상에 나와 같은 '다른 몸'으로 태어날까, 끝내 아이를 선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앞에서 주저한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을 향한 불안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시선 속에서 타자로 존재해 온 자신의 경험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공포다. 그 두려움 속에서 은진은 자신이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이 모든 불확실성을 덮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사랑마저 아이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는 이 복합적인 불안을 조명하면서, '부모의 자격'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천천히 해체해 간다. 결국 이 영화가 묻는 것은 단 하나다.

'당신은 그런 모든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 곁에 있을 수 있는 존재인가?'

06.
이 작품에는 오래 등장하지 않지만, 깊은 잔상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늦은 밤, 퇴근하던 호선이 마주치는 동네 아이 진우다. 혼자 어두운 골목에 서 있던 아이는, 단지 길을 잃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은진과 호선 부부의 삶을 비추는 조용한 거울처럼 영화 속에 스며든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이가 기다리게 하는 현실로 옮겨가도록 하는 어떤 상징이 된다. 그는 종종 혼자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전해진다. 이 장면은 돌봄의 문제에 사랑의 유무, 총량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 또한 함께 관여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 단순한 현실은 부부에게 하나의 사실과 또 하나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원하며, 잘 돌볼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진우를 경찰서에 데려다주고, 엄마를 함께 기다리게 되는 시간은 말없이 은진과 호선을 미래의 한 장면으로 데려가는 장치가 된다. 은진은 진우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끝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내 아이도 언젠가 나를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제때 달려가 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아이를 낳는 일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임을 은진은 이미 알고 있다. 그 정확한 인지가 오히려 그녀를 더 망설이게 만든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 부족함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이 질문에 확신 어린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무게를 묵묵히 감당해 가는 은진의 시선을 따른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자신이 누군가의 전부가 되어줄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시간. 결코 완벽한 준비 속에서 부모가 되어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롯이' 불완전한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품으려 애쓰는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작고 단단한 결심이 그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조금씩 일으켜진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인디스토리

07.
"중요한 건, 우리 둘 사이에 있으니까."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모성은, 누군가의 전부가 되기 위한 확신이나 준비된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한 채, 누군가 곁에 머물고자 하는 작은 결심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 앞에서 끝없이 망설이는 사람의 태도, 주저하는 마음과 그 너머의 감정을 따라간다. 성지혜 감독 또한 어떤 인물도 영웅화하지 않고, 어떤 결론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시선은 낮고, 카메라는 멈추어 있으며,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공간을 채운다.

이 신중하고도 조용한 연출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끌어안게 만든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임신이라는 소재를 선정적으로 소비하거나, 억압적 연민에 빠지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태도는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붙든 윤리적 지점이다. 그 덕분에 관객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파고들기보다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는 감독이 이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이자, 그가 관객에게 허락하고자 한 방식의 '이해'이기도 할 테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런 방식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에서 다시 출발하는 이야기로 완성된다. 여전히 내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서로를 품고자 애쓰는 두 사람이 마주한 '우리'라는 시간. 영화는 그 시간의 조용한 흔들림을 오래도록 비추며, 진짜 돌봄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도 행복하게 미소짓던 두 사람, 영화의 첫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영화 우리둘사이에 김시은 설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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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