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인디스토리
05.
은진의 내면에서 가장 깊은 층위에 자리한 두려움은 단순히 출산의 물리적 위험만은 아니다. 그것은 임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미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자책에 가깝다. 은진에게, 병원에서 마주한 수많은 의학적 문제, 신체적인 문제와 약물에 대한 걱정, 출산 시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너는 출산하면 안 된다'라는 끊임없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자신이 아이를 끝까지 품어내지 못하게 될까 봐, 그렇게 되었을 때 그것이 자신의 장애 때문이 될까 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생물학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한 존재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감정의 골짜기에서 비롯된다.
더 나아가 그녀는 혹시 자신이 가진 불완전함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될까 봐, 아이 역시 세상에 나와 같은 '다른 몸'으로 태어날까, 끝내 아이를 선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앞에서 주저한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을 향한 불안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시선 속에서 타자로 존재해 온 자신의 경험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공포다. 그 두려움 속에서 은진은 자신이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이 모든 불확실성을 덮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사랑마저 아이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는 이 복합적인 불안을 조명하면서, '부모의 자격'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천천히 해체해 간다. 결국 이 영화가 묻는 것은 단 하나다.
'당신은 그런 모든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 곁에 있을 수 있는 존재인가?'
06.
이 작품에는 오래 등장하지 않지만, 깊은 잔상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늦은 밤, 퇴근하던 호선이 마주치는 동네 아이 진우다. 혼자 어두운 골목에 서 있던 아이는, 단지 길을 잃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은진과 호선 부부의 삶을 비추는 조용한 거울처럼 영화 속에 스며든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이가 기다리게 하는 현실로 옮겨가도록 하는 어떤 상징이 된다. 그는 종종 혼자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전해진다. 이 장면은 돌봄의 문제에 사랑의 유무, 총량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 또한 함께 관여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 단순한 현실은 부부에게 하나의 사실과 또 하나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원하며, 잘 돌볼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진우를 경찰서에 데려다주고, 엄마를 함께 기다리게 되는 시간은 말없이 은진과 호선을 미래의 한 장면으로 데려가는 장치가 된다. 은진은 진우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끝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내 아이도 언젠가 나를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제때 달려가 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아이를 낳는 일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임을 은진은 이미 알고 있다. 그 정확한 인지가 오히려 그녀를 더 망설이게 만든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 부족함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이 질문에 확신 어린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무게를 묵묵히 감당해 가는 은진의 시선을 따른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자신이 누군가의 전부가 되어줄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시간. 결코 완벽한 준비 속에서 부모가 되어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롯이' 불완전한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품으려 애쓰는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작고 단단한 결심이 그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조금씩 일으켜진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인디스토리
07.
"중요한 건, 우리 둘 사이에 있으니까."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모성은, 누군가의 전부가 되기 위한 확신이나 준비된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한 채, 누군가 곁에 머물고자 하는 작은 결심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 앞에서 끝없이 망설이는 사람의 태도, 주저하는 마음과 그 너머의 감정을 따라간다. 성지혜 감독 또한 어떤 인물도 영웅화하지 않고, 어떤 결론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시선은 낮고, 카메라는 멈추어 있으며,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공간을 채운다.
이 신중하고도 조용한 연출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끌어안게 만든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임신이라는 소재를 선정적으로 소비하거나, 억압적 연민에 빠지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태도는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붙든 윤리적 지점이다. 그 덕분에 관객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파고들기보다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는 감독이 이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이자, 그가 관객에게 허락하고자 한 방식의 '이해'이기도 할 테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런 방식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에서 다시 출발하는 이야기로 완성된다. 여전히 내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서로를 품고자 애쓰는 두 사람이 마주한 '우리'라는 시간. 영화는 그 시간의 조용한 흔들림을 오래도록 비추며, 진짜 돌봄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도 행복하게 미소짓던 두 사람, 영화의 첫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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