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왕좌의 게임'이 확인한 가능성

[김성호의 씨네만세 1130] HBO <왕좌의 게임> 시즌2

돌이켜보니 그렇다. 작품 가운데 장애를 마주한 일이 얼마 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회를 표상한다. 그러나 그 표상은 거의 항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왜곡된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또 때로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예술은 세상을 더 낫거나 못하게 바꿔낸다. 그 과정에서 부풀려지고 미화되는 것이 있고, 축소되며 치워지는 것 또한 있다. 장애는 대체로 후자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WHO(세계보건기구) 보고서('World Report on Disability Summary', 2011)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15%가량이 장애를 갖고 있다. 이 중 사회적 관리가 필수적인 심각한 장애는 최소 2%에서 최대 4%가량으로 추정된다. 적게 잡아도 2억 명 내외의 사람들이 중증 장애인이란 이야기다. 남북한에 더해 일본에 사는 이들 모두를 더하면 비슷해진다. 지구에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이렇게나 많다.

장애인은 국경과 문화를 가리지 않는다.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나라에 더 많은 장애인이 생겨나지만, 선천적 장애인 수에선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 장애인 인구수는 한국 전체 인구수보다 약간 더 많다. 전체 인구수의 20%가량으로, 전 세계 평균을 상회한다. 한국이라고 다른 나라보다 장애인이 적으란 법은 없다. 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는 한국 등록 장애인 인구수는 지난해 기준 263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5%를 넘긴다. 냉엄한 현실이다.

왕좌의 게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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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가려진 장애, 미디어는 왜 그리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인들은 우리 중 5%, 스물 중 한 명을 차지하는 장애인의 존재를 그만큼 실감하고 있을까. 공공재를 활용해 공적 책임이 있는 지상파 방송국은 물론, 대중매체에서도 장애인을 그 비율만큼 노출하지 않는단 사실이 꾸준히 지적돼 왔으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영화며 드라마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과연 몇이나 들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면 그 답이 분명하게 나온다.

불행히도 이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인종과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소외에 민감하게 반응한 문화예술계가 지난 몇 년간 이들을 보다 중요하게 다루는 경향이 할리우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유독 장애인에 대한 기용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묘사는커녕, 장애인과 현장에서 협업하기 위한 기초적인 준비조차 되지 않았단 비판이 이어졌다. 어째서 대중매체가 다루는 장애는 제자리 걸음일까. 장애와 관련한 미디어 비평이 꾸준히 생산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BO의 전 세계적 흥행작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기념비적 작품이다. 통상 노출이 얼마 되지 않고, 등장하는 경우에도 주연으로는 기용되지 않던 장애인을 핵심 인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장애 그 자체에 주목해 장애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흔한 묘사를 넘어, 장애인을 한 인간이며 캐릭터로 총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모범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

왜소증으로 신장이 132cm에 불과한 피터 딘클리지는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낳은 최고의 스타라 해도 좋다. 통상 장애인 배우들이 장애와 관련한 전형적이며 단편적인 배역을 맡는 데 반해, 그는 시리즈 전체를 아울러 상당한 비중과 다면적 면모를 보이는 중임을 수행했다. 특히 시즌2는 그가 연기한 티리온 라니스터(피터 딘클리지 분)가 사실상 주역이 되는 시리즈다. 이 시즌에서 티리온은 결코 만만찮은 상황 가운데서도 현명하고 용감한 선택을 해내는 인물로 왕국과 가문의 패망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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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꼬마 악마'라 불린 사내, 나라를 구하다

시즌2는 조지 R. R. 마틴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 2부 '왕들의 전쟁' 일부를 배경으로 한다. 원작 가운데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답게, 드라마의 완성도 또한 상당한 수준이다. 소설에서도 거의 3분의 1쯤을 차지하는 티리온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지난 시즌에선 못생긴 난쟁이에다 잔인하다고만 알려졌던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용모며 성품, 실력 모두에서 명문가의 수치쯤으로 여겨졌던 그가 알고 보니 지혜롭고 용감하며 굳센 의지를 가진 존재였다는 이야기. 그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티리온은 그를 알아보는 소수의 인물 외에는 제 가족에게까지 전과 같은 편견 아래 놓이니, 그 근본은 결국 그가 가진 장애 때문이다.

시즌2는 소위 '다섯 왕의 전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도인 킹스랜딩을 포함해 모두 일곱 개의 왕국이 느슨하게 묶여 있는 웨스테로스에서 모두 네 명의 영주가 군을 일으켜 서로 치고 받는 것이다. 칠왕국 통합 국왕이던 로버트 바라테온이 사냥 중 사고로 죽은 게 결정적 계기로, 수관 네드 스타크(숀 빈 분)가 계승자인 왕자 조프리 바라테온이 로버트의 친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리려다 도리어 조프리에게 처형을 당하며 본격화한다. 조프리는 왕비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 분)와 제이미 라니스터(니콜라이 코스테르발다우 분)가 근친상간으로 불륜한 결과로, 네드는 이 사실을 알아챈 전임 수관과 마찬가지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북부에선 네드의 장자 롭 스타크가 군을 일으켜 내려오고, 죽은 왕의 동생들인 스태니스 바라테온과 렌리 바라테온 또한 각자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제게 있다며 거병한다. 여기에 롭의 빈 자리를 공략하는 강철군도의 수장 발론 그레이조이와 스타크 가문에 대항하는 라니스터가의 가주 타이윈(찰스 댄스 분), 수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이 된 조프리까지가 복잡하게 뒤얽히게 된 것이다.

왕좌의 게임 스틸컷
왕좌의 게임스틸컷HBO

기회만 주어진다면 장애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첫 시즌에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스타크 가문의 영지 윈터펠로부터 북부 장벽까지를 경험한 티리온은 다섯 왕의 전쟁 중 우여곡절을 거쳐 킹스랜딩까지 살아 돌아온다. 그는 수관인 아버지가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수도에서 수관 대리로 임하라는 중책을 맡게 되는데, 그로부터 그 재능이 만개하기에 이른다. 왕이 석연찮은 이유로 죽고, 전임 수관들은 모두 독살되거나 처형됐으며, 새로 즉위한 국왕이자 조카인 조프리가 폭정을 이어가는 와중에서 수도에 질서를 세우는 그의 수고가 대단하다. 가문의 천덕꾸러기였기에 주위에 심복하나 없는 신세였으나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어린 왕의 폭주를 얼마쯤이나마 견제하며, 무엇보다 스태니스의 군이 수도를 공격한 블랙워터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다.

특히 드라마는 전투에 앞서 기세등등하던 조프리와 그 심복장수인 산도르 클리게인 등이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꽁무니를 뺀 상황에서 모두가 난쟁이라 무시했던 티리온이 용맹하게 전진해 적과 맞서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티리온은 이 자리에서 칼에 맞아 중상을 입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킹스랜딩의 운명은 그로부터 구해지게 되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 시즌2는 티리온을 통해 장애인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세상 모든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왜소증에다 추한 용모를 가진 채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고, 그를 낳다 엄마가 죽은 때문으로 아버지며 누나에게 깊은 증오까지 받아야 했던 티리온이 그 모두를 딛고 제 재능을 만개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피터 딘클리지는 품격 있는 표현력 가운데서도 결핍과 애증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연기력으로 티리온이 그러했듯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훌륭히 짊어진다.

왕좌의 게임 포스터
왕좌의 게임포스터HBO

장애, 부각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이로부터 <왕좌의 게임> 시즌2는 전체 시리즈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남았다. 시즌 전체가 전 시즌을 훌쩍 뛰어넘는 동시 시청자수 300만 명 후반대를 기록했고, 마지막회는 420만 명을 넘겼을 만큼 승승장구했음은 물론이다. 장애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극을 더 극적으로 하는 데 기여했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엔 비단 티리온만이 등장하지 않는다. 스타크 가문의 아들로 훗날 주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브랜 스타크(아이작 햄스티드 라이트 분)가 제이미에 떠밀려 탑에서 떨어진 뒤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불구가 되고, 어릴 적부터 그를 수행해온 호도르(크리스천 네언 분) 또한 '호도'라는 발음 밖에는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이지만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는 대활약을 펼친다. 브랜을 밀어 떨어뜨린 제이미는 검을 쓰는 팔을 잘려 고생한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비장애인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들이 드라마 가운데 수없이 등장한다. 누구는 선천적이고, 또 누구는 후천적이며, 그중 상당수가 상당한 조롱과 편견을 마주하지만, 누군가는 티리온처럼 이겨내고 제 삶을 일궈가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이 그저 전쟁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어서 장애인 또한 많은 것일까. 중세시대며 전쟁을 다룬 여러 작품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테다. 그저 전쟁의 표식으로 상흔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드라마는 장애의 영향으로 삶이 달라진 양상을 주의 깊게 포착한다. 그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자리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그건 우리가 사는 세상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보고 있자면 오늘의 흔한 작품이 장애를 배제하는 이유가 그저 그것이 쉽다는 이유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애가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장애를 치운 것이다. 나는 그를 무책임함이라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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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