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딸' 흥행과 할인 쿠폰 이면... 상반기 한국영화는 처참했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수치로 재확인된 한국영화의 위기, 지금 필요한 것은

 영화 <좀비딸>의 한 장면.
영화 <좀비딸>의 한 장면.NEW

'천만 영화 <서울의 봄>과 같은 흥행 속도!'

영화 제목을 빌려오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홍보라는 특성상 호들갑을 염두에 두더라도, 상업영화가 관객들에게 흥행 요소를 각인시키는 카피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서울의 봄>, 그리고 그 영화와 같은 '흥행 속도', 무엇보다 '천만'이란 키워드를 겸비할 수 있다는 건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지금 <좀비딸>이 딱 그런 상황이다. 개봉일 43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스코어를 찍더니 개봉 6일간 200만을 돌파했다. 지난 2일 토요일에 최대치인 48만을 찍었다. 관객 수가 확 떨어지는 월요일이던 어제 하루에만 18만을 동원했다. 할인 쿠폰 특수에 전통적인 방학 특수 등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각종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 상에도 실로 오랜만에 극장이 관객으로 붐볐다는 목격담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브래드 피트의 < F1 더 무비 >는 300만을, 국산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는 100만을 돌파했다.

비교해 볼까. 지난 주말 사흘간 <좀비딸>은 116만을 동원했다. 이에 비해 그 전 주말인 30주 차 박스오피스 1~4위 성적은 <전지적 독자 시점> 42만, < F1 더 무비 > 34만,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 26만, <킹 오브 킹스> 23만으로 도합하면 약 125만을 상회했다. <좀비딸> 한 편이 동원한 관객이 그 전주 1~4위 네 편의 성적과 비교해 불과 10만가량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좀비딸>의 흥행세가 점쳐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 문체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멀티플렉스 예매 사이트를 일시 마비시켰던 할인 쿠폰은 효과가 얼마나 있었을까? 이런 소비 지원 정책은 또 영화산업 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야를 조금 넓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좀비딸>은 순풍, 상반기 한국영화는 처참

'영화 6천원 할인권' 인기에 신청 폭주 7월 27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영화관람료 할인 관련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25일 오전 10시부터 주요 영화관 앱 등을 통해 영화관 입장권 6천원 할인권 총 450만 장을 배포했다.
'영화 6천원 할인권' 인기에 신청 폭주7월 27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영화관람료 할인 관련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25일 오전 10시부터 주요 영화관 앱 등을 통해 영화관 입장권 6천원 할인권 총 450만 장을 배포했다.연합뉴스

'할인이 시작된 7월 25일 금요일부터 어제(8월 3일)까지 10일간의 관객 수를 살펴보면 총 585만 명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이 기간은 30주 차 금요일부터 31주 차 일요일까지에 해당하죠. 그렇다면 최근 2년 같은 기간은 어땠을까요? 2023년 같은 기간 644만 명. 2024년 같은 기간 537만 명. 할인 행사에도 불구하고 2023년보다 관객 수가 줄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과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스오피스 전문가인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가 지난 4일 소셜 미디어에 제기한 의문이다. 문체부는 이번 행사에 6000원 할인 쿠폰 450만 장을 배포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450만 장 X 6000원 = 270억'이란 단순 계산이 나온다. 문체부는 소진 시까지 진행되는 이 선착순 행사를 문화가 있는 날 직전 개시하며 '1000원 티켓'을 홍보하기도 했다.

아직 이를 수 있다. 지난 7월 25일 시작한 영화 할인 쿠폰 정책의 실효성을 논하기엔 말이다. 확실한 것 하나는 270억이란 세금을 쏟아부은 '긴급 수혈'에도 불구하고 천만 영화들이 전체 파이를 견인했던 예년 수준을 단기간에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가 지난 7월 31일 발표한 '2025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가 이를 입증한다.

체감했던 그대로다. 반토막은 아니지만 무려 1/3이나 줄었다. 영진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극장 전체 매출액은 4079억 원, 전체 관객 수는 4250만 명으로, 2024년 상반기 대비 매출액은 33.2%(2024억 원), 관객 수는 32.5%(2043만 명) 감소했다.

한국영화, 외국영화 가릴 것 없었지만 낙폭은 한국영화가 훨씬 심했다. 2025년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액과 관객 수는 각각 2038억 원과 2136만 명. 전년 동기와 대비해 각각 43.1%(1545억 원)와 42.7%(1594만 명)가 감소했다. 이에 비해 올 상반기 외국영화 매출액의 감소 폭은 한국영화보다 훨씬 적었다. 전년 동기 대비 19%(478억 원) 감소했고, 관객 수 또한 전년 동기 대비 17.5%(449만 명) 감소했다.

한국영화만 놓고 보면 시장 감소 폭이 전년 대비 반토막 수준에 수렴하고 있는 셈이다. 위기란 표현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액 점유율도 50.0%로 전년 동기 대비 8.8%p 감소했다. 지난해 <파묘>와 <범죄도시4> 두 편의 '천만 영화'가 견인한 것과 달리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337만을 동원한 <야당>이었다. 극장 가서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직접적인 통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영화 사업에 진출한 신생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가 7편을 배급하며 올 상반기 전체 영화 배급사별 매출액·관객 점유율 1위를 기록한 것 역시 기존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생긴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위 또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17> 등 9편을 배급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였다.

이 같은 상반기 공식 수치는 이미 예고됐던 바다. 실제로 2017~2019년 전체 관객 수 평균(2억 2098만 명)과 비교하면 2024년 전체 관객 수는 55.7% 수준(1억 2313만 명)에 머물렀다. 올 상반기는 이에 비해 더 처참한 수치가 현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동시다발적이고 과감한 정책 실천이 필요한 때

오늘부터 '영화 6천원 할인권' 배포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배포하는 영화관 할인권 신청이 시작된 7월 25일 서울 한 영화관의 모습. 문체부와 영진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영화관 입장권 6천원 할인권 총 450만 장을 주요 영화관 앱 등을 통해 배포해 9월 2일까지 요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다른 할인과 중복 적용이 가능해 '문화가 있는 날'에 이번 할인까지 적용하면 1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오늘부터 '영화 6천원 할인권' 배포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배포하는 영화관 할인권 신청이 시작된 7월 25일 서울 한 영화관의 모습. 문체부와 영진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영화관 입장권 6천원 할인권 총 450만 장을 주요 영화관 앱 등을 통해 배포해 9월 2일까지 요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다른 할인과 중복 적용이 가능해 '문화가 있는 날'에 이번 할인까지 적용하면 1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연합뉴스

관객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관람 요금은 어떨까. 올 상반기 평균 영화 관람요금은 9599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1년 9656원보다 더 떨어졌다. 사정이 심각하다.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연간 기준 평균 관람요금은 2021년 9656원, 2022년 1만 285원, 2023년 1만 80원, 2024년 9702원이었다.

일반 관객들이 멀티플렉스들의 티켓 값 인상을 수년째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평균 관람요금이 2년째 떨어진 것도 모자라 팬데믹 기간보다 떨어지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객단가를 비롯해 투명한 정산과는 거리가 먼 각종 할인정책 등이 평균 관람요금에 직접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관객도, 영화인도, 극장도 만족스럽지 못한 요금 구조는 반드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문체부는 앞으로도 현장의 수요를 반영해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산업 활성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

문체부가 금번 영화 할인 쿠폰 행사를 알리며 내건 입장이다. 이 중 산업 활성화 지원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총체적 위기다. <좀비딸>의 예년과 같은 수준의 흥행으로, 270억을 들인 일시적인 쿠폰 행사로 해결된 상황이 아니다. 더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동시에 영화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탈출구가 쉬이 보일 것 같지 않다.

영화 티켓 값 재고는 물론이요 할 수 있는 모든 정책과 수단을 빠르고 길게 강구해야 한다는 데 문체부와 영진위도, 영화인들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큰 틀에서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조기대선 직전이던 지난 5월,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아래 '영화인연대')가 더불어민주당 측에 관련 정책제안서를 전달하고 K-무비 정책 간담회 개최한 바 있다. 'K-컬쳐의 핵심 기반인 K-무비의 전략적 보호·육성'과 '독립·예술영화 관객 점유율 10%를 통한, K-무비 역량 강화 플랜' 두 가지가 핵심인 제안서의 구체적인 방안들은 이랬다.

▲ 복권기금 법정배분과 극장 입장권 부가세 면제, OTT 기금 부과 등을 통한 영화발전기금 확대 조성 ▲ 텐트폴 대작영화 집중에서 벗어나 제작사 중심 중예산 영화 확대 ▲ 스크린 독과점 문제 해결 및 홀드백 정상화 ▲ 독립영화 상영 및 관람 인프라 확충과 관객 직접 지원 제도의 도입 ▲ 임팩트영화 펀드 신설 및 통합 지원체계 구축 ▲ 지역 발전전략과 연계한 정책 수립 및 민간 협력 강화 ▲ 글로벌 현지화 지원사업 고도화, 국제적 브랜드 형성 및 국제경쟁력 강화

할인 쿠폰 배포와 같은 긴급 수혈과 더불어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복원하고 재건하기 위한 동시다발적인 정책들이 시급하다. 영화 생태계 체질 개선이야말로 관객들을 극장을 다시 불러 모을 중장기 플랜일 것이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발판 삼아 국제경쟁력 강화에 대한 실질적인 목소리가 고개를 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국내 시장만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산업이 됐다면 K-팝 엔터 기업들의 전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지난 정부와 달리 구체적이고 늘어난 정부 지원은 물론이요 국제협력 프로그램, 국제 투자 협정 등 다각도의 과감한 정책의 실천이 절실하다.

취임 후 처음 맞은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책도 읽고, 영화도 본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새 정부와 새 문체부 수장이 그리고 영화인들이 더 바빠지고 지혜로워져야 할 때다.
좀비딸 한국영화 문체부 영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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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