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엣 더 벤치> 스틸컷
도키엔터테인먼트
- 그래서일까. 벤치가 사람처럼 인물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기분이라 집중하게 된다. 각 에피소드마다의 설정이 있는 건가.
"철저히 의도한 설정이다. 롱테이크로 촬영했는데 우연한 사고와 해프닝도 편집으로 인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1, 5편은 계속 인물의 뒷모습을 담기 때문에 배우조차도 찍힌다는 의식 없이 대화해 연기 자체가 자연스럽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다.
2편은 자칫 콩트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특히 신경 썼다. 그중 하나가 '방금 떠올린 것 같은 대사', '대사 같지 않은 대사나 발성을 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공들였다. 연인이 초밥을 먹으면서 대화할 때, 뒤에서 엿듣다가 참견하는 이상한 아저씨 역에 적격인 배우가 '아라카와 요시요시'였다. 배우 자체도 부유감(감독 왈)을 풍기는 인물이다. 만약 진지한 이미지의 배우였다면 연기가 연기 같아 보일 것 같았다. 본인 자체가 캐릭터 같은 배우에게 부탁해서 잘 살았다고 본다.
3편은 영화에 담긴 것처럼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자주영화(독립영화) 형편상 제작비가 많지 않아 야외 텐트가 하나밖에 없어서 고생했고 현장도 어수선했다. 제가 대본 리딩 때부터 배우가 준비 해온 강도보다 조금 더 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러닝타임은 15분 정도였지만 여러 각도를 담기 위해 10번 이상 테이크를 취해서 곱절 이상 힘들었을 거고, 노숙인이 된 언니와 동생이 치열하게 감정을 주고받는 상황이라 체력 소모가 많이 되었을 거다. 감정과 눈의 움직임이 어긋나면 대사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두 배우 모두 탁월한 연기를 보여줘서 만족한다."
- 히로세 스즈, 나가노 타이가, 이미다 미오, 모리 나나, 쿠사나기 츠요시 등 한국에서도 큰 인기인 배우의 총집합이다. 또한 일본의 대표하는 신·
구 배우의 캐스팅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영화로는 <엣 더 벤치>가 데뷔작이지만 사진, 광고, 뮤직비디오를 15년 정도 연출했다. 그때 배웠던 팀워크, 그러니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회의 방식 등이 단련돼서 다르지 않았다. 캐스팅은 일단 믿고 의지하는 분이자 목소리를 좋아하는 '히로세 스즈'와 '나가노 타이가' 두 분께 부탁드리게 되었다. 1편과 5편을 먼저 찍었는데 그때는 총 5편의 에피소드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조차 없었다. 목소리가 주가 되는 설정이다 보니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매력과 설득력이 큰 배우여야만 해서 캐스팅하게 된 경우다."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려 보길
▲영화 <엣 더 벤치> 스틸컷도키엔터테인먼트
- 사진, 광고, 뮤직비디오 연출 경력이 영화 제작에 끼친 영향력은.
"영화 데뷔 전에 조금은 다른 작업을 해왔지만. 이미 중·고등학교부터 학생 영화를 만들면서 감을 익혀왔고 드디어 영화계로 들어와 영화를 만든다는 기쁨이 크다. 하지만 영상 작업한 사람들과 영화를 만들면서 필드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불안감은 없다. 정지된 사진과 움직이는 영화, 짧은 광고나 뮤직비디오와 긴 영화라고 생각할 뿐이다. 엄청나게 새로운 경험이나 오히려 익숙지 않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규모만 달라졌을 뿐 연출 방식은 비슷하다. 사진은 순간에 포착된 무언가가 스토리의 개연성인 논리를 초월하는 장점이 묘미이고, 광고나 뮤직비디오는 실제 대화가 포함되지 않다는 게 차이점이겠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는 대화가 등장인물의 관계성이나 앞으로의 전개를 상상하게 되도록 했다."
-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과 형제 사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둘이 모여 언뜻 흥미로웠을 법한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워쇼스키 자매, 코엔 형제, 루소 형제처럼 협업 성사 여부는 없나.
"예전에 광고 촬영할 때 동생이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공동 연출의 기회도 좋겠지 만 서로 개성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촬영장에서도 의견 대립이 있어서 전 스태프가 싸움 구경을 하기도 했다. (웃음) 일상생활에서는 서로 밥도 먹고 영화 이야기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는 좋은 사이다."
- 영화의 영감은 어디서 얻고 원동력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위성 방송이 나와서 MTV를 보고 자랐다. 하루 종일 음악이 나오니까 부모님께 시끄럽다고 혼나서 주로 음소거 하고 시청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 음악이 없어도 볼 수 있는 영상과 아닌 영상의 뚜렷한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다. 스파이크 존즈, 조나단 글레이저, 미셸 공드리 같이, 2000년대 초반 활약했던 작가나 감독에게 영향받았고 영감의 뿌리 같은 존재다. 당시 인터넷이란 가상 공간이 생기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호환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창작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엣 더 벤치>의 4편을 제가 쓴 것이 그 예다. (웃음)"
- 영화란 다양한 사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매체다. <엣 더 벤치>도 관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보였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라질 위기의 벤치라는 설정 자체가 물질만능주의 속 노스탤지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없어지고 나면 소중함을 깨닫는 장소나 물건이 반드시 있다. 가까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애착과 그것의 부재가 다가왔으면 했다. 실제 저도 벤치가 철거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영화로 남기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엣 더 벤치>를 보고 소중한 장소, 사람에 대해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참고로 아직 벤치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웃음)"
- 차기작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의 실사 연출을 맡았다. <엣 더 벤치>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이자 리얼리티를 추구했던 반면, <초속 5센티미터>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 연출 주안점이 달랐을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은 '잘 만들어 달라'며 제게 전적으로 위임해 주었고 따로 논의된 사항은 없다. 그래서 저는 애니메이션에서 표현하기 힘든 실사만의 포인트를 살리고자 했다. 예를 들면 인간만의 무의식적인 표정이나 제스처, 말할 때 생기는 여백이나 망설임을 포인트로 두었다. 애니메이션은 누군가가 그려야만 움직임이 생성되고 더빙으로 이어지는 계획된 작품이다. 그리는 순간 의식되어 버려 인간의 무의식 표현이 어려운 매체다. 실사 영화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우연성. 그러니까, 살아 있는 인간이란 존재를 활용해 최대한 살리려 했다. 물론 원작의 존중은 당연하며 <엣 더 벤치>의 연출 노하우를 <초속 5센티미터>에도 반영했다"
- 데뷔작과 동시에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좋아하는 한국 영화나 감독, 배우는 누구인지, 그리고 한국 스태프와 협업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나.
"일본에서도 이미 팬이 많은 한국의 대표 감독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감독을 좋아한다. <기생충> <올드보이> <박하사탕> <버닝> 다 좋아한다. <유랑의 달>에 <기생충>의 홍경표 촬영 감독이 참여했었는데 꼭 이분과 작업하고 싶고, 배두나 배우와도 함께 해보고 싶다."
한편, 영화 <엣 더 벤치>는 7월 30일 개봉해 절찬상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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