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다호>의 한 장면.
뉴라인시네마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어딘가로 향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는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누군가는 떠날 이유조차 모른 채 어디론가 흘러간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는 바로 그 두 번째 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이 로드무비는 우리가 흔히 알던 미국의 자유와 희망이라는 이미지 대신, 낡고 버려진 도시와 상실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길 위에 선 두 청춘,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마음
기면증을 앓는 청년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늘 길 위에서 눈을 뜬다. 정확히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대지 위에서 깨어나는 그의 모습은, 이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존재처럼 보인다.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런 마이크 곁에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거리의 삶을 택한 스콧(키아누 리브스)이 있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맞잡은 동반자처럼 보이지만, 둘의 관계는 애초부터 어긋나 있었다.
마이크는 스콧을 사랑한다. 말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만큼 진심이었다. 하지만 스콧은 그 마음을 애써 피하고, 결국은 자신이 원래 있던 상류사회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다. 마이크는 혼자 남고, 카메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고요히 쓰러진 그의 몸을 비춘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 마이크는 깨어날 수 있을까. 아니, 깨어날 이유가 남아 있을까. 그렇게 영화는 대답하지 않은 채 끝난다.
아이다호, 자유의 땅이 아닌 고독의 풍경
이 영화는 단지 개인의 방황만을 다루지 않는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이면, 말하자면 '자유의 땅' 뒤에 가려진 외로움과 공허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아이다호(Idaho)' 주는 그 상징성이 뚜렷하다. 미국 북서부의 한적한 시골 지역인 이곳은 영화 속에서 폐허 같은 도심과 황량한 벌판으로 등장한다. 도시지만 생기가 없고, 평야지만 자유롭지 않다. 그곳은 마치 '소속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유배지처럼 묘사된다.
아이다호라는 지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누군가에게 고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도착지였던 이 땅은, 결국 누구에게도 집이 되지 못한다. 미국 로드무비의 전통이 '길 위에서 자아 찾기'라면, <아이다호>는 그 길 끝에서조차 자아를 찾지 못한 이들의 침묵과 아픔을 담아낸다.
▲영화 <아이다호>의 한 장면.
뉴라인시네마
리버 피닉스, 짧지만 깊게 빛났던 청춘의 얼굴
리버 피닉스는 이 영화에서 단순히 '연기를 잘한 배우'로 남지 않는다. 그는 마이크 그 자체였다. 그가 화면 속에서 울 때, 떨릴 때, 쓰러질 때 관객은 그의 아픔을 함께 앓는다. 그가 표현한 고독과 갈망은 대사보다 침묵에서, 동작보다 눈빛에서 전해진다.
나는 그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도 좋아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밤거리에서 짧게 만난 두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도, 리버 피닉스는 섬세하고도 절제된 감정 연기로 기억에 남는다. 그런 그가 <아이다호>에서 보여준 절규는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이다호>를 찍은 지 불과 2년 뒤, 스물셋의 나이에 약물 과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깊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해피엔딩이 없는 로드무비, 그래서 더 절절한
<아이다호>는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명확한 메시지도, 안락한 결말도 없다. 우리는 주인공들과 함께 길을 떠나지만, 끝내 어떤 도착도 경험하지 못한다. 마이크는 잠들고, 스콧은 떠난다. 그 뒤에 남는 건 침묵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정직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된다. 누군가의 사랑은 끝내 닿지 않고, 누군가는 길 위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삶이다.
길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아이다호>는 말한다. "지금 너는 어디쯤 와 있니?"라고. 그리고 그 물음은 스크린 밖, 우리에게도 향한다.
더욱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현재 국내 주요 OTT 플랫폼에서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명작, 기억 속에서만 회자되기엔 너무도 아까운 작품이다. 2019년 한국에서 재개봉을 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언젠가 극장에서 다시 이 영화를 만날 수 있기를. 거대한 스크린 위, 아이다호의 황량한 벌판과 리버 피닉스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영화 <아이다호> 포스터.뉴라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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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도로 위에서 사랑도 정체성도 길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