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영상 중 제일 무섭다" KBS '인재전쟁' 다큐 제작 뒷이야기

[인터뷰]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 1·2부 만든 이이백, 신은주, 정용재 피디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KBS

'오랜만에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했다.'

어느 시청자는 이런 평을 남기며 KBS 유튜브 채널을 통해 50만 원을 쾌척했다. 중국과 한국 내 교육 열풍을 조명하며 공대에 미쳐 있는 그들과 의대에 미쳐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제시한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 두 편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인재전쟁 1부: 공대에 미친 중국' 편만 해도 유튜브 채널 게시 5일 만에 57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각종 교육 유튜버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장수 다큐멘터리 프로였던 < KBS 스페셜 >의 맥을 잇는다는 취지로 지난 2019년 개편된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의 노고를 인정받은 첫 사례가 아닐까. 이에 KBS 측은 이례적으로 제작진과 인터뷰 자릴 마련했다. '의대에 미친 한국' 편에 이어 지난 27일 3부에 해당하는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토론회까지 진행한 정용재 피디(1부 연출), 이이백 피디(2부 연출), 신은주 피디(2부 연출)를 KBS 신관 회의실에서 30일 오전에 만났다.

10년 만에 중국 취재 비자 발급 받아내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을 연출한 이이백, 신은주, 정용재 피디(왼쪽부터)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을 연출한 이이백, 신은주, 정용재 피디(왼쪽부터)KBS

시작점은 생성형 AI 툴인 딥시크(DeepSeek)였다. 한창 ChatGPT 등 미국 AI 플랫폼 활용이 뜨거울 때 순수 중국 기술로 개발된 딥시크가 급부상했다. 당장 전 세계인들이 왈가왈부할 때 제작진은 공과대학 진학 열풍이 부는 중국을 주목했고, 공대 기피 현상에 더해 의과대학 진학 열풍이 가속화돼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거울처럼 떠올랐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현지 및 국내 취재를 해가며 2부작을 완성해 낼 수 있었다.

"우리 팀에도 대입을 앞둔 자녀를 두신 선배들이 계신데, 의대로 다들 쏠리고 있다더라. 그분들 지인 얘길 들어도 서울대 공대에 붙었다고 자퇴한다는 얘길 하시니까 한국과 중국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이 현실을 반영한 다큐를 만들고자 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됐다." (이이백 피디)

"다큐가 방송될 때 어떤 반향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제 경우엔 몇 개월간 중국 과학 기술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출연진을 섭외하다 보니 그렇게 충격이 될 줄 몰랐는데, '올해 본 영상 중 제일 무섭다'는 반응 등이 나오더라. 그 정도로 많이 놀라신 것 같다." (정용재 피디)

가장 어려웠던 건 아무래도 중국 현지 취재 및 출연자 섭외였다. 유명 외신은 물론이고 중국통이라던 특파원들도 첨단 과학 관련한 중국 과학자들을 취재로 만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공식 취재 비자도 겨우 발급받을 정도로 첨단 과학 기술 관련 취재에 폐쇄적인 중국이었다. 정용재 피디는 "KBS에서 방영했던 <슈퍼차이나> 이후로 10년 만에 나온 취재 비자라고 하더라"며 "여행으로도 가보지 못 했던 중국이란 나랄 처음 경험해봤는데 사담을 하다가도 인터뷰하는 순간엔 자신의 말이 공동체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며 사람들이 경직되더라. 인터뷰 당일 잠적하신 분들도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럼에도 야오치즈 칭화대 교수 인터뷰 성사는 큰 소득이었다. 과학계 노벨상에 해당하는 튜링상 수상자인 야오치즈 교수는 국가 인재를 육성하는 칭화대 내 영재 교육 시스템인 야오반을 지도하고 있다.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를 절대 안 하던 분인데 비서실에서도 우리 취재에 응한 이유를 모르겠다더라"며 정 피디는 지난했던 섭외 과정을 언급했다.

"보통은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연락하면 일거리가 생기는 거라 좋아하시거든. 근데 우리가 전달한 섭외 리스트를 보자마자 못하겠다고 포기한 분도 계셨다. 쉽지 않겠다는 걸 직감했지만, 촬영 직전까지 약 2개월을 섭외하는 데에 다썼다. 우리끼린 '좀 기다려 보시죠'가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나중엔 프로그램이 엎어질까 쫄리더라(웃음)." (정용재 피디)

그런 과정 끝에 1부엔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를 잘 치르기 위해 항저우 내 유명 학군으로 이사하는 학부모들, '항저우 6룡(중국 첨단 산업을 이끄는 항저우의 6대 스타트 기업)'인 유니트리, 딥로보틱스 등의 탄생 배경이 CEO 인터뷰와 함께 생생하게 담길 수 있었다.

"한창 중국 기술력과 인재 양성 시스템 관련 책이 나오던 차에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외신을 찾아봐도 자세한 얘긴 거의 없었다.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느껴졌기에 일단 직접 가서 잘 보고 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지만 1부는 일단 시청자들을 대신한 눈이 돼서 생생한 현장을 담자는 생각이었다. 가오카오도 여러 방향으로 접근하려 했다. 수능처럼 그 시험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인식에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준비하더라. 물론 이걸 타파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방송엔 못 담았지만 칭화대 야오반 학생 중에선 가오카오 대신 수학경시대회 등으로 입학한 학생도 있었다. 입시 제도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정용재 피디)

대안 찾으려 기획한 2부... "오히려 슬펐다"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KBS

중국의 현재를 담은 1부를 두고 충격과 공포라는 반응이 많았다면, 2부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은 슬프다는 반응이 주였다.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 진학을 포기하고 재수, 삼수, 심하게는 10수를 거치면서도 의대를 가려는 현실을 두고 한 과학자가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직업군에 인재들이 몰리면 그 사회가 쇠락하는 증거"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올 법했다. 1995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했던 과거와 달리 권위 있는 원로 과학자가 연구 예산 삭감에 절망하며 중국행을 택하는 현실이 대조된다. '인재전쟁'이라는 제목도 그 맥락에서 나왔다.

이이백 피디는 "정말로 인재를 전쟁처럼 뺏고 뺏기는 상황 같았다. 다 담진 못 했지만 한국 인재들이 미국과 중국으로 가고, 동남아 인재를 영입하는 이 현실이 딱 인재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의대 진학을 고집하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람이기에 본인의 이익을 전혀 무시할 순 없다. 중국에서 공대 열풍이 부는 것도 취업이 잘되고 스타 창업가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있거든. 다만 중국 사람들은 출세나 이익보단 뭔가 국가를 위해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생각을 하더라. 카메라가 켜지기 전에도 그런 분위기는 느껴졌다. 이상 카이스트 교수님이 딱 40년 전 우리나라 분위기라고 하셨다. 국위 선양이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여겼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잖나.

아무래도 편집하면서 드라마틱 하게 보인 면도 있다. 의대에 간 모든 사람을 소신 없는 사적 이익만 추구한다고 비난할 순 없다. 다만 그런 경향성은 있음을 지적한 것이지. 비난보단 공론의 장을 만들어서 이런 방향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었다. 공대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 연구하는 교수님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각보다 더 컸다. 그럼에도 한 교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생각하려 했다. 의사를 한다 해도 연구할 사람은 하고, 공대에 가서도 사람 고치는 게 적성에 맞는다면 그 일을 하게 된다고 하셨거든. 사회의 경향성을 보면 문제인 건 맞지만 결국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진다면 개인은 자기가 원하는 자릴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이백 피디)

신은주 피디 또한 "개인이 잘되기 위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불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찾는 안정적 직업이 의사라는 느낌이었다"며 "연세대의 한 젊은 교수를 인터뷰했는데 연구도 잘하시는 분임에도 아내가 의사 친구들과 비교하는 그 말에 씁쓸했다고 하셔서 안타깝고 슬펐다"고 말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공통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모자이크나 음성 변조 없이 있는 그대로 전했음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신은주 피디는 "시사교양 피디로서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야 안 찝찝한데, 진정한 논의는 이 방송 이후 이어지길 바란다"며 "정책, 학회 관련 분들이 많이 보고 계신다고 들었다. 구체적 논의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큐멘터리의 가치 믿는다"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
KBS <다큐 인사이트> 2부 '인재전쟁: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의 한 장면.KBS

길게는 7년 차 짧게는 3년 차의 막내급 피디들의 손에서 탄생한 이 다큐는 본인들에게도 상당한 동기부여였다. 정용재 피디는 "레거시 미디어, 지상파의 환경이 안 좋아지고 있음에도 다들 고군분투하는데 이런 화제성을 경험해봤다는 게 벅차다"며 "과거 선배들의 <차마고도> 같은 화제성은 다시 경험하긴 어렵겠지만 지금의 경험이 힘이 되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이백 피디는 "매번 다큐를 왜 만드는가 생각하며 일하는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다큐가 이렇게 없었나 슬프다고 한 선배도 계셨다"며 "우리 같은 낮은 연차 피디들은 이런 반향을 처음 겪기에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있고 거기에 우리 아이디어와 기획이 만난다면 가능하겠구나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은주 피디는 방송에 다 담지 못한 몇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1시간 이상 인터뷰 했음에도 분량상 수십초만 써야 했던 한계를 짚으며 그는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면서 왜 실제 의사는 안 나오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취재도 했고 촬영도 했지만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뺐다"고 밝혔다.

"카이스트에 입학하고도 의대에 가기 위해 4수를 하고 있는 분, 대치동에서 10년째 의대를 준비하는 분 등도 만났다. 촬영은 못 했지만 서울대 공과대학을 나온 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30대가 넘어 의대에 진학한 분도 계셨다. 공기업에 다니는 분이었는데 은퇴 후 삶이 불안할 것이라는 주변 말에 결정했다더라. 이이백 선배가 희망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런 데서 한국사회의 절망을 보긴 했다. 적어도 이 방송으로 사회적 의제를 던졌다는 건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젊은 피디들끼리 또 모여서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신은주 피디)

세 피디 모두 다큐 공개 이후 발전적인 토론과 정책 등이 나오길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방송에 다 담지 못 한 분량을 책이든 추가 편집이든 여러 방안을 놓고 활용하는 것도 고민하는 중이었다.

"댓글 반응 중 기분이 가장 좋았던 건 대통령과 장관들이 모두 시청해서 10장짜리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거였다. 우린 언론의 역할을 했고, 구체적 법안과 제도는 그분들이 해야 하니까. 의사 친구 중에선 왜 가만히 있는 의사를 건드리냐며 농담 섞인 반응도 했는데, 우린 훌륭한 인재들이 의대든 공대든 마음 놓고 지원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였음을 말하고 싶다." (정용재 피디)

"7세 고시라는 말이 있듯 어린 나이대에 이미 자기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구조가 문제같다. 공부로 모든 걸 소진한 채 수능을 보니까 가능성에 투신하지 않는 거 아닐까 싶다. 공대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곳이고, 의대는 보상이 보장된 길인데 모든 걸 소진한 학생들 입장에선 보상을 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출연진이었던 공경철 교수께서 말씀하신 게 있다. 그 선택지를 주고 소신 없이 의대를 택한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지친 아이들을 보듬어줘야 한다는 그 말이 모든 촬영 중 가장 마음에 남아 있다." (이이백 피디)

'인재전쟁'에 한국은 극호! 중국은 불호!
'인재전쟁'이란 제목에 한국과 중국 취재진들 반응이 상반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 편을 담당한 이이백, 신은주 피디는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소제목에 대치동가에선 다들 출연을 꺼려하는 분위기라 '인재전쟁'임을 강조하니, 흔쾌히 해주셨다"고 귀띔했다. 반면, 정용 피디는 "중국에선 오히려 '전쟁'이라는 단어에 기겁하더라"며 "현지 코디네이터가 다른 제목 없냐고 조언해서 '인재 공화국, 천재들 중국으로 가다'는 식으로 가제를 만들어 섭외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재전쟁 다큐인사이트 의대 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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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