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레블 리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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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를 위해 영화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주인공 테리를 영웅화하지 않는 것이다. 전직 해병대원이라는, 해병대 무술 프로그램 교관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행동에서는 과장된 남성성이나 권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후반부에 이르러 실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기에서조차 그가 싸우는 이유는 복수나 힘의 과시가 아닌 최소한의 존엄과 명분을 지키기 위함이 된다. 심지어 사촌이 죽는 순간마저도 그는 최소한의 동요만을 보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태도와 방식이 더 큰 충격을 남길 정도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까지 참고 또 인내하는 것. 이 지점은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기존 장르물과의 거리를 두고자 했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대신 영화는 그에게 작은 근거부터 쌓아가며 조금씩 균열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거짓과 부패로 점철된 서장 샌디 번(돈 존슨 분)의 비밀을 추적하고, 경찰 내부 집단의 그릇된 결속을 드러내는 과정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법을 전복시키거나 정의를 대신 집행하는 방식이 아닌, 누적된 질문과 증거, 그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진실을 완성해 가는 일이 된다. 물론 영화 속 사건이 벌어지는 셸비스프링스 지역은 경찰 시스템의 부패, 사법 제도와의 결속, 언론의 침묵, 비극에 무감각해진 커뮤니티 등을 통해 테리를 자연스럽게 고립시키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04.
"도움이 절실해 보여서요. 그 막막한 기분 나도 알아요."
한편, 서머(안나소피아 롭 분)는 테리와 함께 영화의 축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는 인물이다. 테리가 제도의 외부에서 균열을 만드는 동안, 그는 내부의 조력자가 된다. 영화 안에서만 보자면,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부조리함을 감지해 내고 이에 대해 고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후 경찰 내부에서 서머를 돕는 존재가 한 명 더 등장하지만, 깊은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앞서 조력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 법의 말단에 남은 마지막 양심, 혹은 진실을 기록하고자 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가 테리를 돕게 되는 것을 단순한 연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왜곡된 구조 안에서 수많은 '비극의 경로'를 목격해 왔기 때문에, 무너진 윤리의 현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아직 학교 학점도 더 채워야 하고, 시험도 합격해야 하는 등의 문제로 시스템 속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결정적인 순간 테리를 돕기로 하는 서머의 결정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저항'이 어떤 모습과 형태를 하고 있는지 그 본질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영화 <레블 리지> 스틸컷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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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형식적 실험은 살상을 최소화하는 (하지 않는) 액션에 있다. 테리는 수차례 공격 받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지만, 그에 맞서면서도 상대를 죽이는 선택을 쉽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총격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제압하고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런 형태의 액션은 한 인물을 설명하는 행동 양식을 넘어 영화 전체의 서사가 갖고 있는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 큰 폭력이 아니라, 그 고리 자체를 끊어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한다. 경찰 조직은 여전히 부패한 상태로 기능하고,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의 손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세상의 거의 모든 개인적 저항은 집단의 결속과 부패, 방관 속에 아프게 시들어간다. 물론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 전체는 기록으로 남겨지며, 또 다른 불씨를 낳고 당기게 할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무릎을 꿇게 되는 것 또한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영화의 처음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실제로 망가진 시스템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을, '악(惡)'을 지지하고 지켜준 수많은 동조자의 행태를 끝내 목도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06.
"사촌 동생을 살리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죠."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와 정의의 나라라고 불려 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찰 권력의 남용, 인종차별, 제도적 불평등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 또한 드리워져 있다. 영화 <레블 리지>는 그 그림자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잔혹한 폭로가 아닌, 치밀한 서사를 통해서다. '민간 자산 몰수' 제도로 인해 미국 내 수많은 시민이 삶과 권리를 잃었다는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다고 한다.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공권력은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액션영화가 어떻게 사회적 메시지를 품을 수 있는지, 복수라는 장르가 어떻게 윤리를 재정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예시다. 우리는 자주 영웅을 원하지만, 때로는 그런 영웅조차도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한 사람의 투쟁이 아닌, 모두가 감당해야 할 정의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단단한 저항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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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