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트리거>의 한 장면
넷플릭스
총기 합법화라는 지옥을 간접체험하고 싶다면 미국 내 총기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과 기막힌 현실을 파헤친 마이클 무어의 다큐 <볼링 포 콜럼바인>을 추천한다. 다큐가 부담스럽다면 1999년 4월 발생한 미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그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문제작으로, 제56회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걸작 <엘리펀트>를 찾아 보시기를.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이동진 평론가가 별점 5개를 준' 이 작품은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고등학생의 총기 난사 사건을 사색적이고 너르고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화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리하여 영화적이고 예술적인 윤리에 대하여, 기어코 인간 존재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엘리펀트>를 소개하는 동시에 앞서 전시란 표현을 계속 쓴 건 같은 이유다. 희생자의, 생존자의, 그리고 유족들의 트라우마가 막대하고 역력한 총기 난사 현장에 대한 묘사는 특히 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지 않은, 벌어지지 않을 사건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그걸 좀비 영화의 재난 상황처럼 묘사했을 때 밀려올 후폭풍을 감수해야 마땅하다. <트리거> 속 학교 총기 난사 장면은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난 액션'이란 수식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트리거>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만 한 묘사는 아무리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상황과 심리를 구구절절 소개했다고 해도 면죄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엘리펀트>는 물론 군대 총기 난사 사건을 그렸던 같은 넷플릭스 시리즈 < D.P. >와 <트리거>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학교 장면 만이 아니다. 재난 상황을 일으키려는 욕망이 시리즈 전체에 들끓는다. 세상이, 한국사회가 지옥도라는 주제보다 총기 살포가 일으키는 재난 상황 묘사를 즐기는 듯한 장면이나 연출들의 연쇄는 주제를 희석하고 반감시킨다. 핍진성이나 리얼리티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공포를 위한 자극의 연쇄. 구조는 텅 비고 개인의 분노만 강조된 공허함. 완성된 지 20년도 넘은 <엘리펀트>가 준 교훈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까.
대한민국은 총기 합법화에 대한 고민이 1도 없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트리거>는 후반부에 기어이 총기 합법화 논란이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 상황을 연출해내고야 만다. 그런 분열이 한국 사회라는 지옥도를 은유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와 장르적인 K-드라마식 연출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트리거>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분열적 상황이라 할 만하다.
다행인 점 하나는 멋들어진 액션 장면이 의외로 거의 없다는 점이리라. 그건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키는 범죄자들이 성범죄자나 조폭들을 제외하곤 한국이란 지옥도의 일원이라는 설정과 이를 위한 공감대 형성이란 필요에 의해서라 볼 수 있다. 설득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언론에 대한 묘사가 빠지지 않고 주요하게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고.
또 총기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공수된 총기라는 설정 자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하다. 대체로 안정적인 연출 속 도발적인 주제를 제시한 <트리거>는 공개 첫 주말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6위까지 치고 올랐다.
반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자 지난해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대한민국의 자살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트리거>는 '총기'를 통해 '재난'을 일으키려는 '액션'에 방점을 찍었다. 그 액션엔 총기 난사 장면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총기가 풀린다면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 가장 먼저 손쉬운 선택을 할 이들은 누구인가.
같은 총기 액션이란 점에서 전 세계 영화팬들은 물론 한국 영화인들도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가 <트루 로맨스>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각본을 쓰고 고 토니 스코트 감독이 연출한 이 고전 액션 로맨스이 끝 장면은 경찰과 양대 조직원들이 한데 뒤엉켜 총격전에 벌이고 몰살하는 액션 영화 사상 희대의 명장면으로 불린다. 몇 년 뒤 토니 스코트 감독이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셀프 오마주를 했을 정도다.
<트리거>는 어쩌면 이런 장면을 한국에서 연출하고 픈 욕망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이 설정의 근원이 "쓰레기 같았던 어린 시절"과 "복수에 찌든 마음"이요, "복수를 위해서 들었던 총까지"라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해 봐도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한 이도의 답은 이랬다. 무척이나 상정적이라 반어법처럼 들릴 정도다.
"무슨 철학이 있는 것처럼 네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 마. 넌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해서 돈이나 버는 싸구려 장사꾼일 뿐이야."
▲넷플릭스 <트리거>의 한 장면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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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