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 4 : 새로운 출발>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3.
"너희 행성을 천천히 집어삼키는 모습을 그 아이가 지켜보도록 해 주지."
이번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대상은 리드 리처즈와 수 스톰 사이에서 잉태된 아이 프랭클린 리처즈(에이다 스콧 분, 이하 프랭클린)다. 이 아이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생명력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초능력을 가진 다른 네 히어로와 달리, 아직 완전한 힘을 갖지 않은 '가능성'의 상태다. 힘의 유무를 넘어 정체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의 부모는 자신들이 우주 방사선으로 인해 DNA가 변형되었다는 점을 이유로 그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으로 보자면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불안정성과도 유사하다.
한편, 갤럭투스는 영화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 우주적 위협의 대명사이자 신화적 심판자로 여겨진다. 그의 존재는 고대 신화 속 신들의 운명적 구도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단순한 적대자가 아니라 '운명의 심판자'로서 모든 존재가 마주해야 할 필연적 미래와 위기를 의미한다. 그의 예언은 영화 서사를 관통하는 축으로, 예고가 아닌 불가항력적인 숙명에 가깝다. 이를 통해, 갤럭투스가 내리는 예언은 '판타스틱 4'의 히어로들이 맞서 싸워야 할 외부적 위협이 아닌, 모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공포와 불안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신화 속에서 신들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시련과 닮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프랭클린에게 '파워 코스믹'이라는 힘이 있고, 그가 자신의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갤럭투스의 말은 다시, 이 아이의 등장이 전통적 신화 속 '순수한 존재', 또는 '선택된 자'가 되도록 이끈다. 그의 파괴적 예언과 대비된 쪽에서 시련을 이겨낼 가능성의 무게를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희망이 아닌 불확실성과 책임이 공존하는 미래의 표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구조의 차용은 이 영화가 다음의 두 가지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질 수 있도록 허락한다.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어떤 선택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04.
"여러분을 위해 제 아이를 희생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제 아이를 위해 이 세계를 희생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번 작품의 정점을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전투 장면이 아니라 인류와 히어로 집단 사이의 윤리적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리드 리처드와 수잔 스톰의 아들 프랭클린이 있다. 갤럭투스는 그가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영겁의 허기짐을 모두 흡수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힘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라 말한다. 미래에 자신을 파멸시킬 힘을 가질 존재에 대한 인정이자 위협과도 같다. 샬라 발/실버 서퍼(줄리아 가너 분)에게 했듯이 그 가능성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프랭클린은 그렇게 아직 모든 가능성의 문턱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갤럭투스가 주목하는 존재이자, 가까운 미래에 그를 진정으로 위협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문제는 그런 '프랭클린을 내놓을 경우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라는 갤럭투스의 제안을 히어로 가족, 특히 그의 부모인 리드와 수잔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모라면 누구나 택하게 될 '정의'와도 같은 선택에 가깝다. 다만 그 선택과 함께 모든 상황은 도덕적 논의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전환된다. 갤럭투스의 제안과 히어로 집단의 선택을 알게 된 대중의 분노와 정치권력의 압박은 점차 공적 언어로 포장된 전체주의로 변질되며 체득되었을 것이라 믿었던 윤리는 모두 증발해 버린다. 감정과 공감이 체제로, 사랑과 이해가 권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결국은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마주하고 다룰 것인가?'하는 문제와 이어진다. 위협과 생존을 근거로 생명을 포기하고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되는 사회는 선(善)과 정의(正義)를 따를 수 없다. '판타스틱 4' 히어로들은 결국 프랭클린을 넘기지 않는다. 대신 대중을 설득한다. 이 선택은 종말을 각오한 사투와 희생을 의미한다. 도덕적 붕괴에 따른 인간의 상실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 결과다. 그리고 이 결정을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보다 인간에 가깝다.
▲영화 <판타스틱 4 : 새로운 출발>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5.
영화 <판타스틱 4 : 새로운 출발>은 히어로물이 자주 외면해 온 윤리적 긴장, 곧 '모두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아이의 운명을 통해 정면으로 제기한다. 갤럭투스라는 압도적인 존재는 전통적인 악역의 틀을 벗어나, 인류 내부의 도덕적 경계와 집단적 판단을 시험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프랭클린을 둘러싼 갈등은 초능력이나 전투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더 깊이 요청하며, 관객에게 쉽지 않은 판단의 자리를 남긴다.
물론, 장르적 한계를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일부 인물의 서사적 밀도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얕게 다루어지고, 거대한 설정과 철학적 문제의식에 비해 서사의 일부는 설명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프랭클린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과정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보여주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단순한 초능력의 획득만이 영웅과 동일한 의미가 될 수 없으며, 구원과 희생 사이에 단순한 해답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결국 이 영화는 '옳은 선택'이 아니라 '버티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절대적 정의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 서사는, 단순한 히어로 무비가 아닌 오늘날 사회가 마주한 도덕적 어려움의 비유로도 읽힌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반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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