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낭만과 순정, 이 영화엔 그대로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117]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한때는 있었다. 낭만이란 것이, 또 순정이란 것이 말이다. 빠르게 희소해지다가 이제는 목격하지 못한 지가 벌써 수 년은 된 것 같지만, 우리 곁에 분명히 낭만과 순정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낭만과 순정이 멸종위기에 처한 건 자연스런 일이다. 낭만이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것이고, 순정 또한 따지고 계산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휘되는 때문이겠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란 갈수록 계량화되고 빗대기 쉬워지며 표준과 비표준을 확연히 갈라 나누는 방향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모두가 한 치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경주하는 이 시대에 낭만과 순정을 지키는 이는 진즉에 뒤쳐져 돌아봐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를 흉내 내는 이라면 모를까.

그리하여 낭만과 순정을 아껴온 나와 같은 이조차 벌써 십여 년 동안 그를 채 몇 번 목격하지 못 하고 산다. 나는 그를 불행하게 여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스틸컷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스틸컷튜브엔터테인먼트

낭만과 순정의 대표주자

영화도 현실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대중영화에서조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낭만과 순정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를 귀하게 여기는 채 한 줌 안 되는 이들은 현실에선 마주하기 어려운 낭만과 순정을 예술에서나마 찾아 추억하였으나, 이제는 그조차도 힘들게 되었다. 낭만이며 순정을 작품 안에 담아낼 줄 아는 감독이 빠르게 사라져가는 때문이겠다.

이와이 슌지를 빼고 낭만과 순정을 논할 수는 없다. 분명히 지금도 물리적으로 살아는 있지만, 지난 세기에 제가 가진 재능의 대부분을 놓고 온 이가 이와이 슌지다. 일본에서보다도 한국에서 더 인지도가 높은 듯한 그를 한국인들은 <러브 레터>, 혹은 < 4월 이야기 >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감독으로 기억한다. 좋아하는 이는 얼마 없어도 <하나와 앨리스>라거나 <립반윙클의 신부> <키리에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테다. 그 모두가 <러브 레터>로부터 출발한 것일 테지만, 무튼 이와이 슌지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인 것이다.

<러브 레터>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이와이 슌지의 정서가 담뿍 녹아든 두 편의 영화다. 주지하다시피 <러브 레터>는 죽은 애인의 첫사랑과 편지를 나누며 죽은 이를 새로이 이해해가는 여자의 이야기로,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청승도 그런 청승이 없겠으나 영화는 그를 몹시 아름답게 그린다. 이미 죽은 애인을 웬 설원에서 목놓아 부르며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이의 모습이, 또 십수 년의 세월을 건너 도서대출카드 뒷면에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죽어버린 이가 품었던 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는 전혀 쓰잘데기 없는 것이지만 보는 이에게는 전혀 다른 묵직한 감상을 안기는 것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스틸컷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스틸컷튜브엔터테인먼트

이와이 슌지의 숨겨진 걸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세기 초에 나온 작품이지만, 세기말의 감수성을 가장 잘 담아낸 영화로 손꼽힌다. 연기 경력이 일천한 아마추어 배우들이 기용됐다는 점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서 독자와 쌍방향 소통하며 쓰인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점, 무엇보다 따돌림과 첫사랑 같은 학창시절 사건들을 두루 다루며 그 안에 지난 세기의 정서를 담뿍 담아낸 덕분일 테다. 사소하고 소소하여 지나간 뒤엔 떠오르지 않을 만한 이야기지만 결코 가벼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 영화 안에 들어 있다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아끼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를 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은 다른 어느 영화 못잖게 이 작품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을 지지하고는 한다. <러브 레터> 만큼 대중적이진 않아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처럼 특징적이지 않아도, 낭만과 순정, 그 모두가 순도 높게 담겨 있는 그 시절 이와이 슌지의 작품이란 이유에서다. 일본과 정식 문화교류협정이 맺어지지 않아서 제작된 지 10년 뒤에나 소리소문 없이 개봉했던 이 영화가 이달 재개봉에 이른 것도 그와 같은 소수 영화팬의 선명한 지지 때문이겠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어떤 작품인가. 앞서 적었듯, 나는 이 영화야말로 지난 시대의 정서, 그 중에서도 낭만과 순정이 담뿍 담긴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 속에 담긴 몇몇 장면이며 에피소드는 일본 영화사 전체를 가로질러 각별히 낭만적이고 순정 있는 순간이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를 본 지 십수 년이나 지나서도 그와 같은 장면에 대하여 '옌타운 간판 장면'이라거나 '글리코의 마이웨이 신', '지폐 불태우는 장면', '입간판 목격 신' 등으로 생생히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나 또한 그중 하나다.

영화는 1990년대 일본에서 바라본 근미래의 어느 날이다. 세계경제가 재편돼 일본 엔이 기축통화 수준의 힘을 얻고, 전 세계 노동자들이 엔화를 벌기 위해 일본으로 옮겨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흔히 그러하듯 이주노동자들이 값비싼 도심에서 살아가긴 어려운 일이다. 도시 외곽엔 엔을 벌러 왔다고 해서 옌타운(Yen Town)이라 불리는 동네가 형성된다. 일본 내국인들은 이 동네를 무시하지만, 옌타운 사람들은 그들 나름으로 서로를 보듬고 또 등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스틸컷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스틸컷튜브엔터테인먼트

소외되고 낙후된 땅에 귀한 것이 있다

주인공은 이름 없는 소녀(이토 아유미 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중국계 이주민 여자가 시체안치소에 누워 있는데, 이 자리에 온 이들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 그녀와의 관계를 증명하지 않는다. 우리로 치면 그녀가 불법체류자인 때문이다. 이 자리엔 죽은 이의 딸도 와 있는데, 그녀 또한 죽은 이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부정하지도 않지만.

엄마가 죽어 기댈 곳 없어진 소녀는 이리저리 떠밀리다 매춘부 글리코(차라 분)에게 거둬지게 된다. 처음엔 소녀를 탐탁찮게 여기던 그녀는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그녀를 떠맡았지만, 차츰 정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글리코는 소녀에게 호랑나비를 뜻하는 아게하라는 이름을 주고,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소개한다. 페이 홍(미카미 히로시 분), 랑(와타베 아츠로 분), 흑인 복서 출신인 아론 등이다. 기댈 곳 없이 혼자였던 아게하가 일본 내국인이 찾지 않는 교외, 그것도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뚜렷한 직업 없는 주변인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이룬다.

이 영화가 왜 좋으냐를 묻는다면 난감해진다.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라 하면 딱 잘라 이것이다 하고 말하기가 어렵다. 옌타운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계 조직이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는 필름을 입수하려다 그것이 우연히 아게하와 그 패거리 손에 들어온다는 것, 글리코가 가수로 크게 성공하는 과정에서 소속사에 의해 일행과 떨어지게 된다는 것, 두 가지 흔하고 통속적일 수 있는 이야기가 제멋대로 얽혔다 풀어지며 영화가 끝난다는 게 전부인 것이다. 온갖 상황을 겪고 나서도 아게하와 그 패거리가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의 마음과 또 아게하의 마음에 분명히 전과 달라진 파동이 일어난다는 게 이 영화가 특별히 기억되는 이유일 테다.

말하자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어째서 훌륭한 작품인가를 언어로 잡아 글로써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 영화는 성공을 동경하는 주변인의 욕망을, 관계를 갈망하는 외로운 인간의 갈망을, 그 가운데서 몰락하고 지탱되는 순간, 나아가는 선택과 그렇지 못한 결정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그 장면들을 영화는 아름답게 채집한다. 이를테면 우연치 않은 사건으로 죽음을 맞은 일본인 조직폭력배를 암매장하고 돌아오는 길, 아게하와 그 패거리가 탄 트럭 뒷자리 풍경이라거나, 일본 정부가 뒤쫓고 있을 게 분명한 위조지폐를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방법으로 무지막지하게 생산해내는 장면, 또 저를 떠나가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된 옛사랑을 바라보는 모습 등을 이 영화는 너무나 어여쁘게 포집하고 있는 것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포스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포스터튜브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

마치 극중 글리코가 부르는 '마이 웨이'가 그러하듯, 처음엔 어색하고 낯선 이 영화의 분위기는 그것에 적응하기만 하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상을 남긴다. 일본 내국인이 좀처럼 발 들이지 않는 소외된 지역에도 얼마든지 인간적인 삶이 있다고, 어쩌면 도시에서 멸종된 것처럼 보이는 낭만이며 순정 같은 것이 도리어 이 버려진 땅에 있을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눈에는 낙후된 우범지대일 수 있는 옌타운이, 실은 가장 고귀한 삶들이 모여 있는 곳일 수 있음을 짚어내는 감성이 그 시절 이와이 슌지에겐 있었던 것이다. 또 그를 알아보는 눈들 또한 그 시절엔 분명히 있었다.

거리낌 없이 다른 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시대다. 뒤처지고 낙후된 것은 더는 존중받지 못한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속 아게하의 패거리가 그렇듯이, 옌타운으로 밀려나고 그곳에서도 더 소외된 지역으로 몰려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에겐 돌아볼 무엇도 없다고 무시되고 폄훼되기 십상이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돌아봐지지 않는 곳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며, 그곳에 도리어 더 귀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마침내 그 기대를 현실화시켜내는 실력까지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와이 슌지가 옌타운에서 캐낸 건 낭만과 순정이며, 조건과 이해득실을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감정과 감성이다. 나는 이와 같은 것을 요 근래 작품에선 거의 보지 못 하였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보고 나서야 우리는 정말이지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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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