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 스틸 이미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수잔은 이 윤리적 대립의 단면에 선다. 그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사실 그녀의 태도는 윤리적이지 않다. 여기서 논쟁의 틀 자체를 윤리에서 모성으로 전환하는 교묘하고도 강력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극중에서 사람들이 설득당하고 관객이 개연성을 느끼는 이유는 왜일까. 우리가 모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포유류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잔은 아들을 지켜야 하기에 더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신약성서의 한 장면인 양 자기 아들을 달라고 몰려든 군중에게 얼핏 고양된 논리로 선언한다. 이 감동적인 연설은 사실상 선택 불가능한 딜레마를 비껴가는 수사적 회피에 가깝다. '아들'과 '세상'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아들을 지키는 행위가 곧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는 자기에게 유리한 명제를 만들어낸다. 만일 판타스틱4에게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었다면 군중이 애초에 아들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수잔의 명제는 답이 아니라 질문의 무력화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논리를 넘어서 거부할 수 없는 감성적 호소력을 지닌다. 인간 내면에 각인된,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성의 원초적 모습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조명된 가족주의
판타스틱4의 새로운 출발은 진정한 가족, 혹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의 출발이기도 하다. 아이의 탄생이라는 기념비적 사건과 극복이 어려워 보이는 결정적 위기는 네 명의 개인이 가족으로 거듭나는 용광로가 된다. 영화는 리드와 수잔의 부모로서 고뇌뿐만 아니라, 이 비극을 마주한 다른 두 멤버의 시선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확장한다.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잃고 바위 같은 괴물(씽)이 된 '벤 그림'(에본 모스-바크라크)은 누구보다 희생과 인간성의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유머로 넘어서서 가족의 윤리적, 감정적 닻이 되어준다. 자유분방한 '조니 스톰'(조셉 퀸)은 수잔의 철없는 동생의 위치에서 벗어나, 조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통제하고 책임감을 배우는 성장을 겪는다. 더불어 불발에 그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매한 희생을 결행하기도 한다.
영화는 < 판타스틱4 >가 그저 슈퍼히어로 팀이 아니라,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유기적인 공동체, 즉 가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레트로 퓨처리즘
영화가 표방한 '레트로 퓨처리즘'은 시각적 스타일을 넘어,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장치이다. 1960년대는 우주까지 넘본 과학적 낙관주의와 인류 절멸의 핵전쟁 공포가 공존한 냉전의 극성기였다.
영화에서 표현된 매끈한 곡선, 대담한 원색, 단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인류의 희망과 꿈을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밝고 희망적인 미학은 행성 파괴자 '갤럭투스'(랄프 이네슨)라는 이해 불가능하고 극복 불가능한 우주적 공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인류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가 언제든 외부의 거대한 위협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냉전 시대의 불안감을 은유한다. '인류가 상상한 미래'와 '실제로 닥친 현재의 위협' 사이의 긴장감을 창조하며, 그 속에서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전통적 공동체를 부각하며 어떻게 희망을 사수하는지를 극화했다.
구원 서사를 통한 모성의 해법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지키겠다"는 수잔의 선언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역명제가 참일 때만 완벽한 정당성을 얻는다. 이 당위성은 아들이 '구세주'라면 완벽해진다. 갤럭투스가 그토록 그들의 아들을 원하는 이유와 대미에 발휘되는 아이의 능력은 그가 어쩌면 구세주일지 모른다는 시사이다. 헤롯왕의 영아 학살이라는 비극을 감수하면서까지 구세주를 지켜내야 했던 신화적 서사와 궤를 같이한다.
결국, 표면적으로 이기적인 모성의 발현으로 보였던 수잔의 선택은, 아들이 세상의 운명을 쥔 구원자라는 사실, 또는 가능성이 밝혀지면서 가장 숭고하고 필연적인 행위로 재해석된다. 그녀의 모성은 최종적으로 거대한 구원 서사 안에서 또 MCU의 새 출발 안에서 완전한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획득한다.
해피엔딩의 열쇠
▲영화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 스틸 이미지.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이 모든 윤리적, 감정적 난제를 지적인 해법으로 풀어내며 납득할 만한 해피엔딩을 모색한다. 열쇠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다. "충분히 긴 지렛대와 받침점만 있다면 지구라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착안해 리드는 처음에는 갤럭투스라는 거대한 위협을 회피할 강력한 지렛대를 찾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극의 전개에 따라, 또 필요한 반전 설계에 따라, 힘들여 고안한 그 지렛대가 한계를 드러내자 발상의 전환을 실행한다. 지렛대의 역능이 부족하다면 들어 올릴 물체를 바꾸면 된다. A와 B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방법 중에는 A를 움직이는 방법과 B를 움직이는 방법이 모두 가능하다. 물론 A와 B 각각의 의지도 중요하다.
리드가 고안한 첨단 과학의 해법은 발상의 전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렛대의 받침점(Fulcrum)과 작용점(Point of action), 힘점(Effort point)이 확정되었고 충분한 힘이 확보되었다 할지라도 물체의 거부 의지를 좌절시키며 작용점 위에 물체를 얹으려면 물리력이 필요하다.
영화는 이 힘을 모성에서 차출했다. 리드의 부성이 지렛대의 원리를 제시했다면, 그 지렛대의 작용점 위에 '물체'를 올리는 초인적 또는 초슈퍼히어로적 힘은 아들을 지키려는 수잔의 절대 의지, 즉 모성에서 나온다.
영화의 예정된 해피엔딩은 리드의 부성(지성)과 수잔의 모성(물리력)이라는 두 축이 결합하여 구원 서사를 완성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아무래도 클라이맥스는 목숨을 거는 모성이겠다. 또한 이 해피엔딩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마침내 구세주의 탄생을 확인하는 새 미래의 제시이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SF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두른 채, 그리스 비극의 무게감과 가족 드라마의 섬세함, 그리고 냉전 시대의 사회적 불안까지 녹여낸 지적인 영화를 지향한다. 선악의 대결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넘어, 인간이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힘을 증명하며 MCU의 서사적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했다. 복합적인 서사와 독창적인 미학의 조화로 만들어진 맷 샤크먼 감독의 이 '블록미스터'가 오락물 이상으로 소비될지는 그러나 미지수다. 어쨌든 마블 영화니까.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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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세계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