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영끌족, 코인 투기 무너뜨린 '이 소리'

[김성호의 씨네만세 1114] < 84제곱미터 >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thriller film)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스릴(thrill), 즉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걸 장르적 목표로 삼는 영화다. 히치콕이 '탁자 아래 놓인 시한폭탄'과 '그를 모르는 주인공', '모두를 아는 상태로 이를 지켜봐야 하는 관객'이 빚어내는 영화적 재미라 설명한 서스펜스는 스릴러의 지향점이라 해도 좋겠다. 요컨대 스릴러는 관객을 불편케 할 줄 알아야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영화는 시대를 바탕으로 한다. 실력 있는 작가는 유능한 요리사가 그러하듯 시대란 텃밭 가운데서 제가 빚을 이야기의 재료를 선택해 가져온다. 스릴러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불편해하는 것, 탁자 아래 놓인 시한폭탄이 되어줄 소재를 세상 가운데서 구하고는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을 불편케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작가라면 수없이 생각해 봤을 테다. 적잖은 이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바, 몇 가지 사회문제가 영화의 재료로 다뤄져야 한다고 회자됐다. 때로는 인생역전을 바라는 장삼이사의 치열한 삶이, 부동산이며 주식, 코인까지 동원되는 투기열풍이, 소시민을 좌절케 하는 공직자며 권력층의 부조리가, 가장 흔한 삶의 형태인 아파트의 층간소음 같은 문제들이 모두 그 후보로 꼽혀온 게 사실이다. 일상을 비틀어 긴장의 소재로 삼는 스릴러 또한 게으르지 않아 그간 적잖은 작품이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내놓았다.

84제곱미터 스틸컷
84제곱미터스틸컷넷플릭스

한국사회 불편의 지점들

넷플릭스 개봉작 < 84제곱미터 >는 오늘날 한국사회 불편의 지점들을 한 데 뭉뚱그려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감독은 2023년 리메이크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 이어 또 한 번 넷플릭스 개봉작을 연출한 김태준이다. 사실상 장편 상업영화 두 번째 연출을 맡은 그가 직접 써 내려간 각본엔 이를 갈고 소재를 모았음이 짐작되는 한국사회 제 문제가 망라돼 있다.

부동산과 투기, 영끌족으로 대변되는 3040 세대의 인생역전 노력에 더하여,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거액에도 부실시공이며 층간소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아파트, 검찰과 경찰의 일탈 및 유대감이 사라진 이웃사회 등 그야말로 온갖 문제가 이 작품 한 편에 버무려져 있다.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월패드 해킹과 세력을 개입한 주가조작 문제까지 고스란히 활용되니 지극히 장르영화인 < 84제곱미터 >로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주인공은 30대 직장인 노우성(강하늘 분)이다. 서울의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일상이란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모든 게 단 한 번의 선택, 아파트 매입 때문이다. 서울에 번듯한 집, 그것도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84제곱미터 중간크기 아파트다. 8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취업한 지 고작 몇 년 된 대리 직급의 젊은이가 매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25년 기준, 30대 직장인 평균연봉은 4000만 원대 중반이다. 나가는 돈 없이 10년을 모으면 4억 원, 20년을 모아야 8억 원이 된다. 그러나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이랴.

84제곱미터 스틸컷
84제곱미터스틸컷넷플릭스

사다리 사라진 사회, 30대 젊음의 절망

노우성 같은 지방 출신 젊은이에겐 더욱 힘든 것이 목돈 마련이겠다. 주거비부터 시작해 식비며 교통비, 각종 공과금까지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니 월급 일부를 저축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탓이다. 20년은커녕, 정년 때까지 내달려도 8억 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마저도 일자리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틈만 나면 저를 갈구는 상사와 주변의 시선을 견뎌내며 일생을 우리 안의 햄스터처럼 쳇바퀴를 구르고 싶진 않은 것이다. 노우성이 뉴스에 등장하는 영끌족이 된 건 그래서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에 나서는 족속을 영끌족이라 부른다. 투자 중에서도 지난 십수 년 간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잔뜩 풀어주었던 아파트 매입에 나서는 영끌족이 주를 이루었다. 노우성 또한 그러해서 각종 대출이며 퇴직금까지 최대한도로 끌어 모아 평생 일해도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아파트 계약을 덜컥 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역 예정지란 소문이 파다하여 운만 좋으면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는 이 아파트는 대기자도 수두룩해 노우성은 떠밀리듯 아파트 계약서에 도장을 꽉 눌러 찍는다.

84제곱미터 스틸컷
84제곱미터스틸컷넷플릭스

부동산 영끌족, 코인투자... 적나라한 시대반영

불행은 그로부터다. 부동산 정책은 수시로 급변하고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출규제가 진행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장 상황을 고려한 변동금리는 노우성 같은 영끌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자를 요구한다. 월급 못잖은 액수를 원리금 상환에 들이붓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아파트는 대출액이 너무 많아 월세며 전세로도 나가지 못하고 실거주를 해야 한다니 필요도 없는 비싼 집을 깔고 앉은 신세다. 노우성이 종일 일하고도 배달까지 가욋일하고, 그러고도 에어컨 하나 시원하게 틀지 못하는 빈털터리 신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 어디 삶을 즐길 여력이 있을까.

< 84제곱미터 >는 영끌족으로 낙 없이 사는 노우성의 삶 가운데 층간소음이란 소재를 끼얹는다. 애써 마련한 집이 파혼으로 쓸모없는 무엇이 되고, 그 가운데 들려오는 층간소음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상황을 비추는 것이다. 층간소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피해를 호소하는 이도 가해자로 낙인찍히는 이도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이 층간소음이란 것이다. 오죽하면 일면식도 없는 이웃 간에 폭행, 심지어는 살인에 이르는 중범죄가 층간소음 때문에 벌어지곤 하겠는가.

층간소음은 한국의 오랜 문제다. 아파트 거주밀도가 세계 어느 나라 못잖게 많은 한국에서, 유달리 우리네 아파트는 중국과 한국 정도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대단지 아파트 형태로 발전해 자리 잡았다. 아파트가 보통 물건인가. 시멘트부터 철근 등 기초 자재도 우수해야 마땅한데, 어떻게 된 것이 이토록 큰돈이 든 집이 생활소음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을 들였는데, 서로 소리를 내는 문제로 드잡이질한다니.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나.

84제곱미터 포스터
84제곱미터포스터넷플릭스

작가적 수고가 돋보인다

영화는 빚을 갚는 데 허덕이다 층간소음까지 겹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노우성이 소리의 진앙지를 찾아 나서며 스릴러로써의 정체를 드러낸다. 1401호 거주자인 그가 위아래 층을 오가는 동안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위아래 층 입주자 모두 저마다 우리 사회에 흔한 군상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운데, 도대체 누가 이토록 심각한 소음을 일으키는 것인지 이목을 집중케 한다.

<84제곱미터>가 관객을 긴장케 하는 수법이란 건 남다를 게 없다. 한 발만 삐끗해도 나락일 밖에 없는 영끌족의 재정상황을 바탕으로, 그가 무리해 투기를 하는 상황을 주요하게 활용한다. 여기에 더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층간소음과 이웃간의 신뢰가 없는 상황을 또 하나의 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진실은 영화적 연출로는 차마 세련되다 할 수 없겠으나, 작품이 활용하는 설정을 보는 재미만큼은 분명하다 하겠다. 소위 넷플릭스 영화에 기대하는 것을 이 작품이 그럭저럭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패드 해킹, 부실시공, 층간소음, 영끌족, 갭투자, 코인투기, 작전세력, 관리비 빼돌리는 입주자 대표, 검찰의 부실수사 등 작품 가운데 드러난 사회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84제곱미터>의 가장 큰 매력은 부족한 연출적 자질을 성실한 사회반영으로 메꾸어 나가는 작가적 수고에 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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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