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4제곱미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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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타이틀인 '84제곱미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32평, 가장 이상적인 주거 공간으로 여겨지는 상징적 수치다. 하지만 우성이 손에 넣는 공간은 이상적인 삶이 시작되는 장소가 아니라 심리적 파국의 전조로 그려진다. 아주 작게 시작된 소음은 그의 밤을 조금씩 부식시켜 간다. 어느새 귀를 막고도 들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은 점차 그의 일상 전체를 잠식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우성이라는 개인의 고통은 단지 한 사람의 과민반응이 아니다. 그에게는 '대출'이라는 현실적인 채무가, '영끌'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집값'이라는 공포가 함께 내재한다. 여기 존재하는 '84제곱미터'의 공간은 그저 '방음에 취약한 아파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고립시키는지, 그 결과 어떤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압축적인 비유가 된다.
김태준 감독의 세계는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의심과 불안으로 '먼저' 무너진다. 그에게 있어 스릴러의 시작점이란, 충격적인 반전이나 과격한 폭력이 아닌,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을 외면할 때 느끼게 되는 낯섦에 가깝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간 후에야 애초에 자신이 믿었던 사실 따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그런 사실로부터 서스펜스가 획득된다. 이후 일어나는 여러 사건은 극을 구조화하고 장르적 쾌감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 영화 <84제곱미터>가 들여다보는 곳 또한 이 지점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지금,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공간'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누군가의 설계안에 갇혀 있는가?' 하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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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무슨 죄야, 사람이 문제지"
이 영화에서 이웃은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형태도 그려진다. 은화는 중재를 가장하며 권력과 부를 탐하고, 진호는 조력자의 모습을 하고자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성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 결과 우성은 집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안전하게 머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소음에 의해 괴로워하다 발원을 찾고자 하던 인물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인물로 전락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가 언제부터 그런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그런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주요 맥락 바깥에 존재하는 위성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성은 어떤 인물이었나?
영화 < 84제곱미터 >는 한 남자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표상을 그려낸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쪽을 따르더라도 이 공간의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는 그렇게 점진적으로, 중심인물인 우성을 삶의 가장자리로 몰아낸다. 그로 인한 두려움이 뚜렷한 액션도, 시각적 스릴도 없는 이 영화의 공포를 일으킨다. 우성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관객 또한 불안을 함께 느끼게 되고, 우리가 현실에서 머무는 공간은 그 감정을 더 사실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영화 <84제곱미터> 스틸컷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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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유일한 아쉬움이 하나 있다. 분명히 그런 응축된 에너지와 가능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과욕을 저지른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우성의 등 뒤로 멀어지는 문, 끊임없이 울리는 초인종, 천장에서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소리만으로 완성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내게는 이 지점이 영화가 처음부터 견지해 왔던 핵심 가치를 무너뜨리고 훨씬 단순한 종류의 이야기로 격하하는 부분처럼 여겨진다. '공간'이 의미하는 바 역시 극의 마지막까지 힘 있게 이어내지 못한 원인이 된다. 최근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강하늘과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조금 더 믿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영화는 끝내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소음은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진호는 가해자와 피해자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가. 은화와 우성, 그리고 아파트 단지 사람들 모두는 또 어떻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느 쪽도 명확히 선택하지 않은 채로 그저 현실보다 조금 더 현실 같은 무대를 만들고 그 안에 감춰진 우리의 그림자를 비춘다. 영화 < 84제곱미터 >는 소리를 통해 심리를 흔들고, 공간을 통해 사회를 폭로한다.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영화가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과연 '내 편'인지, 아니면 조용히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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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