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을 이끌려는 이들이 대중과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예술, 특히 영화를 활용하는 건 더는 드문 일이 아니다. 영화로 표상되는 영상콘텐츠가 소위 프로파간다, 선전과 선동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역사가 족히 한 세기가 된 시점이 아닌가. 영화는 그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권위적이며 수직적인 매체다. 무엇보다 극장이란 공간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창작자가 연출한 이야기를 러닝타임 내내 일방적으로 보고 듣도록 하는 매체가 이 시대엔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만큼 그 효과 또한 클 것을 굳이 부연한 필요는 없을 테다.
영화를 통해 관객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다. 동물권 옹호 비영리 창작단체 서지(Surge)가 일군의 창작자들을 발굴해 작품 제작에 전념하는 것도 그래서다. 오늘날 인류 문명이 동물, 특히 소와 돼지, 닭 등으로 대표되는 가축에 대하여 지극히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 동물권 단체의 입장이다. 영국 애니메이터 애쉬 리드가 서지와 손을 잡고 다루기로 한 문제 또한 이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매력, 특히 실사가 아닌 그림이라는 매체 본연의 표현양식이 그 자체로 미학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겠다. 아름다운 것은 비극성을, 또 부조리를 부각하는 법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문제의 비극성을 부각하고 취할 것만을 취사선택하기에 애니란 매체는 효과적 선택일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추함과 아름다움이 아무렇게나 뒤섞인 가축의 이야기임에야.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삼겹살은 좋아해도 돼지는 모르는 우리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은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소개한 단편 애니다. 애쉬 리드가 서지와 함께 한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 <우유>에 이어 이번에도 가축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유>가 2023년 그러했듯, 올해 웨비상 애니메이션부문 피플스보이스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아시아 프리미어, 즉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을 아시아 전역에서 최초로 공개한 장이 됐다. 동물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이 영화제의 지향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야기는 이렇다. 마틸다는 돼지 이름이다. 영국 양돈농가에서 나고 자란 암컷 성체 돼지에게 이름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어찌됐든 이 녀석에겐 마틸다란 이름이 붙었다. 마틸다가 탈주에 이른 건 어째서일까. 모르긴 몰라도 뱃속에 든 새끼들 때문이었을 터다. 그렇다. 마틸다의 뱃속에선 새로운 생명, 그러니까 새끼돼지들이 여러마리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기실 양돈농가에 길러지는 돼지의 통상적 운명, 그 생애주기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인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인만큼 돼지를 아끼는, 물론 그 고기를 씹고 뜯는 것이겠으나 무튼 애정하는 이들이 정작 그 길러지는 모습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단 사실이 놀랍다. 주지하다시피 돼지는 생명이다. 어미의 배에서 태어난다는 뜻이겠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그러니까 자연상태에서의 생존가능성이 아니고 오로지 더 맛나는 살코기를 더 많이 내놓을 수 있는 형질을 가진 씨돼지에 의해 수태한 암컷돼지가 4개월이 좀 안 되는 임신기간을 거쳐 새끼를 낳기에 이른다. 한 번에 열 마리가 훌쩍 넘는 새끼를 낳는 경우가 허다하니만큼 가축으로서의 효율이 무척 좋다고 하겠다.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발정 빨리 못하면 도축되는 어미돼지의 삶
여기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모돈은 쓸모가 없어지기 전까진 모돈이라는 점이겠다. 양돈농가의 다른 돼지가 오로지 고기로 출하되기 위해 길러지는 것과 달리, 모돈은 새끼를 낳기 위해 길러진다. 모돈, 즉 어미돼지는 임신하고 새끼를 낳고 다시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고 또 임신하고 새끼를 낳기를 반복한다. 마치 우유를 얻기 위해 길러지는 젖소가 오로지 젖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임신해야 하는 것처럼, 고기를 생산할 돼지새끼를 생산하는 어미돼지는 끊임없이 새끼를 낳고 또 낳아야 한다.
돼지는 통상 발정기에만 접을 붙일 수 있으므로, 발정의 주기도 짧아야 효율이 좋다. 빨리 새끼를 낳도록 하기 위해 젖을 최대한 빨리 떼어 어미와 새끼를 분리하고 다시 발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양돈농가의 주요한 영업 노하우 중 하나다. 만일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하거나 발정주기가 길어지거나 하면 바로 축출, 싸구려 고기가 된다.
자 마틸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마틸다의 뱃속엔 새끼돼지들이 줄줄이 들었다. 마틸다는 젊고 힘 좋은 어미돼지니 만큼 처우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 사료도 충분하고 건강관리도 잘 되고 있다. 덕분인지 힘과 체력도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끼들은 어떠할까.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돼지와 떨어져 빠르게 살을 찌우기 위한 방식으로 길러진 뒤 도살돼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이며 족발 따위로 다시 태어날 것이 분명하다. 마틸다가 그를 두고볼 수는 없다.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새끼를 밴 채 양돈농장 울타리 뛰어넘은 돼지
자고로 마틸다는 여전사의 이름이라 했다. 힘을 뜻하는 옛 독일어 마트(maht)에다 전투를 의미하는 힐트(hild)를 붙여 마틸다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괜히 특급 킬러 레옹의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무튼 마틸다는 수많은 생명을 기계처럼 대하고 착취하는 인간들의 손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한다. 농가의 울타리를 넘어 새끼들에게 자유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다. 저기 훨훨 나는 어여쁜 나비처럼,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은 것이다.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는 차갑고 어두운 양돈농가와 울타리바깥 총천연색 숲을 대비해 마틸다의 모험을 극적이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표현한다. 마틸다는 어느 날 밤 울타리를 넘어 숲으로 도주한다. 그곳에서 기적 같은 출산을 행한다. 태어난 새끼돼지들이 마음 편히 드러누운 마틸다의 젖을 빠는 광경이 평화롭고 찬란하다.
물론 영화에 위기가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틸다가 얼마짜리인가. 뱃속에 새끼가 줄줄이 든 어미돼지다. 한국으로 치자면 못해도 일꾼 보름치 임금은 될 테다. 양돈농가 사내들이 흔적을 쫓아 숲을 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뱃속에 새끼들을 품고 울타리를 넘은 것만도 장한 일이다. 제법 달려오긴 했으나 일생을 우리 안에 갇혀 지낸 살찐 돼지의 몸으로 그리 멀리 도주할 수는 없었다. 마틸다는 퍼질러져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가 사내들에게 발각되고 만다.
영화는 그러나 해피엔딩이다. 마틸다는 사내들에게 끌려가 다시 양돈농가의 흔한 생애주기의 순환전철에 올라탈 듯 보이지만, 그 용기 덕분에 특별히 탈주를 허락받는다. 물론 농장주가 특별히 선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서는 아니다. 오지랖 넓은 어떤 이가 숲을 거닐다가 웬 커다란 돼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광경을 목격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덕분이다. 그럴 밖에 없는 것이, 멧돼지라도 놀랄 노짜인데 그냥 꿀돼지가 아닌가. 심지어 고생고생 다해 흙빛에 더럽혀진 어미돼지와 달리 새끼들은 핑크빛이 감도는 외모상의 절정기다. 숲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을 보았다는 감격에 목격자가 올린 영상이 말 그대로 떡상한 건 그저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포스터서울국제환경영화제
꾸며낸 게 아닙니다, 실화입니다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가 가장 멋진 순간은 그로부터 세간의 화제가 되고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된 마틸다의 평화로운 한 때가 현실로 화하는 순간일 테다. 말 그대로 애니에서 실사로, 살아 움직이는 마틸다와 새끼들의 영상으로 영화의 마지막이 장식된다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관객은 제가 본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것을, 물론 상당히 미화되고 극화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틸다에게 마틸다란 이름이 붙은 사연 또한 알게 된다.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이 작품을 보고서 평소처럼 삼겹살집에 가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린다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두고 서지와 애쉬 리드는 비건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라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이는 작품이 잘 빠졌다는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실화 그 자체가 지닌 힘을 믿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틸다의 이야기로부터 육식을 줄였다거나 비건으로 전환했다는 사례 또한 이어졌다고 전한다.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인류 문명이, 특별히 한국 양돈농가가 지극히 비윤리적인 고기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밖에 없다. 그것이 봉준호와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 <옥자>와 같은 작품을 찍어 대중 앞에 선보인 까닭이며,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가 한국사회에서 유효함을 발할 수 있는 이유이다. 오늘의 상황 속에서 고기 소비를 줄이는 건 그 자체로 윤리적인 일이다. 비건이 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오로지 먹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조리함을 모른 척 하기엔 오늘날 인류가 가축에게 저지르고 있는 죄악이 너무나 크고 깊다. 아주 작더라도 변화를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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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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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돼지 지키기 위한 어미 돼지의 용감한 탈출, 실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