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논하는 인터넷 밈(Internet meme)화 된 허무개그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두고 전공별로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유전공학도는 냉장고에 수용할 수 있는 코끼리를 만들면 된다고 하고, 수학도는 코끼리를 미분해 넣은 뒤 적분하면 될 일이라고 한다. 경영학도는 동물원의 이름을 냉장고라 바꾸고 홍보하면 된다 하고, 고생물학도는 빙하기에 이미 넣었었다고 한다. 현실은 기계공학도가 승리한 듯 보이는데, 코끼리보다 큰 냉장고를 이미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누구나 수긍할 밖에 없는 노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 냉장고 넣기 넌센스 개그가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과 직업, 사상에 따라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확장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이유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고 싶다. 코끼리마저 냉장고 안에 넣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그 충격적이기까지 한 기괴함 말이다.
기실 냉장고는 인간의 욕망이며 욕구를 상징하는 기기가 아닌가. 무엇을 먹느냐는 생명체를 분류하고 정의하는 주요한 특징이다. 육류만 먹는 동물을 육식동물이라 하고 풀만 뜯는 종을 초식동물, 이것저것 다 먹는 것을 잡식동물이라 한다. 인간은 잡식동물의 대표주자인데, 따로 독이 있는 것들만 제하고, 심지어는 복어나 고사리 같은 생명이 가진 독을 해독해가며 끝도 없이 다른 것들을 먹어치워 온 것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코끼리까지 냉장고에 처넣는 인간
그저 먹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생명을 잃은 것이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섭리조차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냉장고, 심지어는 냉동고를 개발해 먹거리의 보관 시간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인간이 먹어치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의 존재로 인하여, 인간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생명을 죽인 뒤 냉장고 안에 넣어두기에 이른 것이다. 당장 오늘내일을 넘어 수달, 수년에 걸쳐 써도 다 쓰지 못할 물건을 쟁여두는 인간의 행태가 냉장고만큼 단적으로 표상되는 물건은 없을 테다.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은 이색적 작품이다. 임종민 감독의 1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앞서 언급한 냉장고 코끼리 난센스를 차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영화는 뜬금없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논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란 다음과 같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 없는 '금도끼 은도끼' 동화를 차용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고 올라온 산신령에게 제 도끼가 아님을 솔직히 밝혀 기분을 좋게 만든 뒤 소원으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청한다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고민하던 영화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 뒤에야 진짜 이야기를 꺼낸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고향에 벌어진 일
영화의 주인공은 한 사내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골 마을에 비료공장이 들어섰다고 했다. 비료공장이 가동되며 악취가 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과수원을 운영하던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던 소년의 삶에도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가 병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땅을 팔고 동네를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집은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과수원을 운영했고, 어머니도 그를 도왔다. 결국 어머니를 잃은 건 아버지의 선택 때문인 것이다. 땅을 팔았다면, 과수원을 정리했다면, 이사를 떠났다면, 어머니가 병을 얻고 죽는 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이다.
소년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저 원망만 할 수가 없어 곁을 떠나 도시로 간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집을, 과수원을 지킨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과수원이 아니라 비료공장 앞으로 출근했다고 했다. 비료공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가는 돌아왔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목숨을 잃는 문제에 대하여, 그에 대한 진상조사를 부르짖었다는 이야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심사위원단이 특별언급 남긴 이유
비료공장의 주인은 부자였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하고 비료공장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을 때, 그는 책임을 부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것처럼, 그 또한 아프게 되었고 마침내 목숨을 잃었다. 비료공장은 돈을 많이 벌었으나 그로부터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쪽저쪽을 가리지 않았다.
임종민 감독의 필모그래피 개시 테이프를 뜯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은 시골에 들어선 비료공장이 박살낸 것을 비춘다. 행복했던 소년의 가정이, 그 어머니의 건강이, 아버지의 삶이, 죽고 고통 받는 이웃들과 터전을 잃고 고향을 뜬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가, 심지어는 공장 소유주의 생명마저도 하나하나 박살나고 만다.
이 비극적 이야기 앞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제목이 그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만이 아니라 '가장 슬픈'이라는 가치를 판단하는 단어까지 포함한 까닭은 또 무얼까.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출품작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은 심사위원 특별언급작으로 기록됐다. 대상은 <종이 울리는 순간>, 우수상과 관객심사단상은 <꽃풀소>에 돌아갔으나 특별히 두 작품 <콘크리트 녹색섬>과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 만큼은 그 가치를 따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통상 세계 유수 영화제가 수상에 실패했으나 의미 깊은 작품에 대하여 따로 언급하는 관행에 따른 것으로, 상을 두고 끝까지 경쟁한 인상적인 영화였단 뜻이겠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포스터서울국제환경영화제
그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수고로운 애니메이션일뿐더러, 오늘에 이르러 그 의미를 상실해가는 코끼리 냉장고 넌센스로부터 관객의 사유를 확장케 하는 시도가 높은 평가를 받은 듯 보인다. 무엇보다 시골마을에 들어선 공장과 파괴되는 삶이라는 배경 설정이 한국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져온 일이라는 점에서 그 현실성이며 시의성 또한 없지 않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환경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장점마을 주민들이 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집단적으로 암이 발병한 사실과 관련해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처음으로 인정한 바 있다. 비료공장이 연초박이라 불리는 담뱃잎찌꺼기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이 배출됐다고 확인했다. 비슷한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타이어공장과 시멘트공장이 들어선 지역에서도 1급 발암물질 등 유해한 물질이 공기 중으로, 또 하천으로 유출되는 것과 관련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 조사는 충실히 이뤄지지 않고 병은 어디까지나 주민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온 세월이 길었다. 끝까지 투쟁할 의지를 갖지 못한 주민들이 하나하나 고향을 등지고, 심지어 젊은 층이 빠져나간 자리는 그렇게 공장과 자본의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터다.
말하자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슬픈 방법>은 코끼리마저 냉장고에 넣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과 욕구가 세상을 얼마나 슬프고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를 우화적이면서도 동시에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이 작품을 그저 지나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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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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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공장 때문에 병들어 죽은 엄마, 아빠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