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3.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언젠가 유중혁이 말했었죠? 작가님, 그게 이 소설의 주제인가요?"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독자'가 어떤 방식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어가는가를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전지적' 인물이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유일한 생존자이며, 수차례 반복해서 읽은 탓에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식이 그를 전능한 존재로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 지식은 그로 하여금 '선택된 자'가 아니라 '내일을 알고 있으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로 만든다. 그 자체로 아이러니가 되는 설정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토대로 행동하지만, 영화는 곧 그 사실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내밀어 굳이 확인시켜 준다. 독자의 개입으로 인해 원작의 내용과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이 발생한다는 점과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중혁(이민호 분)이 죽게 될 경우 나머지 등장인물도 모두 사망하게 된다는 제약을 통해서다. 한편, 유중혁은 회귀자로서 수차례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며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극의 구조는 단순한 협업이나 경쟁이 아닌, 서사적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을 이끌어낸다.
모든 것을 아는 인물과 모든 것을 경험한 인물. 영화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지식'과 '경험'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생존에 필요한 무기인지에 대해서도 바라보고자 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독자 역시 선택하고, 결정하며, 실패를 경험하는 인물이 되고, 모든 상황을 경험한 중혁 또한 확신했던 결정에 다시 의문을 갖게 되고, 실패라고 생각했던 상황 속에서 성공을 지켜보게 되는 인물이 되면서다.
이 과정은 두 존재가 놓인 자리, '중심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냄과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한 인물의 시점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시공간 속에서 세계의 존망을 지켜보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지점에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보여주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존재라도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 함께 살아내는 것이 곧 이 세상의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04.
기본적으로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실사화하기에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중, 후반부를 지나며 성좌와 설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더 그렇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약 300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각각의 인물이 가진 능력, 몬스터들과의 교전, 아이템 및 코인을 획득하는 과정, 심지어 스타스트림을 운영하며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도깨비들의 존재까지. 상당한 부분이 CG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시각각 주어지는 강렬한 액션은 익숙한 듯하지만 색다른 게임형 내러티브를 따르며 장르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평범한 스테이지 클리어 방식만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과 집단이 형성하는 서사에 보다 힘을 주고자 한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사람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주어지는 시나리오의 형태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부터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고, 괴롭히고, 또 죽인다. 김독자는 이미 그 사실을 소설 속 묘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과 그로 인한 비극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감당해 내야 한다. 영화는 이 지점의 영화적 텍스트를 단순한 액션에서 윤리적 질문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김독자의 학창 시절을 조명한다. 현실과 판타지의 재조립,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현실과의 공명'이다.
"내가 아는 소설 중에 주인공만 살아남는 소설이 있거든? 근데 그 주인공 진짜 별로였어."
10년 동안 지켜봐 왔던 소설의 결말에 실망한 나머지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일, 학창 시절의 강요된 선택 앞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후회, 그리고 모두 함께 나아가기 위해 지금 했던 결정은 그렇게 모두 하나의 분기점에서 마주하게 된다. 살아남지 못할지언정 '괴물이 되지는 않기 위한' 선택이다. 물론 이 자리에는 각각의 위치에서 서사의 조연이 아닌 주체적인 감정을 가진 생존자로서 기능하는 또 다른 인물들, 유상아와 이현성(신승호 분), 정희원(나나 분), 이길영(권은성 분) 등이 모두 함께 서 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05.
이미 성공한 작품의 IP를 다른 채널로 옮겨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원작과의 비교는 물론,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구현된 이미지나 이미 관객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장면과의 거리 또한 효과적으로 좁혀야만 하는 숙제를 떠안아야만 해서다. 더구나 장대한 서사를 가진 IP를 원작으로 하는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도전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벌써부터 이 작품에 쏟아지고 있는 많은 관심과 우려 또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개봉 이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김병우 감독 또한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원작의 내용을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썼다"라고 밝혔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주인공의 활약상을 담고자 하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는 존재'라는 독특한 설정이 어떻게 무력해지고, 다시 또 어떤 방식을 통해 그 의미를 회복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그런 경험조차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7월 23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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