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8시간 넘게 기다리고도 긴 시간 아니었다" 밝힌 그녀의 속내

[김성호의 씨네만세 1098]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시설 밖, 나로 살기>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뒤통수가 번쩍! 정신이 바짝! 말 그대로 불똥이 튀는 기분이었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박초현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하던 때였다. 예정된 질의와 응답이 끝나고, 초현은 조금 더 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미처 읽지 못한, 그러나 반드시 읽고 싶었던 글을 그녀는 또박또박 읽어 나간다.

그중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초현은 "국회에 2시에 도착해 8시간 넘게 기다렸다"며 "그러나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을 불러 놓고 무작정 기다리게 해도 괜찮아서는 아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이 의사가 없다고 무시당한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인 초현에게 덮어놓고 무시하는 시각은 그야말로 일상적이고 전면적인 것이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건 이 장면에서다. '발달장애인에겐 의사가 없다', '제 삶을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니 비장애인 전문가와 보호자가 그들을 챙기고 대신 결정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대로 내 생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설 밖, 나로 살기>를 보고 있는 그 순간까지도 의심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에게 제 삶을 결정할 능력이며 의사가 없다고 여겼다.

실은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단 게 맞을 테다.

시설 밖, 나로 살기 스틸컷
시설 밖, 나로 살기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우리가 보지 않아서, 그녀가 나왔다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서 소개된 추병진 감독의 37분짜리 영화는 도망치듯 시설을 나와 이제 막 자립한 초현의 모습을 비춘다. 초현은 시설에서 20년을 살고 나온 발달장애인이다. 자립을 돕기 위한 체험홈에서만도 6년을 보냈다. 시설을 거쳐 자립에 이른 초현의 사례는 그 자체로 시설과 장애인 정책의 모범사례가 될 법도 한데, 정작 그녀는 탈시설을 외치는 활동가가 되었다.

초현은 거리와 국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저를 20년이나 시설에서 살도록 한 사회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아직 시설에 남겨진 이들에겐 혼자 나와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해 전문적으로 관리한다는 한국 사회의 장애 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 아닌가.

<시설 밖, 나로 살기>는 깊은 취재가 들어간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초현이란 개인의 삶을 담아낸 브이로그적 기록에 가깝다. 서툴지만 즐거운 홀로서기부터 탈시설 활동가로서의 활동,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선 모습이며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과의 한때를 나란히 이어 붙였다.

시설 밖, 나로 살기 스틸컷
시설 밖, 나로 살기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모두의 이야기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시설 밖, 나로 살기>라는 제목은 '시설 안'에서는 불가능했던 '나로 살기'가 '시설 밖'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졌음을 증명한다. 영화는 하나의 사례를 진정성 있게 담아 모두의 이야기로 바꾸어내고자 한다. 시설 안 장애인의 이야기만이 아닌, 시설 밖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써 말이다.

우리는 어째서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어 우리로부터 격리하길 택했나. 그들의 존재를 외면한 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로 전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조리 위에 터 잡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 고민을 관객이 하도록 한다. 그렇게 영화는 장애만이 아닌 한국 사회 일반의 이야기가 된다.

시설이 아니라 동네, 장애가 아닌 인간을 지향하는 이 다큐는 그렇게 관객과 마주 닿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뒤통수가 얼얼한 게 오로지 나 뿐은 아니기를 바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시설 밖, 나로 살기>는 제3회 반다페 상영작인 동시에, 제23회 서울장애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까지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그 스스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활동을 이어온 추병진 감독이 영상물을 넘어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첫발을 떼는 작업을 진행한 결과로써 대우받았다.

유튜브와 SNS, 웹사이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활동가의 영상물과 예술과 기록으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현장에서 활약하는 활동가들이 다큐의 경계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제3회 반다페가 노동과 장애문제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초청해 포럼까지 가진 것도 그를 대하는 다큐계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일일 테다.

시설 밖, 나로 살기 스틸컷
시설 밖, 나로 살기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활동가 영상기록과 다큐멘터리의 접점

포럼 패널로 참석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이자 <만나다, 배우다, 얻다>를 연출한 황나라 감독도 이번 반다페에서 마주한 활동가들의 다큐를 인상적으로 언급했다. 황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 <시설 밖, 나로 살기>, <주고 받은 노력>, <병풍을 찢고서> 같은 작품을 보면, 감독분들이 다 장애인 현장에서 종종 이름을 듣고 얼굴을 뵙던 활동가분들"이라며 "2021년 출근길지하철 행동으로 장애인 존재 투쟁의 시작을 알리기 전까지는 장애인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인물로 여겨졌다. 요즘 몇 년간 피부로 느낄 만큼 장애문제를 조명하는 작품이 늘어난 건 아무래도 뉴스에 많이 보도되고 사회적 이슈가 된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닐 테다. 유튜브와 틱톡 등 영상콘텐츠를 개인이 제작해 유통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구축됐고, 일선 단체들이 이를 통해 대중과 접점을 확보해야 할 긴박한 필요 또한 생겨난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활동가 영역에서 넘어온 개별 작품이 기존 다큐가 가진 완성도에 근접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목되지만, 각 문제가 다루는 현장성과 메시지의 무게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시설 밖, 나로 살기> 또한 그러해서 작품이 다루는 탈시설 문제는 이 시대 장애인 인권 문제의 가장 주요한 주제로써 다뤄질 차례가 되어 있다.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

또 한 가지 이 영화와 관련해 언급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나는 해당 섹션 GV를 진행하며 글 서두에 언급한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박초현이 증언하던 장면을 떼어 언급한 바 있다. 추병진 감독은 이 장면을 국정감사장 내부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받아 영화에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평소 박초현과 함께하던 활동가들이 단체 건물에 달린 TV로 함께 국정감사를 시청하는 장면으로 연출한다. 박초현이 본격적으로 발언하기 앞서 TV 앞에 앉은 어느 여성활동가가 하품하는 장면이라거나 서로 잡담하는 장면들도 그대로 들어간다. 영화를 보는 이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는 장면이 긴 호흡으로 이어져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 또한 상당하다.

그러나 이 장면이 곧 이 영화 <시설 밖, 나로 살기>란 작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추병진의 카메라는 TV 속 사각 프레임 안에 담긴 박초현만을, 그녀의 말만을 잡아내지 않는다. 그 프레임 바깥에서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심지어 하품하고 잡담하고 간식을 먹는 모습들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건 애정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선택이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런 마음이다. 장애인 탈 시설 문제를 비롯한 자활과 인권 문제를 두고 함께 고생하는 동지들을 포착하는 애정 어린 시선, 그와 같은 시선들이 모여 한 편의 다큐를 빚어낸 활동가의 영상이 이 영화 <시설 밖, 나로 살기>의 정체성이 된다. 영화의 프레임 안, 다시 벽걸이 TV의 프레임 바깥의 공간을 그대로 비추기로 선택한 사실이 이 영화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시대 활동가들의 다큐가 의미를 갖는 주요한 지점이 있다면, 이와 같이 현장에서 얻어진 애정과 마음일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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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