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컷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3.
이 영화에서 '교복'은 청춘 영화에서 볼 법한 단순한 매개 이상의 용도로 활용된다.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나 환기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사회적 상징이나 개인적 욕망, 우정과 갈등 사이의 미묘한 흔들림을 투영해 내는 상징에 가깝다. 주간반과 야간반이 교실이라는 한 공간을 나누어 쓰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근본적 문제가 교복으로부터 드러난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세대의 불안과 희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초반부에서 아이가 민의 주간반 교복을 입고 몰래 학교를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 깊다. 이 지점에는 수업을 받지 않고 학교를 떠난다는 일탈의 의미보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사회적 지위를 잠시나마 진심으로 도약해 보려는 인물의 심리에 더 가깝다. 수업을 땡땡이치기 위한 민의 부탁으로 그를 대신해 주간반 학생이 대신 되어주는 장면이 함께 그려지는 이유다. 이 장면에서 아이의 표정은 누군가를 대신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진짜 '짝퉁'이 아닌 학생이 된 것만 같다.
04.
"비밀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요?"
두 사람 사이에 외부인인 루커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동안은 단순히 내적 욕망에 가까웠던 아이의 심리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외적 욕망으로 전환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잘생긴 데다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큰 데다 집도 부자인 루커와 주간반이면서 얼굴도 예쁘고 놀기도 잘하는 민. 두 사람 옆에 있으면 모든 게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둘째치고 이들 사이에 머물기라도 하려면 자신에게도 무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처음에는 사소했던 거짓말이, 다시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한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만다. 민은 알지 못하게 루커를 속이기 위한 주간반 아이다.
물론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루커 엄마의 전시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물론, 수준에도 맞지 않는 영재반 수학 학원에 다닌 일. 심지어 주간반인 민은 수업을 다 듣고 난 후에 자신만 수업을 빼먹으면서 함께 놀러 다니기까지. 이제 자신이 벌인 모든 잘못을 떠넘길 대상이 필요한데, 이는 만만한 존재 자신에게 근원적인 미안함이 있어야 할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녀의 이런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은 영화의 처음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명문 고등학교에 딸을 입학시키려 했던 엄마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컷㈜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5.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지가 삼촌의 보증을 잘못 서서 빚을 떠안게 된 아이의 집. 이를 벗어나기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 엄마. 어떻게든 두 딸을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은 계급과 계층의 문제가 단순히 교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그런 엄마의 모습 일부를 몇 번의 신을 통해 희화화 하지만, 이는 영화의 톤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무서운 사실 하나는, 교복만 바꿔 입으면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낙인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지워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학교와 가정에서 우정과 사랑, 그리고 믿음과 같은 가치들에 금이 가고 있을 때, 지진이 찾아오며 모든 계급과 신분의 경계가 무너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지진의 피해에서 벗어난 생존자이자 동료로 마주하며, 자신의 감정에 비로소 솔직해진다. 교복은 더 이상 이들의 계층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며, 현실을 정확히 마주한 이들에게 이제 남는 것은 내일을 향해 정확히 걸어가는 일이 된다. 사회가 경험한 재난, 한 개인이 마주한 실수와 고난의 층위는 그렇게 겹쳐진다.
06.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단순히 한 시대의 아름답고 애틋한 청춘만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외부의 지진만큼이나 더 거센 내부의 진동을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청춘,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교복을 바꿔 입는 작은 일탈에서부터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 우정과 사랑 모두를 쟁취하기 위해 거짓말로 자신을 꾸며야 했던 어긋난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가정과 사건은 지진이라는 결정적 사건을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결말을 맞이한다.
감독은 그 재건의 순간을 길게 끌지 않는다. 화해와 희망을 소란스럽지 않게, 그저 조용히 내려앉을 수 있게 연출한다. 덕분에 이 영화는 단순한 청춘 성장물이나 재난 서사가 아닌,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 마음을 담은 서늘하고도 따뜻한 기록이 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곁의 누군가가 흔들리고 있을 때, 삶의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우리가 서로를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교복의 색과는 조금도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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