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03.
실제로 감독이 그리고 있는 영화 <슈퍼맨>의 배경은 폐허와 절망으로 가득 찬 미래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 모습에 너무나 가깝다. 윤리의 정의와 방향이 소실된 시대다. 영화가 문제시하려는 것 또한 능력의 부족이나 각성되지 않은 잠재력에 있지 않다. 슈퍼맨은 이미 완전체에 가깝고, 자신을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서비스 로봇과 고독의 요새도 갖고 있다. 여러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내고 국가 간의 전쟁 위협도 막아내는 등 충분한 전공도 세웠다. 하지만 대중은 그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그가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너무 완전한 존재'여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개입에는 인류의 자율성과 주권을 해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극 중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 분)가 모종의 계략을 꾸밀 수 있는 배경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3주 전, 자한푸르를 침공하려는 보라비아 군대에 맞서 전쟁을 막았던 슈퍼맨의 상황을 이용해 그를 위험에 빠뜨리고자 한다. 여기에는 보라비아와 결탁한 사익과 슈퍼맨이라는 존재에 대한 강한 시기심, 그리고 대중이 안고 있던 미세한 불안이 불씨가 된다. 고독의 요새를 습격한 뒤, 슈퍼맨의 부모가 보낸 영상 메시지 뒷부분을 확보한 루터는 이를 악용하여 여론전을 펼친다. 그가 그동안 인류를 도왔던 것은 훗날 쉽게 지배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해 온 것이라고 비난하면서다. [크립톤 최후의 아들로서 지구를 다스리라던 조 엘(브래들리 쿠퍼 분)의 메시지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지만 맥락 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04.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네가 그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단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힘의 불균형이다. 초월자의 존재가 되려 혼란을 일으키는 구조를 통해 '정의'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강한 자가 반드시 선한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있겠다. 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은 크립톤 출신의 이방인이지만 어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윤리를 따르려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이유로, 어느 쪽에 서서 구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스스로 던진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제임스 건 감독은 단편적인 영웅 서사 대신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도 몰랐던 치부로 인해 등을 돌리는 언론과 대중으로 인해 영웅의 권위가 무너지게 되고, 이후 루터의 메타 휴먼이 등장하며 정의의 개념이 오염되고 변질되기 시작한다. 거짓 정보와 영웅의 몰락으로 더 커다란 위협이 찾아오게 되고, 조력자의 도움으로 인해 음모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는 영웅은 더 이상 힘이 아니라 이해와 신뢰 속에서 모두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그려지는 식이다. 각각의 과정에 영화의 어떤 내용이 상응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다시, 이 모든 과정은 영웅으로 하여금 '생명을 지키는 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의 방식'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실소가 나왔던 행동 하나가 있었다. 슈퍼맨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도무지 대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으로 인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다. 적과 싸우는 동안에도 자신의 모든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쓰러지는 상대의 등을 떠받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류를 구원해 낼 수는 없다. 과거의 그는 혼자였고, 영화의 가장 처음에 나왔듯이 그렇게 패배하는 순간에도 도심은 공격받았을 테니까. 영화가 시도하고 있는 '신화적 인물의 인격화'는 이 한계 속에도 분명히 내재되어 있다.
▲영화 <슈퍼맨> 스틸컷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05.
이야기 위에서는 그를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조력자 역할을 하는 팀 저스티스 갱의 미스터 테리픽(에디 가테지 분), 그린 랜턴(네이선 필리언 분), 호크걸(이사벨라 메르세드 분), 그리고 메타몰포(앤서니 캐리건 분)의 역할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봐야 하는 인물은 클라크 켄트의 연인인 로이스 레인(레이첼 브로스나한 분)이다. 이번 작품에서 영웅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더 이상 피앙세로 소비되는 인물로 남겨지지 않는다. 애초에 연인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동시에 그의 힘을 맹신하지 않고 도리어 더 날카롭게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 낸다. 여기에는 언론의 윤리와 진실의 무게를 상징하는 직업, 기자의 자리가 큰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이 인터뷰를 빌미로 설전을 벌이는 초반부의 장면은 관계성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다. 슈퍼맨이라는 존재가 인류를 구원하고자 벌이는 일이 때로는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복선과도 같아서다. 이 장면에서 레인은 개별적인 존재가 미국의 대표성이 띠고 국제 관계에 개입하는 일(자한푸르를 공격하는 보라비아를 막아선 일)이 국제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슈퍼맨이 사악한 의도를 갖고 지구에 왔다고 주장하는 무리 역시 여전히 많다는 것을 언급한다.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주던 과거 다른 시리즈의 히로인과는 다른 태도다. 이는 대등한 관계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다시, 슈퍼맨의 자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레인은 신을 사랑하면서도 통제해야 하는 인물이다.
06.
"몇 번이고 우릴 구해줬으니, 이제 우리 차례죠."
다시 한번 슈퍼맨은 승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슈퍼맨이라는 영웅이 절대자가 아니라 함께 고뇌하고 무너지는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렉스의 선동 앞에서 분노를 억누르고 건물 안으로 피신하던 그의 모습과 그런 슈퍼맨을 위해 초록색 파워 링으로 암막을 쳐주던 그린 랜턴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오히려 더 짙게 남는다.
완전한 승리는 없다. 어디든 상흔은 남겨지기 마련이고, 지나온 길에서 생긴 상처는 다시 이겨내야 할 뿐. 다만 그 과정을 통해 누군가 다시 믿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를 찾게 된 것만으로도 내일로 향하는 걸음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제임스 건 감독이 그려내는 <슈퍼맨>은 결코 기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연대와 책임, 그리고 윤리와 감정까지. 두려움 앞에서도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하나의 인간 형상, 그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안온한 영웅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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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