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리코르디아> 스틸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정직하게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공개하는 이 영화에서 관객은 무엇을 즐기고, 어떤 걸 얻어갈 수 있을까? 세상만사를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파격적인 삑사리 반전을 구사하며 감독은 무심코 저지른 행위의 무거움과 '자비'의 한계에 대해 관객에게 반문한다. 이미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다. 엄벌주의 원칙을 따르자면 범인은 체포되어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신부의 말처럼 그런다고 뭐가 보상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과거의 원한 같은 게 딱히 언급되지 않는 영화의 기조는, 충격적인 사건이 감정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임을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범행의 대가는 어떤 식으로 속죄해야 할까? 이야기는 정답을 제시해 관객에게 판결문을 통지하는 대신, 관객 각자에게 판결봉의 묵직함을 체감하게 만든다.
독립예술영화 관객은 흔히 작가주의 감독에 대해 과도한 형식화와 스타일 위주로 접근하곤 한다. 즉 알랭 기로디의 신작을 보는 순간, 감독의 기존 스타일과 비교 분석하고, 장면의 의도와 형식 실험을 조사하는 식이다. 당연히 감독이 교류하거나 영향받은 다른 거장이나 고전과의 비교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알랭 기로디는 그런 '레퍼런스'나 '오마주'를 의식하는 기색은 통 없다. 대신에 감독은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제시하곤 하던, 신이 의도한 숙명과 그에 맞서는 인간, 아무리 온갖 꾀를 내고 노력해도 헛되게 운명에 휘말리는 패배, 우연처럼 툭 삐져나오는 소소한 필연의 결과를 재연하고자 한다. 보는 눈 없는 낙엽 무성한 숲속에서 감춰둔 속내가 폭발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완벽하게 은폐했다고 믿지만 정작 주변 누구나 다 짐작하는 사건의 진실과 침묵 대신에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들, 행운 또는 저주로 각자 기능하는 비밀스러운 불씨들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는 융단처럼 솜씨 좋게 하나의 이야기로 합류한다.
과연 관객에게 공유된 영화 속 시간 이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 추억 속 '고향'에서 제레미는 정착하게 될까? 그렇다면 그건 주인공의 능동적 선택인지 일종의 연금 혹은 유배에 해당하는 것인지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 될 테다. 충동으로 벌어진 사건은 소수 반사회적 범죄자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당사자/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언뜻 차가운 현미경 같은 관찰과 동시에 낯선 형태의 연민과 애정이 자아내는 파격적 변주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완성한다.
모두가 21세기 영화의 고전 형식과의 단절, 혹은 심지어 '영화의 죽음'을 외칠 때에 알랭 기로디는 여전히 영화가 가진 계승과 변주의 힘에 의지해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고전 비극의 골격은 소수자의 시선과 개입으로 새로운 수혈을 얻어 부활하고, 문학이 갖는 성찰과 탐구의 위력은 충분히 유효함을 자신의 영화로 증명하려는 듯하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재미와 교훈의 화학적 결합물이다.
▲<미세리코르디아> 스틸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작품정보>
미세리코르디아
Miséricorde
2024|프랑스|블랙 코미디, 범죄, 드라마, 스릴러
2025.07.16. 개봉|104분|청소년 관람불가
감독/각본 알랭 기로디
출연 펠릭스 키실, 카트린 프로, 장 밥티스트 뒤랑, 세르주 리샤르, 자크 드블레, 다비드 아얄라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미세리코르디아> 포스터엠엔엠인터내셔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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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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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는 고요한 마을인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찾아온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