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상상력의 힘이 빛을 발하는 시대다. 수많은 인디 창작자부터 대형 스튜디오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하루에도 수십 편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정형화된 패턴 등 생성형 AI가 가지는 명백한 한계로 인해, 진짜 사람의 손을 탄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창작물이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371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너드포지(Nerdforge)'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유튜브 'Nerdforge' 채널 갈무리
Nerdforge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너드포지 채널은 노르웨이 출신의 여성 '마티나'와 그의 파트너 '한시'에 의해 공동 운영된다. JRR 톨킨의 판타지 시리즈 <반지의 제왕>부터 SF 게임 <포탈>까지. 마티나와 한시의 관심사는 현실에서부터 벗어난 것이라면 전부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폭넓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소품들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이들의 영상은 주로 마티나의 발상으로 시작해, 한시가 수치적 계산 등을 돕고 함께 제작에 나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레진을 이용해 판타지 소설 속 전쟁의 모습을 재현한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갑옷이나 슈트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너드포지 채널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구 제작'에 나서기도 한다. 이들은 영화 <해리 포터> 속 마법의 길거리를 담아낸 책 버티개를 만들거나 구동 가능한 PC 본체, 그리고 아름다운 고서처럼 탈바꿈한 책을 제본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공예품들이 점점 생활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결국은 방이나 집 전체가 마법사의 서재처럼 아늑하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본 채널의 진가는 짧게는 그 발상보다도 형식에 있다. 10분부터 길게는 30분까지, 전 제작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롱폼 영상에 있다. 원안과 결과물만을 짧게 담아낸 숏폼 영상도 병행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너드포지 채널의 주력 요소는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장편 영상이다. 이들은 실패하고, 수치가 맞지 않아 좌절하고, 원하는 부품을 구하지 못 해 대체품을 만드는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다. '뚝딱'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190개의 영상만으로 다수의 구독자를 확보한 비결 중에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면서도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지켜내는 우직함 역시 존재할 것이다.
▲유튜브 채널 'Nerdforge' 갈무리
Nerdforge
모두를 위한 공예
그렇다면 너드포지 채널은 크고, 비싸고, 어려운 공예품으로만 승부를 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채널이 성장하면서 더더욱 어려운 작업에 도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마티나와 한시는 아직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들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구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도록 응원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시를 광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 유튜버가 '협찬' 방식으로 수많은 기업의 광고를 받는 요즈음, 유튜버가 그러한 광고를 수용하는 기준은 채널이 지향하는 가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롱폼 영상에 주력하는 너드포지 영상의 특성상 '중간 광고'까지 존재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유행하는 영화나 게임, 판타지 소설 광고 등을 내걸기도 하지만 영상 대부분에서 '키위코(kiwico)'와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키위코는 2011년 설립된 완구 회사로, 단순한 조립식 장난감부터 과학 학습 교구까지 다양한 키트를 제공한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도하는 어른을 위한 제품, 그리고 목공 연습을 보조하는 도구 세트까지, 키위코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너드포지 채널의 다양한 구독자층만큼이나 포괄적이다.
이외에도 너드포지는 같은 프로젝트를 보다 저렴한 예산으로 진행하는 등, 공예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영상 역시 만든다. 멋들어진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시행착오 과정을 보여주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너드포지 채널이 시청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가, 바로 무엇인가를 직접 만드는 '손맛'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제작한 의수를 시연하는 마티나유튜브 채널 'Nerdforge' 갈무리Nerdforge
게다가, 해당 채널의 지향성은 더더욱 넓은 소비자층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채널의 주 운영자인 마티나는 오래전 작업 과정에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는데, 이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의수 제작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디자인은 3D 프린터로 즉각 인쇄할 수 있는 도안을 무료 공개함으로써 장애인 커뮤니티를 위한 오픈 소스(open source) 프로젝트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너드포지 채널은 상상의 구체화에서 시작해, '모두를 위한 공예'라는 보다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금에 이른다. 판타지 속 세계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만들어 내는 이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제작기에 흥미가 생긴다면, 혹은 자기 행복을 위해 만들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기까지 했는지 궁금하다면 너드포지 채널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유익함과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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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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