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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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부문 41개국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그 3세대 아이돌 시대에 바치는 애정어린 헌사다. 작중에서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가 출연하는 예능은 어떻게 보아도 정형돈과 데프콘의 <주간 아이돌>이며, 3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트와이스의 이름과 노래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3세대 아이돌 시기의 향수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 진입하는 등 일약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은 2010년대 중후반의 추억들이 집대성된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와도 같다. 그 예시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데일리 톱 송'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가장 뛰어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사자 보이즈'의 < Your Idol >을 살펴보자. 웅장한 콰이어와 역동적인 편곡, 넓은 공간감이 돋보이는 이 곡은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는 엑소의 데뷔곡 < MAMA >를 쉽게 연상시킨다. 이외에도 에이티즈, 빅스, 스트레이키즈, 몬스타엑스 등 어둡고 강렬한 음악을 주로 선보여 오던 여러 3세대~3.5세대 보이그룹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난다. 3세대 보이그룹이 주로 출연한 Mnet의 경연 프로그램 <킹덤:레전더리 워>에서도 비슷한 편곡 기조의 무대가 다수 발견된다.
반면 극중 사자 보이즈의 데뷔곡으로 나오는 < Soda Pop >은 전형적인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으로, 2010년대 중후반 케이팝의 트로피컬 하우스 열풍을 상기시킨다. 태연의 < Why >를 비롯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청하, 아스트로 등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아이돌들이 선보였던 트로피컬 하우스는 특유의 청량감으로 케이팝신을 장악했던 바 있다. 그 시절의 미감이 묻어나는 사자 보이즈의 알록달록한 의상과 함께, < Soda Pop >은 장르의 매력을 고스란히 복원한 플럭 사운드와 상쾌한 휘파람, 달콤한 멜로디로 우리가 트로피컬 하우스와 함께 보냈던 그때 그 여름의 기억을 불러낸다.
한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루미가 소속된 걸그룹 헌트릭스의 < How It's Done >과 < Takedown >은 블랙핑크를 필두로 한 2010년대 후반 걸그룹들의 '걸크러쉬' 사조와 판박이다. 있지, 에버글로우, 밴디트 등 3.5세대 아이돌부터 배드빌런, 픽시, 크랙시 등 현재의 4세대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걸크러쉬 콘셉트는 일반적으로 트랩 계열의 힙합/EDM, 큰 낙차의 구성, 래핑의 높은 비중 등 알기 쉬운 음악적 특징들을 공유한다(K/DA의 "POP/STARS"나 블랙핑크의 "The Girls"는 이러한 '걸크러쉬 계열 음악'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들이다). 헌트릭스의 곡들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에서 살짝 벗어나는 곡인 헌트릭스의 < Golden >은 누구나 그 레퍼런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아이브의 2023년작 < I AM >이다. 사용된 악기의 질감부터 하이노트를 잔뜩 박아넣은 고난이도의 탑라인까지 여러모로 닮아있는 지점이 많다. 수록된 곡들 중 유일하게 4세대 아이돌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곡이지만, 강렬한 고음역대의 보컬을 강조하는 맥시멀한 프로덕션이 특징인 <I AM >이 '4세대 중 가장 3세대스러운' 노래임을 감안하면 다른 곡들과 그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가 '옛 추억의 재현'에만 매몰된 것은 아니다. < How It's Done >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핫한 장르인 베일리 펑크의 리듬을 부분적으로 차용했고, < Takedown >에서는 2020년대에 유행한 신스웨이브 음악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단순한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재에서 바라본 과거'를 입체적으로 구현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10년대의 케이팝을 호명하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 장면.넷플릭스
이러한 측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근본적 아이디어는 또다른 넷플릭스의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 시리즈와 궤를 같이한다. <오징어 게임>이 과거 순수하던 시절의 기억이 담긴 전통놀이들을 오늘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왔듯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서구권 케이팝 팬들이 사랑한 2010년대의 케이팝을 2025년에 다시 호명한다.
얼핏 확장성이 부족해 보이는 소재이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과거 문화에 대한 애정과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정서다.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 뽑기와 구슬치기가 한국인들만의 추억임에도 세계인의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케이팝 팬덤을 넘어 전세계 대중에게 폭넓게 향유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창작자 본인이 사랑한 옛 문화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존중, 심도 깊은 탐구, 현대적 변용은 이제 K-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한 하나의 검증된 방법론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문화 콘텐츠의 진화는 결국 기억을 품은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다시 한 번 과거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법을 증명해 보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멈출 줄 모르는 흥행가도를,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또 한 명의 케이팝 팬으로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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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빈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문화비평학을 전공했고,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여성동아, IDOLE 등 다양한 웹진과 잡지에 대중음악 칼럼을 기고해 왔습니다. (문의: bin5483548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