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의 두 남녀, '수환'과 '영경'은 마지못해 참석한 지인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다들 술에 만취해 쓰러진 자리에서 수환은 물끄러미 그들을 응시하고, 영경은 홀로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다가 쓰러지길 반복한다. 깨어 있는 이가 둘뿐이자, 영경은 수환에게 곁으로 오라고 한다.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이름을 묻고, 또다시 술을 들이붓던 영경은 술상에 고개를 쳐박고 쓰러진다. 수환은 그런 영경을 업고 밤길을 걸어 그녀의 아파트에 내려놓은 후 떠난다.
그 인연으로 둘은 그들만의 술자리를 갖는다. 영경은 만취해 다시 상에 머리를 박고, 수환은 전처럼 다시 영경을 등에 업은 채 밤길을 걸어 집에 데려다준다. 세 번째 술자리에서 둘은 각자 살아온 과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결혼은 실패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믿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좌절한 신세다. 영경은 마음속 공허를 달래고자 술에 의존하고, 수환은 지병으로 평범한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다.
또 다른 공유점이 있다. 백세시대라지만 둘 다 앞으로 어찌 살아갈지 아무런 목표도 계획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 곁에 늘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익숙하고 적응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 공통점을 확인한 둘은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의 동거는 새로운 삶을 모색하거나 하는 거창한 꿈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다가올 종말의 시간까지 각자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존재와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김수영에서 권여선, 다시 강미자를 거쳐 완성된 '봄밤'
▲<봄밤> 스틸
시네마 달
제목은 '봄밤'이지만, 흔히 단어에서 연상되는 느낌과 영화 속 '봄밤'의 질감은 무척 다르다. 물론 두 주인공은 아직 따뜻하고 눈이 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봄의 제전을 맞이하진 못했어도, 아직 서늘한 밤바람 속에서 봄날이 다가오는 조건이란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독특한 기운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그 원점은 시인 김수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애송하고 필사하는 그의 시 '봄밤'은 영화 속 영경의 입을 빌려 꾸준히 반복된다. 봄날의 첫사랑과는 간격이 까마득한, 세상 풍파 다 겪을 대로 겪은 상처를 품은 이들 간에만 교감할 법한 그런 질박한 감정이 묻어나는 시다. 그런 묵직함 때문에 굳이 이 디지털 만능 시대에 애써 손으로 직접 써보게 시도하는 것이리라.
그런 시의 함의는 소설가 권여선의 동명 소설로 재탄생한다.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크게 각색하지 않고 고스란히 화면에 옮긴다. 시의 정조가 소설로 구현되고, 그 소설을 시각화한 결실이 영화 <봄밤>의 세계인 셈이다. 같은 정설을 공유하는 어떤 응어리진 존재의 각기 다른 단면이라 봐도 좋겠다.
기조와 방향성이 명징한 원작에 충실한 영화화답게, <봄밤>은 흔히 동 세대 독립영화가 취하는 전형을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영경은 국어교사라는 괜찮은 직업을 가졌고 자기 소유 아파트도 보유해 경제적으론 큰 어려움이 없지만, 파국으로 끝난 결혼생활은 물론, 양육권을 빼앗긴 상실감으로 도저히 멀쩡한 정신 줄을 유지할 수 없다. 술을 벗 삼고, 시 '봄밤'을 마치 절규하듯 읊조리는 것 말곤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력으론 벗어날 수 없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영경의 현실이다.
수환의 인생 역정도 파란만장하다. 20살부터 '쇳일'로 산전수전 겪은 그는 작지만 건실한 철공소를 운영했지만, '단가 후려치기'로 갑질하는 거래처의 횡포로 끝내 파국을 맞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남은 재산은 아내가 빼돌려 잠적해 버렸다. 게다가 젊을 때 무리를 많이 했었는지, 류머티즘 관절염이 닥쳤다. 몸만 건강하면 제 한 몸은 어찌 건사하련만, 신용불량자로 추락해 떠돌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이 겪은 사회저 부조리를 소리 높여 성토하고, 그들의 불행을 시사적인 맥락과 연결해 풀이하지 않는다. 불합리한 양육권 처리, 원청 기업의 갑질 같은 쟁점을 고발하는 식으로 사회비판과 공적/사적 영역의 순환 같은 맥락을 풀이하는 게 흔한 방법론으로 자리 잡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오히려 드문 절제와 방향성일 테다.
초로하고 처참해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두 사람
▲<봄밤> 스틸
시네마 달
당연하다는 듯 남들 다 구사하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굳이 활용하지 않는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그들이 세 번째 술자리에서 끄집어낸 각자의 전사('前史')는 그저 두 사람의 현재 상태를 납득하도록 돕기 위함에 그친다. 이미 두 사람은 흔히 '정상화' 시도에 도전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한 사람이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극한의 주변 상황에 내몰리지 않은 상황에서 겪을 법한 불행의 극점에 떨어진 지경에서, 애써 불행의 조건을 소상히 해설하고 관객에게 공분과 동조를 주문할 계획이 애초 없다. 굳이 맞장구를 쳐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꺼낼 기력도 없는 주인공들이다.
대신에 영화는 비록 그것이 장및빛 미래, 혹은 밤이 지나면 찬란하게 떠오를 태양의 기운과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주인공이 서 있는 위치 너머를 응시한다. 물론 세간의 선입견대로라면, 자기 앞가림도 기대하기 힘든 '알루(알코올&루머티즘) 커플'에게 '밝은 미래'란 그들이 사회로 돌아오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갱생'하는 과정, 즉 '기적' 같은 가능성 외엔 마련될 수 없다.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게 <봄밤>의 방향성이다. 희박한 행운을 바라는 건 그냥 관객 자신이 불편을 감내하기 싫은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듯, '알루 커플'은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을 향해 봄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그렇게 종말의 파국이 예견됨에도 화면 속 두 사람은 봄볕이 찬란하던 시절 그들이 꿈꿨을 모든 것을 상실한 현재에 온전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위로하는 상대를 비로소 만났다.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냐고 원망할 기력도 없는 커플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거나 훈수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듬으며 껴안는다.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커플의 시간은 순탄하지도, 안정될 리도 없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같은 환상은 기어들 틈이 없다. 영경은 알코올 중독에 온 몸을 내맡기고, 수환의 류머티즘은 점점 증세가 악화한다. 영화 초반에 술에 취한 영경을 등에 업고 봄날의 밤길을 이동하던 수환의 행위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깨닫고 마는 순간이다. 대체 얼마나 상대방이 안쓰러웠으면 관절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며 몇 번이고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의 '찐 사랑'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기묘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흔히 연인이나 가족이라도 병간호 돌봄 오래 하면 관계 악화는 당연시하는 게 세상인심이라 말한다. 빈털터리에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수환을 거둬들여 함께 살고, 요양병원 입원 절차를 감당하는 영경의 행동 역시 보통 사랑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서로에게 세속의 잣대로 기대할 게 전무한 상대방을 필사적으로 갈망하는 이 커플의 감정을 누가 함부로 폄하할 수 있을까?
둘만의 사랑과 공감으로 완성된, 조금 특별한 '봄밤' 속으로
▲<봄밤> 스틸시네마 달
영화는 현실의 복잡한 연결과 사회 관계망을 의도적으로 소거한 자리에, 오롯이 영경과 수환의 자리만 남겨두려 한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흔해 빠진 지역 관광명소는 영화 내내 찾을 길 없다. 안 나오면 큰일 날 것처럼 의식적인 사투리 부각이나 향토성 강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여백을 오직 세상에서 추방당한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감으로 가득 채운다.
제주도의 '봄밤'은 그렇게 '알루 커플'만 남은 작은 우주로 변환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정심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이 처음엔 안쓰러움을 관객에게 전이시키지만, 서서히 그저 둘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직 어떤 특별한 '애틋함'이 아직 차가운 밤공기에서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듯 발현될 따름이다. 부드러운 밤의 어둠은 자주 두 사람을 세상 이목에서 감추며 보호해 준다. 세상의 동정을 딱히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 과도한 관심과 훈수는 무례함에 불과할 테다.
장편 개봉영화치고는 1시간 살짝 넘기는 짧은 상영시간, 영경 역 한예리, 수환 역 김설진 두 배우만 보이다시피 하는 간략한 동선, 고의로 주변 배경음을 지우다시피 축소해 종종 묵음 효과에 도달하는 극단주의는 온전히 둘만의 세상을 훔쳐볼 조건을 조성한다. 시구절처럼 '혁혁한 업적' 같은 세속의 척도와 궤적에서 탈락한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여 체념한 추방자들, 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울고 웃기를 함께 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젠 자신에게 올 수 없다고 포기했던 감각을 누리는 것만으로 관객 역시 위로받는 순간에 진입한다.
한국 독립영화가 더는 참신함도, 치열함도 소거된 채 개성 없는 무미건조함으로 하강한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3세계 영화가 갖는 낯선 흥미로움과 소재의 극단적 파격성을 거세당한 채, 1세계 주류 영화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보편적 소재를 밋밋하게 그리기만 하는데 그런 간극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대목이다.
이런 국면에서 중견 감독이 참으로 오랜만에 낸 신작은 어떤 돌파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억지로 특별함을 들먹이기보다, 그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법한, 하지만 소외되고 잊힌 존재들의 특별함을 정련하고, 군더더기 싹 다 소거한 시리도록 하얀 뼈대 골격만 남기는 이 영화의 작법은 그래서 더 비범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한없이 아련하고 애특하다.
<작품정보>
봄밤
Spring Night
2024|한국|드라마
2025.07.09. 개봉|67분|15세 관람가
연출 강미자
출연 한예리, 김설진
제작 월원 영화사
배급 시네마 달
2024 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포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결혼 실패와 알코올 중독, 상처 입은 두 남녀의 동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