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쥬라기 세계관은 전 세계를 홀려 전설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IP를 다시 건드린다는 것은 금단의 열매를 따는 것에 비견된다. 결국 못해도 잘해도 욕먹는 영화란 소리다.

쥬라기 시리즈의 유산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쥬라기 공원>(1993)이 등장한 후 30여 년. 정통성을 이어가면서도 새롭게 펼쳐 낸 이야기가 또다시 관객을 찾았다. 공룡과 인류의 공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됐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소재다.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제공하고 어른들에게는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쥬라기의 유산을 이어 받은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이미 세 편이 제작됐다. 쥬라기 공원이 폐관한 지 22년 후,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공룡을 모아 새로운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가 이슬라 누블라 섬에 재개장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파괴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제2의 쥬라기 공원이라 불리는 테마파크 소개는 <쥬라기 월드>(2015)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8)에서는 화산 폭발로 섬 전체가 초토화되는 과정이 담겼으며,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2022)에서는 공룡들이 섬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출몰하며 어려움을 겪는 고군분투를 펼쳐낸다.

그로부터 5년 후, 애물단지가 된 공룡은 태평양 연안이 아닌, 대서양 적도 부분에만 모여있는 설정이라 시리즈를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쥬라기' 시리즈의 7번째 영화이자 '리버스'란 부제로 돌아온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앞선 이야기와 연결성 없이 진행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카오스 이론의 집약체인 비밀의 섬이 무대다. 감추고 싶던 인류의 과오가 원정대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여름방학용 가족 영화 부활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는 DNA 채취팀과 델가도 가족팀 두 축으로 진행된다. 쥬라기 공원의 비밀 연구소가 있던 섬에 발을 들이며 벌어지는 아름답고 진기한 풍경과 위험천만한 모험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 질병의 중요한 코드로 육해공 공룡의 DNA가 필요하다는 설정이다. 앞선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시리즈 최초로 인간이 공룡을 쫓는 능동적 역발상이 포인트다. 바다, 육지, 하늘을 누비는 다양한 공룡의 세계로 초대한다.

후기 자본주의로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의 폐단, 지구를 지배했다는 착각이 만든 무차별 환경 파괴의 위협을 암시한다. 공룡의 DNA는 심장병을 고칠 신약 개발에 쓰여 혁신을 이루겠지만 돈 있는 자들에게만 한정된 기울어진 평등이다.

조라(스칼렛 요한슨)와 헨리(조나단 베일리)는 이를 두고 고민하다 계획을 변경하면서 더 큰일이 벌어진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합류했지만 인류애 하나로 똘똘 뭉친다. 영화 속 공룡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해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공생을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도록 배치했다.

공룡에 진심인 제작진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배경에는 스칼렛 요한슨의 공이 크다는 후문이다. 직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연락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고 전해진다. 스칼렛 요한슨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어릴 적부터 이어온 시리즈의 팬으로서 합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꿈이 실현된 순간"이라며 "그동안 MCU에서 갈고닦은 액션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맡은 조라는 여성성이 강조되지 않은 강인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극의 중심을 이끈다.

무엇보다 크리처 덕후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공룡 비주얼에 진심을 더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기이한 공룡은 <에이리언>의 오마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데뷔작 <몬스터즈>(2010)로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편부분 감독상을 받았으며, <고질라>,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크리에이터> 등을 연출했다.

다만, 심오한 메시지나 철학적 주제, 날카로운 비판을 원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진부한 스토리와 평이한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도 않고 서로 겉돌기까지 한다. 돈 때문에 움직이던 용병팀이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를 원한다며 대체로 추천하고 싶다. 소위 돈값 제대로 하는 블록버스터인 까닭에 시원한 극장에서 짜릿한 영화적 체험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겠다.

쥬라기월드새로운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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