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크린에 되살려낸 존재는 단순히 공룡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세상에 다시 등장한 공룡은 과학의 오만에 대한 경고였고,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일깨우는 존재였다.

<쥬라기 공원>은 거대한 공룡이 선사하는 스펙터클과 함께 SF 영화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 신화적인 작품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타이틀과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온 공룡들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쥬라기월드: 새로운 시작>에서 공룡은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신약의 원료로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긴 하나, 관객을 위한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이기도 하다. 시리즈 내내 반복되는 주제의식, 그리고 이전 작품을 오마주하는 장면들로 구성된 이 영화는 과연 원제처럼 재탄생(Rebirth)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부족해진 인간 서사

 <쥬라기ㅇ 월드:새로운 시작> 스틸
<쥬라기ㅇ 월드:새로운 시작> 스틸유니버셜코리아

이야기의 도입부는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전작 <쥬라기월드: 도미니언>에서 공룡들이 지구에 풀려 적도 지방에서 살아가고, 적도는 인간의 접근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영화는 제약회사의 의뢰로 공룡의 샘플을 채취하러 가는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비춘다. 여기서 각 캐릭터의 배경은 마치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 전시를 위한 최소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시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이후 캐릭터의 특정 행동의 연유를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 그친다.

조라(스칼렛 요한슨)는 군사 전문가로서의 과거,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의 학자 호기심, 가족 구성원들의 개별 사연은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후 공룡을 위시한 스펙터클에 관심이 많다 보니 영화 전반부의 서사 구축 과정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캐릭터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특정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배치된 기능 존재에 가깝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을 오마주하며 시리즈의 근간을 더듬는다. 특히 바다에 서식하는 모사사우루스를 연출하는 방식은 그의 대표적인 영화 <죠스>를 연상케 한다. 이런 서스펜스는 여전히 유효하며, 보이지 않는 공포가 직접적인 액션보다 때로는 더욱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쥬라기 공원>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티라노 사우루스를 적재적소에 등장시키는 장면도 원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향한 헌사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쥬라기월드: 새로운 시작>은 원작을 존중하며 블록버스터로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모난 곳 없는 영화다. 하지만 조금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면 익숙한 '공룡'영화다. 다양한 소재와 자극적인 연출을 바탕으로 수많은 블록버스터가 영화관을 차지하는 시대에서, 공룡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이 관객들에게 언제까지 작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이제는 트렌드에서 한 발 멀어진 플래그십 테마파크가 새로운 어트랙션을 들여 재개장한 기분이다. 신선해 보여서 탑승해 보니 이전에 즐겼던 롤러코스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1993년에 <쥬라기 공원>이 선사했던 경이로움, 혁신적인 CGI 기술은 당시 관객들에게 '살아있는 공룡'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면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관객들은 다양한 매체와 작품을 통해 스펙터클에 과하게 노출된 상태다. 극 중 헨리 박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공룡에 열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극중 인물의 말처럼 공룡이라는 스펙터클은 관객들에게 더 이상 강력하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쥬라기 월드:새로운 시작> 스틸
<쥬라기 월드:새로운 시작> 스틸유니버셜코리아

원제 'Jurassic World: Rebirth'는 이 작품의 정체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어떻게 보면 시리즈 초기작의 볼거리를 21세기에 다시 한번 복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시리즈의 과거를 재활용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간 시리즈가 검증한 성공 공식을 재가공했을 뿐,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물론 전작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비평적인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안정적인 만듦새를 확보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제목 그대로 부활을 원한다면 익숙한 공식의 안전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위한 모험이 필요하다. 관객들이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시리즈는 과거의 유산을 관리하는 박물관이 아닌 살아있는 창작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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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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