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도입부로 신약 개발을 위해 공룡 DNA를 확보하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가 제시된다. 전직 특수부대 요원 조라(스칼렛 요한슨), 고생물학자 헨리(조나단 베일리), 그리고 베테랑 선장 던컨(마허샬라 알리)이 한 팀을 이룬다. 조라와 던컨은 과거 특수부대 동료이다. 영화 초반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두 캐릭터의 얼개가 대충 파악되며 두 사람 각각의 가족과 관련된 회한이 언급된다.
이혼 후 자녀에게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던컨은 이 영화를 가족 영화로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던컨은 용병으로서 이 일에 합류했지만, 용병 일에 앞서 조난 당한 '델가도' 가족을 우선 구하면서 영화의 흐름을 바꾼다. 가족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함께하려는 인간성의 긍정적 본능이다.
또한 델가도 가족의 막내 이사벨라가 새끼 공룡 아퀼롭스와 우정의 관계를 맺으면서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긍정적 인간 본능의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고, 부정이 있어야 긍정을 더 돋보이게 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신약 개발을 위한 공룡 DNA 채취를 의뢰하는 거대 제약회사의 임원 마틴(루퍼트 프렌드)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상징한다. 대표적 장면이 바다에 빠질 위험에 처한 델가도의 큰딸을 구하지 않고 빠지도록 내버려 둔 것. 그녀가 과업에 방해가 될 행동을 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틴의 '비인간적' 행동은 외부의 비인간 공룡보다 더 위험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에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반어를 성립시킨다. 그리하여 인간 대 인간의 대립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비인간적인 면모는 인간적인 면모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족 영화를 가장한 공포 영화라는 감독의 관점이 뒤집힌다. 공포 영화를 가장한 가족 영화로 이 작품을 바라본다면 인간성의 긍정적 측면, 즉 유대와 돌봄, 나아가 사랑이 가족 개념을 통해 가장 잘 발휘되기 때문이다.
'가족' 개념은 두 축으로 전개된다. 먼저 조라 팀원 간의 상호 의존과 팀워크는 동료애를 바탕으로 혈연을 넘어선 유사 가족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서로 다른 배경과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서로를 지탱하며 성장하는 가족의 모습과 닮았다. 다음은 진짜 가족이다. 델가도 가족은 가족 해체에 처한 조라와 던컨에게 전통적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위기가 닥치기 전엔 가족 여행만큼 불편한 게 없지만 막상 어려움을 헤쳐나가기에 가족만 한 게 없다.
어린 이사벨라와 새끼 공룡 혹은 작은 공룡 아퀼롭스의 우정은 종을 초월한 순수한 교감과 공존의 가치를 상징한다. 가족 자체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은유이다. 나아가, 아퀼롭스와 같은 애완/반려 공룡의 존재는 현대 사회에서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인간과 공룡이 대결을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애완견이 가족 완성의 화룡점정으로 간주되듯, 애완 공룡이 가족의 또 다른 구성원이자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가족 영화의 면모를 확고히 한다.
공포 영화의 면모
동시에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공룡의 위협만이 공포를 끌어내지 않는다. 미지의 섬과 폐쇄된 연구소라는 공간은 고립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며 심리적으로 공포의 무대가 된다. 이렇게 준비된 낯선 환경은 관객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안겨 공포 기대를 방조한다.
본원적 공포는 이 영화를 포함한 쥬라기 시리즈의 기본 특성이다. 공룡의 무자비한 공격과 추격은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 스릴로 압박한다. "역대급 스펙터클"은 공룡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통해 관객을 추궁하는 공포의 핵심 요소다. 또 다른 공포는 인간이다. 마틴과 같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인간의 존재는 공룡보다 더 예측불가능하고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 공포가 된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가 되는'Homo homini lupus'" 원형 공포를 심리 저변에 잠재한 인간은 언제든 인간을 심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점프 스케어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윤리적, 사회적 공포로 나타날 때 사실 더 위협적이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은 공룡의 본능적인 공격성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불가해한 양상을 보이며 마틴처럼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내부의 배신이나 숨겨진 음모로 발현한다. 인간 내면의 이러한 끔찍함은 관객에게 공룡의 물리적 위협보다 더욱 깊은 좌절과 절망으로 다가간다. 공룡의 치명적 발톱보다 인간의 미소에 도사린 악의가 더 큰 두려움이 된다.
로맨스의 절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로맨스 요소를 크게 부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추구하는 핵심 메시지와 장르적 특성에 집중한 의도적인 선택이다.
그럼으로써 생존 자체와 인간의 본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 로맨스 라인은 이러한 영화가 추구하는 서사에서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등장인물이 대면한 위기와 그들의 내면적 갈등을 희석할 우려가 있다. 인물 간의 관계는 로맨스보다는 동료애, 책임감,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협력에 초점을 맞춘다. 크게 보아 모든 주제가 '가족'을 지향한다. 델가도의 큰딸과 남자친구 사이의 로맨스도 로맨스는 약하고 가족애로 포괄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가족 영화로서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모험 영화 특성을 뚜렷이 하기 위해 로맨스를 억제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긴장감과 스릴을 유지하는 데에 보탬이 된다. 사실 공룡의 거대 발톱 밑은 로맨스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로맨스의 애매한 감정선은 관객의 몰입을 저해할 뿐이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공룡 대 인간 말고도 인간 대 인간의 대치, 새로운 가족의 모색, 생존을 위한 연대 등 다른 주제가 많아 로맨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공포 같지 않은 극강의 공포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속 폐쇄된 쥬라기 공원 연구소에서 마주하는 충격적인 비밀은 사건에 관한 정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과 과학 기술 오남용이 빚어낸 결과물에 인간이 다시 위협을 당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활보하는 곳에 공룡 DNA를 채취하러 들어갔다는 설정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마틴으로 상징되는 소수 인간의 통제불능 욕망이 다수 인간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나아가 자연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영화가 경고만을 담지는 않았다. 동시에 인간이 가진 용기와 희생, 그리고 연대의 힘을 표현하며 희망을 표명한다. 공룡에 대한 헨리의 순수 경외심 등 인간성의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한다.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욕망과 공존과 이타의 의지가 충돌하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이 영화의 주제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주제 중심의 영화가 아니기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주제 의식을 배면에 깔고 결국 공포 형식의 재미를 얼마나 많이 산출하는가가 관건이다. 조라 역의 스칼렛 요한슨이 "우리는 '쥬라기'에 공포를 다시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영화는 예상대로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를 썼다. 1993년작 <쥬라기 공원>의 빈티지한 질감을 재현하고자 한 35mm 필름 촬영은 단순한 향수를 넘어, 고전적인 모험 영화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음악 감독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공룡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동시에 표현하며, 경이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오가는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한다. 태국, 영국, 뉴욕, 몰타 등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구현된 압도적인 자연경관과 정교한 프로덕션 디자인은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관객이 마치 함께 모험을 떠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내한 기자 간담회에서 요한슨은 "<쥬라기 공원>을 가족과 함께 10살 때 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극장에서 다 같이 경험했을 때 오는 생생함이 다르다. 유일무이한 경험을 꼭 극장에서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쥬라기' 시리즈 팬들은 이번 영화가 지금까지 중 가장 무섭다고 말하지만, 나는 10살 딸에게 이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손가락 사이로 조심조심 봐야 할 수도 있겠지만, 공룡 영화는 언제나 가족끼리 보기 딱 좋은 영화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10살에 본 영화의 후속편을 10살 딸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는 요한슨의 얘기가 이 영화의 정체성을 확인케 한다. 2일 개봉.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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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세계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