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의 여자들> 스틸
<발코니의 여자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못지않게 기후변화로 여름 폭염이 극심해진 프랑스. 지중해와 면한 대도시 마르세유는 마침 전 유럽에 닥친 불볕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마르세유 시민들은 선풍기에 의지하기보단,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서 한 줄기 바람에 의지하며 밤이 와 선선해지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 어느 날, 아파트 발코니에 세 여자가 등장한다. 또래 친구들인 '니콜', '루비', '엘리즈'는 하는 일도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허물없는 사이다. 워낙 덥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도 모두 창문을 활짝 열고 편한 복장으로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려 한다. 자연히 이웃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서로에게 관찰될 수밖에 없다.

세 친구는 맞은편 아파트에서 매력적인 이웃 남자를 관찰한다. 우연한 사고가 터지고, 수습 과정에서 연락처를 교환하고 통성명한 그들은 그날 밤 남자의 초대에 응해 그의 아파트에서 작은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다음 날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터진 걸 확인한다. 세 사람은 할 말을 잃고 충격에 빠진다. 이것저것 대책을 궁리해 보지만, 중구난방 의견충돌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발상황은 계속된다.

셋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혼란을 겪지만, 함께 모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간다. 기묘한 환상, 충동적인 행위, 뜻밖의 지인 출현 등 위기를 넘기며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세 친구는 제각기 짊어지고 있던 불안과 부담까지 함께 벗어나려 한다.

초상화 속에서 발코니를 열고 나온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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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발코니의 여자들>을 선택하게 될 관객에게 가장 우선 선택은 노에미 메를랑 & 셀린 시아마 조합의 신뢰와 기대다. 일찍이 연기 활동과 함께 꾸준히 단편 연출에 도전하던 노에미 메를랑의 두 번째 장편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합을 맞췄던 셀린 시아마의 격려와 조언, 공동 각본을 더해 완성됐다. 18세기 후반, 여전히 인습에 갇혀 있던 거친 북해 바닷가 브루타뉴에서 3세기가 지난 현대 프랑스, 지중해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마르세유로 무대를 옮긴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떤 형상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두 영화 사이의 시간은 5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숨이 가쁘게 정신없이 변하는 21세기 세상에서 5년은 긴 세월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발코니의 여자들> 사이의 몇 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되짚어보면 어떤 시나리오 작가라도 개연성 실종이라며 욕먹기 딱 좋은 극단적 변화라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코로나 19가 온 세계를 들썩였고, 홍콩과 미얀마는 민주주의 퇴행과 심리적·실체적 내전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도로 탈레반 세력이 차지했고,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는 강대국의 침략에 신음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가 재집권하지 않았나.

세상은 더딜지언정 진보한다는 믿음에 회의를 느낄 지경인 사건이 속출한다. 무엇보다 당연히 올바른 방향이라 확신하던 가치들, 환경 보호와 난민 보호·전쟁 종식·차별 철폐·여성과 성 소수자 인권 확립의 역사도 위협을 겪는 중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그나마 세계적으로 현실에서 대안처럼 보이던 국가와 지역에서 과거로의 퇴행, 혹은 역전 현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지경이라 우려는 더욱 크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와 함께 영화계에서 여성들의 궈리와 성취의 시금석으로 떠오르던 순간 이후 기대와 다른 상황 역시 속출했다. 2020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시상식인 세자르상 행사에서 미성년 성추행 혐의를 받은 로만 폴란스키의 공로상 수여가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노에니 메를랑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아델 에넬은 공개적으로 거세게 항의하며 식장에서 퇴장한 후 끝내 프랑스 영화계에서 은퇴 선언한다. 여성주의 열풍이 거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여전히 업계 내에 팽배한 가부장제와 권위주의를 여실히 체감하게 만든 사건이다.

일련의 사건이 어떤 '징후'였을까? 세계 각국에서 형태는 다를지언정, 공통적인 경향으로 '백래시'가 몰아닥쳤다. 문화계 역시 동시에 역풍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목소리를 온전히 내지 못하던 여성 영화인의 시도와 주장에서 당연히 빈틈이나 실수도 드러나게 마련이고, 온당한 평가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기존 남성 위주 주류 영화계 관행에는 들이대지 않던 수위의 비난과 냉소가 쏟아지는 건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시행착오에 쌍심지를 켜고 꼬투리를 잡는 행태가 순식간에 확산하는 가운데 이런 혀황에 관한 반응을 관찰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도 그렇게 위축된 상황에서 '응전'하는 반응으로서의 창작이 활발히 목격되는 중이다. 일종의 '부흥회' 목적을 띤 작업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남이 목격되었다. 어디에선가 힘을 받고 서로 공감하며 의지할 수 있는, 작품을 보고 나면 원기를 차릴 수 있도록 해주는 스타일이 확고한 이런 유형의 영화는 논리적 개연성이나 사실주의 묘사보다는, 의지와 단결 연대를 통한 '돌파'라는 주제를 택하곤 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계몽' 혹은 '선언'에 불과하다고 비판도 듣는다. 하지만 창작자들은 그렇게라도 뜻을 같이 하는 '동료(동지)'와 힘을 나누려 한다. 해당 경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관찰하는 건 세계의 변화상과도 연계될 것이 분명하다.

과감한 장르적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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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의 여자들>은 근래 몇 년, 좌절과 실의를 겪은 여성주의 영화인들의 '반격'을 수행하는 태도를 명백히 지향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국내 여성영화 일군의 경향이 듣는 비판점 또한 유사하게 지니지 않나 우려를 살 만하다. 영화의 전개를 보고 있으면 그런 혐의는 상당히 개연성 있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른 실망은 금물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게 '두괄식' 전개와 매번 국면마다 친절하고 즉각적인 상황 설명에 중독되어 있다 보니 어떻게든 신속하게 자신이 보는 영화를 파악하고 정의내리려 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장편영화의 긴 호흡을 통해 제작진은 차근차근 빌드업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역할과 기운이 확연히 다르고, 주요 등장인물들은 명확하게 과거의 자신이 갇혀 있던 벽을 넘어 한 단계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고립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현실 사회에서 겪게 마련인 고초를 돌파할 수 있다.

매우 정석적인 전개를 취하지만, 이 영화는 시각예술 특성을 명확히 숙지해 단순히 2차원 평면에 서술된 각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종종 설익은 도전에 그치곤 하는, 국내 영화제 등에서 접하는 학생 단편영화와 큰 범주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내지만, 숙련되고 경험 풍부한 감독과 제작진의 합력이 자아낸 솜씨는 수시로 드러나는 암초를 요령 있게 잘 피해 다닌다. 여기에 다채로운 시각 효과, 예를 들어 마르세유라는 지역의 공간적 특징, 감각적인 주인공들의 패션과 주변 배경의 색감 조성, 호러와 판타지 등 다양한 초현실적 장치 도입을 통해 이중 삼중의 연쇄를 조성해낸다.

우선 세 친구가 겪는 파격 사건의 출발점을 들여다보자. 이상기후 수준 무더위가 덮친 대도시와 답답한 아파트 실내라면 뭔가 '일어나야' 마땅한 분위기가 자연스럽지 않는가. 이젠 추억 속 영화가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뉴웨이브 시절 반향이 작지 않았던 1995년 이민용 감독 <개 같은 날의 오후> 역시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우연히 아파트 옥상에 모여든 동네 여성들의 우여곡절 단결을 다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개연성은 영화 막판으로 갈수록 확신으로 변한다.

장르적 요소의 전폭 투입은 주제의식에만 치우치기 쉬운 해당 유형 작품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핵심이다. 흔히 장르 영화 기법에 관한 편견, 개연성을 포기하고 파격적 장면을 뽑아내는 데만 탐닉하는 중독성 자극 추구와 간격을 두는 장인의 솜씨가 출중하다. 고어 장면은 도를 넘지 않는 수위에서 개그와 절박성을 교차시킨다. 꼭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남용 않는 범위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걸 두려워 않는다. 적당히 과장된 캐릭터 연기와 총천연색 효과 덕분에 블랙 코미디가 형성되어 잔혹감 넘쳐도 맥락은 끊기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진다.

시냇물이 모이고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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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상반되게 세 친구의 자매애는 온라인에서 범람하는 '맞는 급끼리 어울리는' 풍조와 대비된다. 데뷔하지 못한 무명작가 '니콜'과 저예산 TV 영화 배역 전전하는 배우 '엘리즈', 흔히 '쉬운 여자' 취급인 캠걸 '로비'가 3인조를 구성한다. SNS 콘텐츠에선 도저히 친구 관계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 운운과 확연히 다른 설정인 셈이다.

제작진이 말하려는 의도는 선명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억압된 채, 남성의 욕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의 족쇄에서 해방되고픈 세 친구, 그들이 특별히 '별난' 부류가 아님을 긍정하게 하는 주변 여성 캐릭터들과의 이상적 합체가 인상 깊다. 지금은 18세기처럼 숨 죽이고 그들만이 공유하는 암호와 표식을 만들 때가 아니다. 단호하게 의지를 펼쳐야만 아직도 손이 뻗치지 않는 유리천장을 허물 수 있다는 단호함을 표명하려 한다.

처음엔 우스꽝스럽게만 보이던 슬랩스틱과 초현실적 풍경이 가미된 장면들, 답답한 행태를 반복하던 주인공들 행보는 서서히 감독이 무엇을 드러내려 했는지 분명해지며 형체를 갖춘다. 헐벗은 의상을 입건 가슴을 드러내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신호가 아니며, 마릴린 먼로는 사실 금발도 아니고 백치미와는 차원이 다른 총명한 배우였다는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한 여성들의 행진이 한여름 단비와 같이 등장하는 건 그야말로 유쾌한 풍경화다.

<작품정보>

발코니의 여자들
Les femmes au balcon
2024|프랑스|코미디/범죄
2025.07.09. 개봉|104분|청소년관람불가
연출 노에미 메를랑
출연 노에미 메를랑, 수헤일라 야쿠브, 산다 코드레아누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 (주)플레이그램

 <발코니의 여자들> 포스터
<발코니의 여자들> 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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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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